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약속한 일이기에 미룰 수가 없었다. 20년 전 피나투보지역에서 발생한 화산활동으로 황폐화된 잠발레스 피나투보 지역에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가시는 불국사 필리핀 포교원 불락사의 법관스님을 따라 나서기로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이전에 스님께서 보여 주신 사진상으로는 사막을 횡단하고 수도도 없는 지역이라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따라 나서야 하는 길이였다.
하지만 다행이 이번 피나투보행은 그래도 큰 마을에 위치한 학교에 컴퓨터를 설치해주러 가시는 길이시라 달구지나 사륜구동차량은 필요가 없으시단다. 새벽 6시에 스님과 만나기로 한 ‘M’을 향했다. 이른 새벽인데도 많은 이들이 출근을 서두르고 있었다. 마치 이른 아침의 한국 같은 느낌이었다. 가던 길에 아침을 먹기 위해 작은 깐띤에 들렀다. 스님께서는 구운 가지와 밥만을 드셨다. 스님이 되기 위해 준비 중인 미국인 션과 컴퓨터 엔지니어 죠이 그리고 운전기사 마리오는 푸짐히 먹었다. 스님께서는 구운 가지 외엔 드실 만한 게 없었기에 그것만 드신 것이다. 차를 타고 출발을 하려니 스님께서 차량 뒤쪽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어제까지 잘 걸리던 시동이 아침부터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전기사를 뺀 모두가 차를 밀어 시동을 걸었다.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출발이었다. 수빅을 지나고 울롱가포시를 지나 잠발레스에서 한참을 들어가니 작은 교회가 나왔다. 그곳에서 현지인 목사님을 태우고 근처의 학교를 향했다. ‘산 이시드로 초등학교’라는 곳으로 483명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 곳이었다. 학교에 도착한 시간이 11시쯤 되었다. 학교가 큰 만큼 다른 곳에 비해 많은 6대의 컴퓨터가 배정되었다. 장시간 운전에 지친 마리오를 쉬게 하고 션과 죠이 그리고 나까지 컴퓨터 설치를 도왔다. 처음 설치하는 상황이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전원스위치로 잘못 알고 누른 벨 때문인지 어느 순간 운동장엔 전교생이 열을 맞추어 서있었고 우리는 설치를 계속했다. 나중에서야 컴퓨터를 기증한 스님에게 감사를 하기 위해 나온 아이들이라고 했다. 스님은 따갈로그어로 아이들을 격려하고 함께 박수를 쳤다. 항상 조용조용 말씀하시는 스님께서 아이들 앞에만 서시면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리드로 좌중을 압도한다. 그것도 따갈로그어로 말이다. 물론 스님의 따갈로그어 실력은 유창하지는 않으시다.
6학년을 가르치는 마이갈레죠선생님은 감사를 전하며 아이들이 컴퓨터에 익숙해져 졸업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하이스쿨에서 과제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졸업생 중 많은 아이들이 하루에 1-페소에서 20페소씩 필요한 교통비가 없어 하이스쿨에 가기를 포기한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순간 교실 옆에 컴퓨터 설치가 끝나길 기다리는 6학년 아이들이 달리 보였고 그들을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어 6학년 아이들에게 단체 사진을 찍자고 했다. 60명의 아이들과 선생님을 찍어주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선생님은 아마 이 사진이 아이들의 졸업사진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설치된 컴퓨터에 모여든 아이들은 어느새 게임도 하고 생각보다 능숙하게 컴퓨터를 조작하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대접한 ‘쿠친따’를 손에 들고 다음 학교로 향했다. 처음 학교에서 한 시간을 더 들어가야 했다. 가는 길엔 사막으로 변한 지역과 초목이 무성한 지역 사이에 난 비포장 도로를 따라 갔다. 다시 산 속 비탈길을 구비구비 올라가니 두 번째 학교가 모습을 보였다. 운동장에서 한참 위에 교실들이 있었다. 교실과 반대편으로는 화산폭발 때 생긴 호수와 산들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위치에 있는 학교였다. ‘아글레오’초등학교. 전교생 198명에 8명의 선생님들이 함께 공부하는 곳이다. 다수의 아이들이 필리핀 원주민인 아이따족 아이들이었다. 피부색이 더 검고 머리가 많이 곱슬거리는 눈이 예쁜 게 특징이다.
