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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 업체에 근무하던 한국인 기술자가 간첩 혐의로 중국 당국에 구속된 배경에는 '반도체 전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정부는 과거 삼성전자에서 근무했고 이후 중국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서 일했던 한국 교민 50대 A씨가 지난해 말 간첩 혐의로 중국에서 체포된 사실을 지난 29일 확인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간첩 행위의 정의와 적용 범위를 넓히는 내용으로 반간첩법을 개정해 시행하고 있다.
한국 국민이 이 법 개정 이후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체포에 적용된 구체적인 혐의가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외신들은 A씨 체포가 한국 검찰이 지난 1월 삼성전자 메모리 기술을 창신메모리에 유출한 혐의로 전직 삼성전자 부장 김모씨를 구속기소한 사건과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외신들은 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임원을 지낸 최모씨가 삼성전자 설계도를 훔쳐 중국 시안 삼성전자 공장 인근에 반도체 공장을 세우려 한 혐의로 한국 당국에 체포된 작년 6월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경찰에 올해 적발된 첨단기술 유출 사건 12건 중 10건이 중국 관련"이라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도 나왔다.
한국의 이런 움직임은 중국의 기술 탈취에 대한 미국의 대대적 단속 캠페인에 참여한 것으로 해석됐다.
외신들은 A씨 구속이 중국의 반도체 기술 탈취에 대한 한국의 단속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보복' 차원일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번 사건은 중국이 미국과 기술 전쟁을 포함해 서방과 경쟁이 심화하면서 방첩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미국은 2020년부터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고 있으며, 한국 등 동맹국들도 동참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는 한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 등 반도체 관련 기술 탈취를 노리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A씨와 비슷한 사례가 더 많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 분석도 나온다.
이재민 서울대 교수는 FT와 인터뷰에서 "특히 첨단기술 분야에서 한중 양국과 관련한 이런 종류의 산업 스파이 사건을 더 많이 볼 가능성이 크다"며 "두 나라가 반도체를 국가 안보의 핵심 산업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한국 기업은 여전히 첨단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에 비해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격차는 좁혀지고 있다.
다만 A씨 가족들의 주장과 전문가 분석을 놓고 볼 때 간첩 혐의를 받을 만큼 A씨가 창신메모리 첨단기술을 빼돌렸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A씨의 딸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같이 근무한 분이 당시 프로젝트 권한은 대만인들이 주로 갖고 있었고, 한국인은 그 프로젝트를 옆에서 서포트(지원)해주는 일 정도였기 때문에 (A씨가) 입사 후 그렇게 많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까지 이야기했다"며 A씨가 기밀에 접근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벤 포니 서울대 연구원은 FT에 "창신의 메모리 기술이 한국 메모리 기술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A씨가 한국 경쟁사에 영업 비밀을 넘기는 것으로 이익을 얻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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