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된 사람중에 세스 드릴론이라는 유명 여성앵커가 끼어 있어서 인지는 몰라도 일주일 이상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ABS-CBN TV 취재진 납치사건은 인질들이 지난 18일 모두 풀려남으로써 8일만에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후속 수사 과정에서 중재에 나섰던 이스나지 술루 시장 부자와 길잡이까지 납치사건에 연루된 혐의가 있어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극렬 이슬람 테러단체 아부 샤아프 지도자와의 인터뷰를 추진하자는 미끼에 걸린 취재팀이 알선자와 가이드들의 배신으로 납치범들에게 인계된 것은 물론 일주일간의 협상과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수백만페소의 석방금을 내고 풀려난 것 등등이 많은 미스테리를 내포하고 있다.
아로요 대통령은 아부사얍조직원으로 추정되는 납치범들을 끝까지 추적해 사법처리하라고 지시를 내렸지만, 제2, 제3의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인질 납치 사건의 배후에 대한 철저한 수사로 인질납치가 점점 비즈니스화되고 있는 실상을 차단할 처방이 절실하다.
한국인 인질 사건을 포함해 최근에 자행된 이태리 신부, 호주인 인질 납치사건 등을 돌이켜 보면, 인질 납치사건은 반군이나 범죄단체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이라기보다는 가이드나 제보자들까지 공모해 저지르는 기획범죄의 성격이 짙다.
거액의 석방금으로 한 밑천 잡아보겠다는 강도성(?) 인질 납치사건에는 심지어 사건 해결을 중재하고 나서는 시장이나 지역 지도자들까지 배당금을 챙기려고 하는 바람에 석방금이 처음보다 2배, 3배로 부풀려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들 사이에서는 인질을 화물로 비유해 '추진비', '적재비', '하역비' 등으로 비용을 구분하면서 배당에서 일정 몫을 할당하는 내부적인 룰도 정해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인질범들이 일망타진되지 않았지만 인질이 풀려나면 사건이 일단락된 것으로 보는 풍조도 인질 사건이라는 '벤처 비즈니스'(모험사업)를 조장하고 있으므로, 경찰과 정부는 차제에 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물가급등과 통화가치 하락, 외환 보유 급락, 경기 후퇴 등으로 베트남이 이미 경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도 경제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필리핀도 베트남처럼 물가고를 겪으면서 최근 3개월 사이 통화가치가 7% 하락하면서 경기 후퇴를 똑같이 경험하고 있으므로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식량을 자급하고 있는 베트남보다 여건이 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경제의 자생력 측면에서 관치 경제가 주도하는 베트남보다는 탄력성이 있는 것이 다행이다. 1/4분기보다는 소비가 살아나면서 경제성장률이 5% 후반대까지 올라서고 있고, 수년래 허리띠를 죄면서 2008년을 '재정 흑자 원년의 해'로 공언해오다 이마저도 일찌감치 포기하고 경기부양에 나선 필리핀정부의 노력이 빛을 보고 있다. 세수 호조에 편승해 5월중 재정적자도 예상보다 70%이상 줄어들었다. 비상시 페트론정유사 정부 지분 40%를 처분한다는 계획을 유보해도 될 만큼 재정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무엇보다 일본, 태국, 베트남 등을 통한 쌀 추가 수입이 국제 쌀값을 올리지 않으면서 원활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 이미 7-10월 '추궁기'의 물량이 다 확보됐으므로 지역적으로 쌀값 급등이 없도록 사재기를 단속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정부가 마닐라 등지의 도시 빈민들에게 정착 지원금을 줄테니 농촌에 가서 고구마 등 자급할 식량을 재배하라고 권장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경기 후퇴로 실업률이 8%이상 오르고 있으므로 일자리가 없는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가면 걸식하지 않더라도 연명할 수 있다는 것이나, 도시 빈민들이 잘 호응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
19일 한국의 매스컴들은 제1호 건조 선박 인도를 목전에 둔 한진 수빅조선소를 대서 특필하고 나섰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비화'들이 속속 게재되면서 '조선 한국'의 신화가 필리핀 땅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을 보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몇 가지 특기사항을 살펴본다. 우선 2부제 24시간 전천후 근무를 한 점이다. 자재 운송, 배치 같은 작업은 주간에 수행해야 하지만, 용접∙도장작업은 폭염과 폭우 때문에 야간에 수행해야 했다. 이같은 역발상이 가능해 납기를 앞당긴 것은 풍부하고 저렴한 인력 지원이 가능했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6개월이나 되는 5-11월 우기에 철판 절단, 용접 등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실내 작업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 '초대형 천막'으로 실내 작업장 효과를 내게 했다. 폭1백미터, 길이370미터에 달하는 도크작업을 할 때도 철제조립물에 천막을 걸쳐 이동시켜가며 100% 실내작업 효과를 낸 것도 경이적이었다.
이런 발상의 전환과 창의력이 있었기에 한국이 세계적인 조선 최강국이 됐고 수빅조선소가 세상에 성공적으로 선을 보이게 된 것이지만, 이를 전적으로 우리만의 공으로 우쭐하는 우는 범하지 말자.
500명의 한국직원들과 함께한 7000명의 필리핀 현지직원들이 있었고(이들은 조선소가 본격 가동되는 내년부터는 2만5천명으로 늘어난다), 또 물심 양면의 지원을 한 필리핀 정부가 있다.
50년간 월 1000만원대의 파격적인 임대료를 제의하고, 32%의 법인세를 5%로 감면하면서 한진조선소를 유치한 아로요 정부는 허가전 사전공사설, 산림훼손 시비, 과도한 보상 요구 등에 시달려온 한진을 외압에서 보호해 왔다.
수빅조선소가 본격 가동되면 필리핀은 일약 한∙중∙일에 이은 세계 4대 조선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노파심이지만 '삼성 아메리카'가 미국회사고 '지엠 코리아'가 한국 회사인 것처럼 '한진 수빅조선소'는 필리핀회사라는 법적 사실에 토를 달지 말자는 당부를 덧붙이고 싶다. 제2차 대전 때 필리핀을 무력 지배했던 일본은 이후 필리핀의 도로, 교량, 항만, 공항 등 무수한 사회 인프라 시설을 짓는 등 필리핀 현대화에 공헌해 지금은 아무도 일본을 비방하지 않는다. 한진조선소가 필리핀 경제를 부양하고 필리핀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으므로 수빅조선소를 통해 필리핀이 자부심을 갖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