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란?
광복절은 3ㆍ1절, 제헌절, 개천절과 함께 4대 국경일 중 하나로, 그 중 가장 경사스러운 날이며 가장 중요한 날이다.
8월 15일은 일본 국왕이 항복을 선언하면서 우리나라에 해방이 찾아온 날이면서, 정확히 3년 뒤 미군정을 벗어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 것과 독립국으로서 정부가 수립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 부르고 국경일로 지정하였다.
'광복(光復)'이란 단어의 뜻을 한자 그대로 번역하면 '빛을 되찾다'인데, 35년 동안 잃어버렸던 국권을 회복을 의미한다.
일제강점기
광복절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 전 우리가 국권을 빼앗긴 채 일제 침탈 속에서 살았던 일제강점기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1910년 8월, 일본은 강제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아갔다. 기나긴 일본의 식민 통치가 시작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광복에 이르기까지 35년이라는 길고 뼈아픈 일제강점기 시기를 보냈다.
1895년 강화도 사건 이후, 대한제국은 교묘한 일본의 내정 간섭을 받아왔다. 그러던 중 청ㆍ일, 노ㆍ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우리나라에도 그 세력을 뻗쳐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하기까지 이른다.
그 후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하는 날까지 우리나라는 35년간의 식민지 시기를 겪게 된다. 일본인들의 차별과 온갖 강탈로 인하여 우리 민족은 역사 상 가장 끔찍한 나날을 보냈다. 일본은 우리의 기본 권리마저 모두 빼앗고, 강제 노동과 강제 징병 및 강제 징용을 통해 한국인을 착취하였다.
더 나아가, 일본 침략자들은 우리의 민족의식과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우리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강제로 일본말을 사용하게 하였으며, 우리 고유의 이름과 성마저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였다. 전쟁 막바지에는 부족한 물자를 충당하기 위해 식량은 물론이고 숟가락까지 약탈해 전쟁 물자를 조달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금도 청산되고 있는 과거: 독일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주축국이다. 그러나 전쟁이 종식된 후, 두 나라는 완전히 상반된 길을 걸어왔다.
우선 독일의 경우를 보자. 독일은 세계 대전 동안, 600만 명의 유대인을 무참히 학살하고 유대인 말살 정책을 폈다. 우리도 영화나 여러 다른 매체를 통해 독일의 홀로코스트(the Holocaust)에 대해 듣고 보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일은 나치 전범을 끝까지 추적해 마지막 남은 전범까지 심판하고 처벌했다. 91살의 고령의 나치 전범을 법정에 세워 징역 5년을 선고한 일례만 보더라도 독일이 얼마나 자신들의 과오를 깊이 반성하고 바로잡으려고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독일의 초등학교ㆍ중학교ㆍ고등학교ㆍ대학교 교과서에는 나치 독일의 만행이 사진과 함께 자세히 실려 있다. 그리고 독일이 전쟁 피해 보상금으로 내놓은 금액은 한화로 약 100조 원(약 1000억 달러)에 달한다.
비가 내리던 1970년 12월 7일, 바르샤바 게토(Warszawa Ghetto)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당시 독일의 수상이었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유대인에게 용서를 구했다.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과거: 일본
1945년 8월 15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히로히토 일본 국왕은 육성으로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미국 등의 나라로 구성된 연합국은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을 통해 일본의 지도자들을 전쟁범죄자로 법정에 세웠다. 이 재판에서 전쟁을 총 지휘한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들 28명이 기소되었으며, 2년 후 교수형 7명 외, 종신금고형 16명, 유기금고 2명이란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가장 책임이 큰 일본 국왕 히로히토는 “국가원수라고 해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극동군사재판조례 조항에도 불구하고 처벌받지 않았다. 연합군 최고 사령관인 미국의 맥아더가 일본 점령 정책을 펴면서 국왕을 기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A급 전범으로 금고 7년형을 받았던 사게미쓰 마모루는 1950년 가석방되어 일본의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또 다른 A급 전범 혐의자인 기시 노부스케는 복역하다가 석방되어 일본 수상을 지냈다. 이렇게 전쟁에 참여했던 전쟁범죄자들이 군부 주요직 등에 임명되면서 일본의 사회지배층으로 꾸준히 명맥을 이어갔다. 당연히 이들에게 패전 이전 일본 제국은 자랑스러운 영광일 뿐, 절대로 반성해야 할 과오가 아닌 것이다.
이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교과서 왜곡으로 이어진다. 1904년 한일의정서를 통해 사실상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다음 독도를 일본 땅으로 편입한 것이므로 영유권을 주장할 정당성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몇 년 전부터 외무성 홈페이지와 방위백서 등에 독도를 자국 영토로 표기하였으며, 일본 중학교 신학습 요령 해설서에는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명기할 것을 결정했다.
또한 일본의 교과서에는 “일본은 히로시마 원자 폭탄을 맞은 피해국이며 동북아시아에 현대화를 이끌어 준 선구자 역할을 했다.”라고 설명하면서, 가해국 일본을 피해국으로 변모시켰다.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는 도쿄에 위치한 일본 최대의 신사로 제2차 세계 대전 전쟁범죄자 246만 명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2001년 8월 15일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쟁범자들을 위해 참배를 한다. 빌리 브란트의 사죄의 눈물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참고로 일본이 전쟁 피해보상금으로 내놓은 돈은 한화 약 3조 원(약 30억 달러)로 독일의 피해보상금의 고작 3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새로 쓰는 광복절
아직도 일본은 우리에게 유감만 표시했을 뿐 정식으로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교과서에 왜곡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를 바로잡는 일은 후손인 우리의 몫이다. 용서와 화해는 그 다음 순서일 것이다.‘살인 행위를 하고도 팔짱낀 채 보고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의 죄’라고 외치는 철학자 칼 야스퍼스 말은 가해국은 물론 우리 같은 피해국도 가슴에 새겨야 할 말이다.
장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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