이 학교엔 3대의 컴퓨터를 설치했다. 처음 설치 할 때 문제가 된 어댑터가 여전히 작동되지 않아 몇 차례 교환 끝에 세대를 설치했다. 유치원까지 있는 이 학교엔 웃는 것 밖에는 모를 것 같은 유치원생 3총사가 있다. 수줍지만 밝고 해맑은 아이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 설치를 돕지 않았다.
다 함께 사진을 찍을 때 스님이 머리위로 하트를 그리자고 제안했다. 198명의 아이들이 그린 하트가 내 가슴에 와서 마구 박혔다.
선생님들이 미리 준비한 판식과 스파게티로 점심을 해결하고 마지막 학교를 향했다. 두 번째 학교로부터 한 시간 반을 더 들어 갔다. 하루 동안 볼 수 있는 최대 수의 카라바오들을 보고 내 척추의 견고함을 시험하며 험한 산길을 구비구비 올라갔다. 미덥지 않던 승합차는 일단 인력으로 출발하면 탈없이 잘 달렸다. 한참을 달려도 마을은 안 보이고 뜨문뜨문 오두막만 간간이 보였다.
이제 다시 내리막. 한참을 내려가고 올라가길 반복하다 보니 지프니 한대에 사람들이 타고 출발하려 하고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이 퇴근하는 길이란다. 다행히 학교에는 두 분의 선생님과 8명의 아이들이 남아 있었다. ‘부하웬’초등학교. 133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다고는 믿기 힘들만큼 아담한 학교였다. 남아서 청소를 끝낸 아이들은 자리를 지키며 컴퓨터 설치를 기다렸다. 국기봉 같은 것 옆에 쇠꼬챙이가 있길래 용도를 물으니 수업을 알리는 종의 역할을 하는 것이란다.
조용한 산속에서 쇠꼬챙이로 국기봉을 두드리니 소리가 멀리 울려 퍼졌다. 컴퓨터 설치에 문제가 생겼다. 어댑터가 말을 안 들어 세대 중 한대만 제대로 작동을 하는 것이다. 일행 모두 아쉬움이 컸다. 특히 스님께서는 많이 속상해 하셨다. 얼마나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왔던가……
다른 일행들도 많이 속상해했다. 3월에 꼭 다시 와서 완성시키겠노라고 스님께선 아쉬운 약속을 하셨다. 기술자인 죠지도 많이 아쉬워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수빅까지 다시 나와도 맞는걸 찾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다소 낙담한 우리들을 다시 웃게 만든 것은 항상 시동을 다시 걸 때까지 잊고 있던 인력시동식 승합차였다. 하루만이지만 그 덕에 일행은 다시 웃으며 출발을 했다. 돌아오는 길은 다소의 긴장감이 지속됐다. 운전기사인 마리오가 피로가 쌓여 졸지 않도록 모두가 안마도 하고 말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마리오의 초인적인 운전 덕에 무사히 밤 10시가 넘어 출발지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천근만근 피곤한 몸이지만 마음만은 훈훈한 피나투보 여행이었다. ‘스님, 힘드시지요’라고 여쭈니 선문답처럼 내게 말씀하셨다. “아이들을 보는 게 제일 좋지요”
스님은 3월에 다시 13대의 컴퓨터를 설치하러 가신다. 7개의 마을에 설치했던 수도도 10개 마을로 늘어났다. 스님이 설치한 수도와 컴퓨터는 우리에겐 그저 봉사와 약간의 물질적 희생이지만 그들에겐 기적이다. 황폐한 산속에, 더구나 지금 같은 건기에 풍족한 물과 전기는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오두막 옆에 일군 말라가는 텃밭을 바라보고만 있는 주민의 눈엔 공허함만 가득했다.
그들에게 희망, 그리고 기적을 선물하기 위해 법관스님은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신다.
감사하며 살자.
불락사: 02-842-9747/0906-246-9945
최현준기자(momo@manil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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