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현지시간) 하타이 안타키아 일대에서 한국긴급구호대가 처음 구조한 70대 남성. 구조대는 이날 오전 3명의 생존자를 추가 구조했다. 외교부 제공
시리아에서 강진 속에서 숨진 엄마와 탯줄이 연결된 상태로 구조된 신생아가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규모 7.8와 7.5의 강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 하루만에 사망자가 4천 명을 넘어섰다.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사망자 수는 지진 발생 4일만인 9일 오후(현재시각) 이미 확인된 2만명을 넘겼다.
AFP·로이터·AP·신화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9일까지 튀르키예 사망자 수가 1만7,134명으로 집계됐다.
시리아의 경우 당국과 반군 측 구조대 '하얀 헬멧' 설명을 종합하면 전날 저녁까지 3,162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합치면 양국의 희생자 수는 총 2만296명을 훌쩍 넘기는 것으로, 이는 이미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사망자 1만8,500을 훌쩍 넘어선 규모다. 앞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번 지진에 따른 전체 사망자가 2만명을 넘을 수 있다고 전망했고,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10만명 이상이 될 가능성도 14%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현재 튀르키예에서만 최대 20만 명의 시민이 여전히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튀르키예 당국은 이날 기준 11만명 이상의 구조 인력과 5500여대의 중장비가 피해 지역에 투입됐다고 밝혔다. 전 세계 56개국에서는 6479명에 달하는 해외 구호대가 현지에 파견됐다. 하지만 구조의 손길은 턱없이 부족하다. 생존자들도 식량 부족과 추위로 피해가 더커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튀르키예 재난위기관리청(AFAD)은 전날 트위터에서 "카흐만마라슈를 강타한 최초 지진 이후 700번의 여진이 잇따랐다."며 총 6만명 이상의 인력이 피해지역에 파견돼 구조 및 지원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자연재해 발생 후 인명 구조의 '골든타임'으로 여겨지는 72시간이 다가와 희망의 불씨도 점점 희미해지는 것 아니냐는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다.
카흐라만마라슈에서 구조 활동 중인 이스라엘의 리노르 아티아스는 CNN에 "사람들이 계속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고, 아이들은 부모를 잃었다"며 "추위를 이기려 매트리스까지 태우는 바람에 유해한 연기가 공기를 채우면서 냄새가 지독하다"고 전했다.
희생자들의 시신도 당장 거리에 그대로 방치돼 있어 참혹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주민들은 추위속에서도 대피소로 가지 못하고 추위속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부족한 대피 시설과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갇힌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체육관에 모아 놓은 시신들 속에서 가족을 찾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가족의 시신을 붙들고 통곡하는 이들도 있다.
ICRC 중동지부는 "얼마 지나지 않으면 시신을 적절히 수습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기 시작할 것"이라며 난방기구와 텐트, 식음료 등 생필품은 물론 시신을 수습할 가방도 부족한 상태라며 지원을 호소했다고 영국 BBC 방송은 전했다.
튀르키예 당국의 늑장 대응과 특히 1999년 1만7000여명이 사망한 이즈미트 대지진 이후 재난 예방과 응급대응 서비스 개선 등을 위해 정부가 징수한 '특별통신세', 이른바 '지진세'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상황이다. 당초 재난 이후 일시적으로 도입한다고 했던 지진세는 현재까지도 계속 추징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정부가 재난 예방에도 소홀했고 대응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게 드러났다는 비판이 크다. 지난 24년간 걷힌 세금 규모만 약 880억 리라(약 5조9000억원)에 달한다는 추산이 나오지만, 그 용처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튀르키예 재무부는 지진세를 도로, 교량 등 인프라 투자에 사용한다는 '일반 예산 수입'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걷은 세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였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20년째 장기 집권 중으로 오는 5월 조기 대선을 코앞에 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날 남부 피해지역을 직접 찾아 둘러보며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그는 8일 남부 하타이와 카라만마라슈 등 지진 피해 지역을 방문해 "(초기 대응에)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서도 "현재는 상황을 통제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족한 점이 있지만, 이렇게 큰 재난에 준비돼 있기는 불가능하다"며 "우리는 그 어떤 시민도 방치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조치를 취하는 등 재난 상황 관리에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미흡한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선 "일부 부정한 사람들이 정부를 향해 허위 비방을 늘어놓고 있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단합이며, 정치적 이익을 따져 네거티브 공세를 펴는 이들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날 피해가 큰 10개 주를 재난 지역으로 설정하고, 3개월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피해 가족에는 1만 리라(약 67만원)의 위로금 지급을 약속했다.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에므르 페커 유럽국장은 FT에 "재난 규모를 고려할 때 대응은 신속하고 강력했다"며 "이 정도 수준의 대응이 유지된다면 에르도안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이득을 볼 것"이라고 관측했다. 반면 튀르키예 싱크탱크 테파브의 셀림 코루 분석가는 "참담해진 사람들은 변화에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에르도안 정부는 지진을 핑계로 선거를 미루려 할 것"이라며 악재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8일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튀르키예 내에서 트위터 접속이 제한됐다. 정부 대응에 대한 비판 여론이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확산하고 있던 상황에서다. AFP는 "현지 경찰이 지진에 대한 도발적인 게시물을 SNS에 올린 18명을 구금했다"고 보도했다.
