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후원하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네이버톡톡
맨위로


 

필리핀 재향군인회 엄익호 회장 인터뷰

등록일 2011년12월12일 17시09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기사글축소 기사글확대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뉴스일자: 2011-12-12
 

지난 1일 동남아 지역 최초로 재향군인회 필리핀 지부가 창립됐다. 초대회장으로는 제2대 한인회장이자 공군 중령 출신인 엄익호 회장이 피선됐다.

 

 엄익호 회장은 60년대 상공부에 근무하면서 국가경제발전 주도적 역할을 한 산 증인이기도 하다. 본지는 지난 5일 엄익호 회장을 만나 필리핀 재향군인회의 창립배경 및 향후 계획, 공군 장교부임, 상공부 시절 등 다양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재향군인회 필리핀 지부 초대 회장으로 소감과 포부를 말씀해달라

약 4개월간의 진통 끝에 드디어 필리핀 재향군인회가 탄생했다. 우선 필리핀에서 재향 관련 단체가 창립되서 기쁘다. 지난 필리핀 대한체육회가 전국체전 1등을 한 것처럼 재향군인회 필리핀 지부도 해외지부 중 1등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재향군인회는 어떤 단체인가. 간략히 소개해달라.

재향군인회 전역 군인의 친목과 애국 애족을 목적으로 지난 1952년 2월 1일 창설된 대한민국 최대의 향군 단체다. 내년도가 재향군인회 창립 60주년이다. 현재 800만 회원 수가 있으며 정회원은 150만명 정도 된다. 재향군인회의 주요 추진사업은 향군장학금 100억 조성과 정회원 200만 확보, 보훈성금 300억 달성 등이 있다.

 

-재향군인회 창립식에 펩톡(한국전쟁 참전용사회)회원들이 참석했다. 평소 이에 대한 지원이나 교류현황이 있다면

펩톡 회원들과는 필리핀 내에서 개최되는 각종 향군 관련행사에 초대해 지속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 펨톡에 대한 지원은 우리뿐만 아니라 필리핀 옥타, 코이카 등 여러 단체에서도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리핀 재향군인회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과 추진사업들이 있다면

재향군인회 필리핀 지부가 출범한지 이제 일주일째다. 아직은 구상 중인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향군인회는 그 동안 국가 역사 발전과 함께해왔다는 것이다.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와서 필리핀에 5억불 차관도 제공하고 민다나오 농복합산업 단지 등 여러 지원도 약속했다. 재향군인회에서 필리핀 사업을 지원한다면 EDCF 같은 사업을 돕고 싶다. 또한 필리핀 재향관련 단체 보면 자금이 너무 없고 운영할 줄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한국 재향군인회를 선진적인 운영방식도 알리고 싶다.

 

-최근 전시작전통제권, 중-미간 군사갈등 등 안보이슈가 다변화 되고 있다. 재향군인회 회장으로써 현재 동북아 안보상황을 평가해달라

무엇보다 전시작전통제권을 우선 사수해야 한다고 본다. 박세직 재향군인회 회장이 밝힌 것 처

럼 성급한 전작권 인수는 국가 안보에 치명적일 수 있다.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거쳐 2015년 정도 인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중요한 한반도 안보의 핵심 축이다.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산다’고 하는데 혹시 이번 재향군인회 창립을 통해 필리핀 교민자녀들에 대한 안보교육 계획 있다면 말씀해 달라

한국학교와 애기하면서 협의 중이다. 특히 연평도, 천안함, 6.25 관련해서 재향군인회 주최로 글짓기나 공모전 등 행사를 개최하면 바람직 할 것 같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공군 장교로 근무했던 당시 상황을 말해달라

대학4학년때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발발 직후 내가 안국동에서 있었는데 탱크들이 카터필터 굉음 소리내면서 15대, 1개 대대씩 서울로 입성했다. 전쟁중이라 졸업과 동시에 공군에 장교로 임관하여 전쟁에 참전하였다. 52년도 막 임관 했을 때는 공군사관학교 출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반년쯤 지나자 공사 1기가 막 들어온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공사 1기와 2기 출신들의 기개가 좋았다.

 

-60년대 상공부 시절 국가경제발전과 함께 하셨는데 이에 대한 소회를 전한다면

나는 4.19 시작된 이후 공무원을 시작했다. 국무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차관으로 모셨었다. 공업국장 시절 박정희 대통령한테 디젤엔진을 중심으로 한 기계공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언한 적이 있다. 이때 정래혁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굉장히 똑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사람은 27세에 최연소 무역국장이 됐고 상공부 장관이 됐다. 정래혁 장관 총괄 하에 상공부 일원들이 주도적으로 제1차 5개년 계획을 작성했다. 먼저 시멘트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25만 톤 공장 일단 두 곳을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자동차공업법도 정보부에 협조를 받아서 만들었다. 이후 66년도부터 서서히 제1차 5개년 경제개발 계획의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필리핀에 오시게 된 연유를 말씀해달라

공업 국장일때 스페인 문화 등 남미 쪽에 항상 관심이 많았고 종교적인 요인도 나를 필리핀 쪽으로 이주하게 한 요인이다.

 

-당시 필리핀과 필리핀 교민사회는 어땠나

당시 한인 교민들은 1500명 정도 박에 없었다. 그 때 온 사람은 다 먹고 살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었다. 한국에서 군, 관계 출신인 사람은 별로 없었다. 상공부 출신으로 대우, 삼성 등 여러 지상사들과 협력해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특히 일본의 미쯔비시 화학이랑 경쟁해서 대한민국 비료를 필리핀에 처음 수출한 것이 기억난다.

 

-원로 한인회장으로 현 한인사회에 대해 한 말씀을 해달라.

필리핀만큼 잘 조직되고 단합되는 한인 사회는 없다고 본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한국부인회, 자유총연맹, 필리핀 옥타 등 모든 한인관련 단체들이 빠짐없이 모두 필리핀에 자리잡고 있고 잘 활성화 돼있다. 아울러 필리핀은 여전히 나에게 매력적인 나라며 좋은 친구들이 있는 곳이다.

 

김태언 기자 / taeun@manilaseoul.com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한인뉴스 필리핀뉴스 한국뉴스 세계뉴스 칼럼

포토뉴스 더보기

기부뉴스 더보기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