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전직 대통령들은 시장·하원의원 연임 노려
오는 9일 필리핀에서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총선과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색 후 보자들이 눈에 띈다. 가장 대표적인 후보는 필리핀의 복싱영웅 매니 파키아오(38)다. 2010년 임기 3년의 하 원의원에 당선된 뒤 연임에 성공한 그가 이번 엔 상원의원직에 도전한다. 5일 현지 여론조사업체 펄스아시아에 따 르면 파키아오는 상원의원 12명을 뽑는 선거 에서 지지율이 40%에 육박해 이변이 없는 한 당선이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원의원 출 마자는 50명이다. 파키아오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의 빈 민가에 태어나 초등학생 때 복싱을 시작해 프 로 무대에서 사상 최초로 8체급을 석권했다. 그는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티모 시 브래들리(33•미국)를 꺾고 은퇴를 선언했 다. 주먹 하나로 세계 정상에 오른 파키아오 는 필리핀에서 영웅과 같은 존재다. 정치인으로 봉사하겠다는 그의 꿈은 지난 2월 "동성애 커플은 동물만도 못하다"는 발언 으로 한때 역풍을 맞기도 했다. 부와 명예, 인 기를 모두 누리는 파키아오가 상원에 입성하 면 다음 꿈은 대통령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제럴딘 로먼(49)은 하원 선거에 출마한 트 랜스젠더(성전환자)다. 가톨릭 신자가 전체 인구의 83%를 차지하 는 필리핀은 동성애 결혼을 금지하는 등 성 소수자인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 전환자)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20여 년 전 성전환 수술을 한 로먼이 의원 배지를 다는 첫 트랜스젠더가 될지 관심을 끈 다. 필리핀 북부 바탄을 지역구로 출마한 집 권 자유당 후보 로먼은 현지 언론에 "성 소수 자인 유권자 1만5천 명의 지지를 받고 있다" 고 말했다. 로먼은 의원에 당선되면 성 소수자 차별 방 지를 위한 입법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로먼은 "의회에 갔을 때 어떤 화장실을 쓸지 문제"라 고 벌써 걱정했다. 이번 총선과 지방선거에는 전직 대통령들 도 출마했다. 조지프 에스트라다(80) 전 대통령은 마닐 라 시장 재선에, 글로리아 아로요(69) 전 대통 령은 하원의원 3연임에 각각 도전장을 냈다.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은 1998년 대통령 자 리에 올랐으나 그의 부정에 반발하는 시민운 동으로 중도 퇴진했다. 2007년 9월 부정부패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후임 아로요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이런 비리 전력에도 영화배우 출신이라는 인 기에 힘입어 2013년 마닐라 시장에 당선됐다. 아로요 전 대통령은 2001∼2010년 재임 때 비리와 부정선거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을 받 고 있지만 2010년 자신의 고향인 마닐라 북부 팜팡가주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뒤 3번째 임기를 노리고 있다. 지방마다 토지와 기업을 보유한 토착세력 이 영향력을 행사하며 유력 정치 가문으로 자리 잡은 풍토 탓에 비리 정치인이 계속 활 동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