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잠언 16장 28절에 “패려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고 말씀한다. 아마도 인간 세상에 동물처럼 말이 없다면 다툼의 90%는 줄어들 것이다. 즉 사람들 가운데 있는 불화, 반목, 증오, 분쟁, 분열과 같은 일들의 대부분은 말에서 기인한다는 말이다. 특히나 이간(離間)은 말의 보탬, 전달 등에서 생긴다. 그 말을 직접 들을 때는 반론의 여지가 있어서 크게 섭섭하지 않지만 제 삼자를 통해서 들을 때는 변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처로만 남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관계에 해악을 끼치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전하지 않으면 입이 가려워서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의 어릴 적에 보면 아주머니들이 새벽에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와 무슨 얘긴가를 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 아주머니들은 전날 저녁에 들은 얘기를 전하기 위해 날이 밝기를 기다린 것이다. 요즘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전화로, 이메일로 남이 한 말을 시도 때도 없이 전하는 것이다. 때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남이 한 것처럼 전하기도 하고, 자신도 그 말에 동의하고 맞장구를 쳐놓곤 자신은 빼버리고 다른 사람이 한 것처럼 슬쩍 던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일명 ‘방송국’이라고 한다. 무슨 말이든 전하고 싶으면 그 사람의 귀에 흘려놓으면 광고료 없이도 잘 전달된다. 그렇게 소식을 한 고을에 전하는 것은 채 24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교회의 직분자들에게서 우선 요구되는 것은 입의 무거움이다. 아무리 많은 일을 했어도 말을 참지 못하면 일한 것 이상을 헐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교회의 분쟁의 불씨는 말이다. 교회를 부흥시키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교회를 망치는 것은 아주 쉽다. 말을 참지 못하는 사람 한 둘만 있으면 작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도 고마워 하지만 입이 무거운 사람을 더 고마워한다.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잠언 18:8)”“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어다(잠언 19:19)”“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건지느니라(잠언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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