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필리핀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이색 당선 인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과거사를 외면하는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 코스 전 대통령의 가족들은 정치적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필리핀의 복싱영웅 매니 파키아 오(38)는 상원 입성을 눈앞에 뒀다. 10일 오후 약 92%의 개표가 이뤄진 가운데 파키아오는 1천500만 표를 얻어 12명을 뽑는 상 원의원 선거에서 득표율 8위를 기록했다. 50명 이 출마한 상원 선거에서 이변이 없는한 당선이 확실하다.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의 빈민가에 태어나 생계를 위해 링에 오른 파키아오는 세계 최초로 8체급을 석권한 필리핀의 '영웅'이다. 그는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티모시 브래들리(33•미국)를 꺾고 은퇴하며 정치인으 로 '제2의 인생'을 선언했다. 파키아오는 지난 2 월 "동성애 커플은 동물만도 못하다"는 발언으 로 비난을 샀다. 파키아오는 2010년 하원의원 에 당선됐지만 복싱에 치중, 의정활동은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전성기 때는 대통령에 출마해도 당선될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인 기를 끌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첫 성전환(트랜 스젠더) 국회의원도 탄생했다. 필리핀 북부 바탄의 한 지역구에서 집권 자 유당(LP) 후보로 출마한 제럴딘 로먼(49)은 하 원 의원에 당선됐다. 20여년 전 성전환 수술을 한 그녀는 성 소수 자인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 차별 방지를 위한 위한 입법 활동을 하고 싶다 는 포부를 밝혀왔다.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가톨릭 신자로, 동성애 결혼을 금지하는 등 성 소수자의 입지가 크지 않은 필리핀에서 로먼의 당선이 주목받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으 로 '사치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멜다(86)는 하원 의원 3연임, 딸 이미(60)는 일로코스 노르테 주 지사 3연임에 각각 성공했다. 이들은 마르코스 전 대통령 독재 치하 인권 유린에 대해 사과를 거부한다는 비판을 받지만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고향인 일로코스 노르 테 주를 든든한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가문의 부활'을 노리고 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 들인 마르코스 주니어(58) 상원의원은 부통령 선거에서 여당 후보인 레니 로브레도(52) 하원 의원과 접전을 벌이고 있다. 10일 오후 현재 비 공식 집계 결과 로브레도 의원(득표율 35.1%) 이 마르코스 주니어 의원(34.6%)을 19만여 표 앞서고 있지만 격차가 크지 않아 개표가 끝날 때까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리아 아로요(69) 전 대통령은 자신의 고 향인 마닐라 북부 팜팡가주를 지역구로 하원의 원에 당선돼 3연임을 하게 됐다. 아로요 전 대통 령은 2001∼2010년 재임 때 비리와 부정선거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정치 탄압 의 희생자라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