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골드버그 신임 주한 미국대사(좌)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우)
"저는 이번 주 막 한국에 도착했지만, 이 행사에 참여하고 싶었다. 차별을 반대하고,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미국의 헌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필립 골드버그 신임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한 연설 중 일부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 대사관이 퀴어축제에 발맞춰 연대의 의미로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대사가 공식 일정으로 직접 퀴어 축제에 참여해 직접 연설에 나선 건 이례적이다.
골드버그 대사는 성소수자로 동성 배우자가 있다. 이런 이유로 골드버그 대사의 퀴어축제 방문은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퀴어축제가 열린 서울광장엔 국내 주요 언론은 물론 <로이터>, AP통신, SIPA,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외신이 말 그대로 총출동해 골드버그 대사의 행보를 전했다.
반발도 없진 않았다. 이날 오후부터 서울광장 건너편 서울시의회 앞에선 보수 개신교계를 주축으로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가 열렸다.
일부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으로 건너와 '차별금지법 반대' '학생인권조례 반대' 등의 구호가 적인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골드버그 대사 부임 반대 구호가 적힌 팻말을 높이 치켜들며 '주한미국대사관 철수'란 구호를 외쳤다. 다행히 경찰이 현장을 통제해 큰 충돌은 없었다.
보수 개신교는 골드버그 대사 취임 이전부터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자유인권실천국민행동, 건강한사회를위한국민연대 등 보수 성향 단체들은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주한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골드버그 대사 부임에 반대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골드버그 대사가 동성 파트너를 대동하고 한국에 부임하게 되면 첨예한 논쟁이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해 발생한 한미동맹 정신 훼손 및 미국에 대한 반감 등 모든 부정적 결과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퀴어축제에서 골드버그 대사가 연설한 후에도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은 모양새다.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주요셉 대표는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골드버그 대사가 퀴어행사에 참석해 적극 지지발언을 한 건 동성애를 반대하는 다수 한국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경솔한 행동이며 한미동맹 균열을 초래할 매우 철없고 어리석은 망동"이라고 비판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대북 강경파라는 평가를 받는다. 인사청문회에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미국의 비확산 목표와 부합한다고 말하는 한편 북한을 불량국가라고 규정하는 등 강경노선을 드러냈다.
한국 보수층이나 보수 개신교가 좋아할만한 유형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보수 개신교계는 성소수자란 이유로 반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반발이 흔히 말하는 문화적 차이일 수는 있겠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동성혼이 적어도 '법적으론' 문제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 미국 연방대법원은 2015년 6월 동성 결혼이 합헌이란 결정을 내렸었다.
일부 필리핀 언론인은 신임 주한 대사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오래된 모욕에서 비롯됐다고 논평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언론인 라파엘 라시드는 트위터 스레드에서 필립 골드버그가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하면서 일부 한국인들이 강하게 반발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2016년 두테르테가 골드버그를 향해 던진 동성애 혐오적 비방으로부터 나왔을 수도 있다고 인식했다.
골드버그는 당시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였다. 그는 같은 해 10월에 사직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그해 8월 국민연설에서 골드버그를 상대로 동성애 혐오적 비방을 퍼부어 외교적 갈등을 촉발시켰다.
그는 "알다시피 대사와 싸우고 있다. 그의 게이 대사, 창녀의 아들. 그는 나를 화나게 했다"고 전 대통령이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서울신문/마닐라서울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