27년 전 자신과 가족들이 강제로 필리핀 대통령 관저를 떠나야 했던 필리핀의 독재자 고 페르디난드마르코스(Ferdinand Marcos) 전 대통령의 미망인인 이멜다마르코스(Imelda Marcos)는, 외아들인 페르디난드마르코스주니어(Ferdinand MarcosJr.)가 필리핀의 최고 지도자로 정권을 잡는 것에 대한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People Power Revolution) 이후, 1986년 2월 마르코스 통치 21년의 막을 내리고 그의 가족들이 강제로 추방되어 필리핀을 떠나야 했다.83세의 전 영부인에게 자신의 아들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가족을 더 좋은 시절로 인도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교도 뉴스(Kyodo News)에서는 최근의 연속 인터뷰를 통해 정당들이 2016년 대통령 선거를 대비한 각 정당 정치 지도자를 확인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거기서 대중들에게 “봉봉(Bongbong)”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아직까지도 뻔뻔하게 상원의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55세의 마르코스주니어가 “유력한 인물”로 부상하고 있다.
“봉봉은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준비된 사람이다. 그리고 일로코스(Ilocos)에서의 그의 경력은 아주 훌륭하다. 그는 맡은 일들을 잘 수행해 왔다.”라고 이멜다는말했다.
그녀의 아들 마르코스주니어는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세 번 연속으로 그의 부친의 출신지인, 일로코스 노르테(Ilocos Norte)의 북부 지방의 주지사를 역임했다. 현재는 봉봉의 누나인 이메(Imee)가 주지사로 있다. 그는 또한 2010년 상원의원이 되기 전까지는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이 지역을 대표해서 하원의원으로 활동했었다.
남편이 통치하던 독재 시절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이멜다는, “내가 그의 어머니라서가 아니라, 그가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환경에서 성장해왔다는 것이 영광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행복하다. 그는 지도자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상원의원이었던 아버지가 1965년 12월 30일 필리핀의 제 10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어린 마르코스는8살에 불과했다.
아버지의 통치 시대인 20여년 동안, 마르코스주니어는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Oxford University)에서 철학, 정치학 및 경제학 분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에 있는 와튼 경영학교(Wharton School of Business)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 매우 어린 나이인 23세에 일로코스 노르테의 부지사가 되었다.
마르코스주니어는 자신의 아버지가 시민들의 파업과 무장 반군의 위협을 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했던 1972년부터 1981년까지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다.
봉봉은 작년 9월 21일에 열린 계엄령 발표 40주년 기념회에서, “아버지는 항상 현재의 사건과 역사에 대해 의견을 내는 사람이었으며, 그와 여러해 동안 지속적으로 나누었던 대화들은 복잡하지는 않지만, 나에게 더 완전한, 계엄령을 선언했던 당시의 전후 사정을 마음속에 그리도록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계엄령 시대가 필리핀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였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면서, “더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계엄령에 의해서 평화와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과 필리핀의 긍정적인 모습을 세계에 내보인 것과 관광 산업의 출현과 깨끗한 거리에 대해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렇기는 하지만 과거는 바뀔 수 없으며, 필리핀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희생양을 찾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면서, “과거는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봉봉은 대중들에게 요구했다.
그 역시 현 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계엄법을 단호히 배척하고 있으며, 공인으로서의 그의 행동과 결정들은 “민주주의의 원칙과 참여하는 정부에 일치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야심있는 정치인의 궁극적인 목표로, 장차 최고의 지위에 올라가고 싶은 본심은 인정했지만, 아직까지 201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결정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속담에서 흔히 말하는 사람이 일을 계획하지만, 그것의 성패는 신이 가른다.”면서 “그것은 운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한편, “성공은 준비와 기회에 달려있다.”면서 봉봉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재빨리 덧붙였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계엄령 시절 정치적 박해를 받았던 마리에 엔리케즈(Marie Enriquez)는 많은 마르코스 반대자 집회에서“절대 다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필리핀에서 또 다른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이 역겹다고 표현했다.
엔리케즈는 교도 뉴스에서 “지금까지 독재자 가족들은 그들이 잘못한게 없다고 무례하게 주장해 왔다. 최근 몇년 동안 마르코스라는 이름을 지우느라고 엄청나게 노력해 왔는데, 그 가족들의 아들을 그 아버지의 자리에 앉히려고 계획하고 있다. 다시 한번 필리핀의 모든 재산을 그들 개인적인 영달과 영향력을 위해서 강탈하려는 것이라는 것이 명확하다.”라고 주장했다.
이멜다는자신과 독재자 남편이 국가의 재산을 강탈하고 인권을 유린했다고 지속적으로 혐의를 받고 있는 와중에도 자신의 가족들은 잘못한게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녀와 자녀들이 1990대 선거에서 승리하기 시작할 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일로코스 노르테에 있는 남편의 방부 처리한 시신을 보기 위해서 오기 시작했을 때, 많은 지지자들이 오랫동안 함께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남편이 죽은 지 거의 2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국립 묘지에 명예롭게 안장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며그녀는 몹시 애석해 했다. 마르코스는“나는 조국 필리핀을 사랑하며, 우리가 훌륭한 대통령을 가지기를 희망한다. 현재 우리 정치 지도자는 비전이 없다.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생각은 없고, 오로지 정치적인 적들을 처벌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명백하게 현 대통령 베니그노아키노 대통령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현 대통령은 1983년 암살된 베니그노아키노 주니어(Benigno Aquino Jr.) 전 상원의원의 아들이며, 그의 암살은 마르코스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커지고, 시민들이 봉기하여 마침내 3년 후에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랫동안 비난이 지속되는 가운데에서도, 마르코스 가문의 여성 가장은 “나는 나 자신과 함께 그리고 신과 함께 평화롭기 때문에”, 여전히 건강하고 활동적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마도 신은 우리가 진실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이라고 나를 아직도 살려 둔 것 같다, 정부의 막강한 권력을 포함해서 어떤 누구도 너를 건드릴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아들에게 대통령직을 남겨 주기위해서, 이멜다는 2010년에 당선된 하원의원직을 계속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잠재적으로 세 번의 연임이 가능하기 때문에 2019년까지 하원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1986년 남편이 필리핀을 쫓겨날 때, 그녀가 남겼던 거대한 구두 수집에 대한 기억으로 언제나 연상되었던, 화려한 영부인은 자신은 이미 권력과 특권층의 삶을 경험했기 때문에, 상원의원이나 부통령 등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태양 아래, 모든 종류의 보석들, 그림들, 내가 가질 만한 건물등 내가 사지 못할 것은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여덞 명의 손주를 둔 할머니는 만약 그녀에게 2019년까지 하원 의원직을 수행할 수 있는 육체적인 능력이 된다면, “바닥 민심”을 직접 챙길 수 있는 마을 대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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