오랜 내전으로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놓인 시리아의 경우 피해가 집중된 북서부 지역이 반군의 통제 하에 있는 탓에 구호물자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CNN은 튀르키예에만 총 70개국과 14개 국제기구가 지원에 나섰으나, 시리아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지원 제공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재까지 시리아에 직접 구호물자를 보낸 것은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이란, 리비아, 이집트, 알제리, 인도 등 주변 소수 국가에 불과하다. 튀르키예에 대해 제일 먼저 지원 성명을 낸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시리아에 대한 공식 지원을 언급하지 않았다.
백악관 대변인은 지원물자가 피해지역에 직접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리아 정부를 통한 지원에 대해 배제하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제네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많은 생존자가 지금 끔찍한 여건에서 야외에 머물고 있다"며 "수색·구조작업과 같은 속도로 지원에 나서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이 2차 재난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8일 튀르키예로 급파된 대한민국 긴급구호대가 현지에서 구조 활동을 시작했으며, 9일 처음으로 생존자를 구조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 한국 긴급구호대는 하타이주(州) 안타키아의 고등학교 등지에서 구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6시30분께 70대 중반 남성 1명을 찾아내 구조했다. 지진 발생 74시간 만이다. 이어 오전 10시께 무너진 5층 건물 잔해에서 마흐메트(40)와 딸 루즈(2), 손가락 골절을 입은 여성 라와(35) 등을 추가로 구출했다. 이들은 지진으로 고립된 지 78시간 만에 구조돼 탈수 증상을 보였으나, 의식은 또렷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생존자를 구출한 곳에선 사망자 4명이 추가로 발견됐다.
긴급구호대는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셀림 아나돌루 고등학교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했으며, 9일 오전부터 안타키아의 고등학교에서 구호 활동에 돌입했다.
구호대는 외교부와 소방청, 코이카 그리고 육군 특수전사령부 소속 군인 등 118명으로 구성됐으며, 튀르키예 측의 요청에 따라 탐색구조팀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우리나라가 해외 재난지역에 보낸 구호대 중 단일 파견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로, 앞으로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에서 구호 활동을 할 예정이다.
지진은 6일 오전 4시17분 튀르키예 남부 도시 가지안테프에서 약 33㎞ 떨어진 내륙, 지하 17.9㎞에서 규모 7.8(USGS)로 발생했고, 오후 1시24분 카흐라만마라슈 북동쪽 59㎞ 지점에서 두 차례에 걸친 강진과 80여 차례의 여진으로 튀르키예는 물론 남부 인접국 시리아에서도 사상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첫번째 지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새벽시간에 발생해 그 피해가 더 심각했다.
히로시마 원폭의 3만 2천개 위력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규모 7.8 지진의 위력은 TNT 500메가톤에 해당하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32개와 맞먹는 규모다.
지진 강도는 리히터 규모로 측정하는데 규모 1 올라갈 때마다 에너지 방출량은 32배씩 커진다. 히로시마 원자폭탄을 규모 4.8 정도로 보는데, 규모 7.8이면 3단위 차이니까 32배를 3번 곱해서 약 3만2000배가 된다. 이번 지진의 위력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3만 배가 넘는 셈이다.
84년 전인 1939년에도 튀르키예 북부 에르진잔에서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해 3만 명 이상이 숨졌다.
진원 깊이(17.9㎞)가 얕고 여진이 계속되는 데다 대도시 인근에서 지진이 발생하며 피해를 키웠다. 가지안테프는 제조업, 농업, 가죽공예 등이 발달한 곳이라 튀르키예 경제에도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6일, 이번 지진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10억달러(약 1조2590억원)에서 100억달러 사이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는 튀르키예 국내총생산(GDP)의 2%에 달하는 액수다. 하지만 USGS는 9일 피해규모가 튀르키예 국내총생산(GDP)의 6%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다시 내놓았다.
하지만 이 마저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피해 집계로 인해 얼마나 커질지 알 수 없다.
마닐라서울편집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