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법률회사에 소속된 한인 변 호사들은 30대 중반 무렵이 되면 현 재 회사에서 계속 일할지 아니면 기 회가 좀 더 많은 것으로 보이는 홍콩 이나 싱가포르로 자리를 옮길지 고 민에 빠진다. 20대나 30대 초반에 열심히 일해 업무능력은 뛰어나지만, 이 연령대에 들어서 고객 유치가 갈수록 중요해 질 경우 인맥이나 부모 배경 등 사회 적 관계에서 백인 동료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드니 북서부에 있는 명문 고교 제임스 루스 농고는 최근 수십 년간 대입 수학능력시험 격인 HSC에서 단 연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워낙 성적이 우수해 3학년 학생 들은 HSC 성적에다 내신을 환산한 ' 대학입학시험점수(ATAR)'에서 만점 인 99.95점도 부족하다며 싸이의 히 트곡 '강남 스타일'에서 따와 "ATAR 100점이 필요해"라는 풍자곡을 읊조 릴 정도다. 이 학교 학생의 최대 80% 는 비영어권 출신이며 이들 대부분은 아시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처럼 아시아계 학생들이 학교에 서는 월등한 성적을 내고 있지만, 정 계나 재계, 학계 상층부에서는 아시 아계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현실 에 대해 시드니모닝헤럴드 일요판인 선 헤럴드는 1일 아시아계가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에 막혀 기회 를 잃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나무 천 장'은 미국 등 서구 사회에서 아시아 계의 고위직 상승을 막는 보이지 않 는 장벽을 일컫는다. 아시아계 후손은 호주 전체 인구의 12% 정도다. 하지만 연방 상하원 의 원 226명 중 아시아계는 4명에 불과 하며, 연방정부 부처 17개 중에서 아 시아계가 수장으로 있는 곳은 한 곳 에 그치고 있다. 민간에서도 별 차이 가 없어 2013년 호주다양성위원회 (DCA)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계는 최고경영자의 1.9%, 이사진의 4.2% 만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드니대학 부총장인 마이클 스펜 스는 선 헤럴드에 "제임스 루스는 30 년 동안 매우 뛰어난 아시아계를 배 출해왔다"며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 나"라고 질문을 던졌다. 연방 인종차별위원회의 팀 수포마 산 위원장은 "지도자는 카리스마가 있고, 적극적이며, 거침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하지만 아시아계에 대해서는 수줍어하고 자신감이 없으며 내향적 이라는 정형화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 다"고 지적했다. 2014년 수포마산 위 원장은 대나무 천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21세기에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졌지만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아시아계 호주인 계급이 형성될 것이 라고 경고한 바 있다. 최근에는 민감 한 주제인 인종 문제에 대해 약간의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시드니대학은 '2020 전략'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문화적 다양성을 선 정하고 컨설팅업체 PwC, 웨스트팩 은행, 통신기업 텔스트라 등 주요 기 업과 함께 아시아계의 고위직 진출 보장을 위해 더욱 힘을 쏟기로 했다. PwC의 경우 2020년까지 아시아계 파트너 비율을 11%로 높이기로 했다. 퇴임 예정인 공영 ABC 방송의 마 크 스콧 최고경영자는 영국 BBC 방 송과 비교하며 자신의 방송국 내에 문화적 다양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최근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시드니에서 활동하는 김진한 변호 사는 연합뉴스에 "문화적 요인과 함께 미국에 비해 짧은 이민역사가 작용하 고 있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아시 아계 진출도 더 활발해질 것"이라며 " 아시아계 학생들은 스포츠나 사회봉 사 등 학교 밖 활동에도 더욱 적극적 으로 참여하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