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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의 상징 리잘공원에 설치된 한국기념물 7가지를 아시나요?

등록일 2022년04월09일 00시1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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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9일 토요일 오전에 필리핀한인총연합회 심재신 회장과 박현모 고문 그리고 김용규 사무국장은 마닐라 리잘 공원을 찾았다.

 

리잘공원과 산티아고 요새에 설치된 한국과 관련된 기념물들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박현모 고문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리잘공원 내 기념물 직접 설치하기도 했으며, 설치된 기념물들의 히스토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산증인으로 함께 했다.

 

리잘 공원은 필리핀어로는 리와상 리잘(Liwasang Rizal), 스페인어로는 파르케 리잘(Parque Rizal)이라 불리며 루네타 공원이라고도 불린다. 총 58헥타르(58만 제곱미터)의 면적을 차지하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 공원 중 하나다.

 

심회장 일행은 먼저 산티아고 요새를 찾았다. 관광지로 너무 잘 알려진 산티아고 요새에 한국관련 조형물이 무엇이 있을까 싶지만 호세 리잘 기념관을 통과해 요새 뒤쪽으로 가면 유명한 호세 리잘의 ‘마지막 인사’를 각국의 언어로 번역해 새겨 놓은 기념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중에는 1998년 만들어진 검은색 암석에 흰색으로 음각된 민영태 교수가 번역한 한글판 호세 리잘의 마지막 인사가 새겨져 있다.

 

“나의 사랑하는 조국이여,

 나의 아픔 중의 아픔이여 사랑하는 필리핀이여,

 나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들으라.

 여기 너에게 모든 것을 놓고 가노라.

 나의 어머니 아버지, 나의 사랑을, 나는 가노라.

 종도 살인자도 압살자 들도 없는 곳으로,

 신앙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그곳, 

 오직 하나님만이 왕이신 그곳으로”

 

호세 리잘의 마지막 인사 중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조국의 독립과 번영만을 바랬던 호세 리잘의 간절하면서도 담담한 마음이 담긴 마지막 인사를 한글로 읽어 내려가니 조국 의 독립을 바라던 우리나라의 민족열사들도 이러하였으리라 생각되었다.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호세 리잘은 1886년 발표한 첫 소설 “나에게 손대지 마라 Noli me Tangere”와 1891년 발표한 “체제전복 El filibusterismo”를 통해 개혁운동의 대변자로 입지를 굳혔으며, 1896년부터 1902년까지 지속된 필리핀 혁명과 필리핀 민족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만든 인물이다.

 

그는 1892년 필리핀민족동맹을 조직해 사회개혁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다피탄섬에 유배되었다 풀려났지만, 1896년 민족주의 비밀 결사단체 카티푸난(인민의 자녀들의 최고존자 카티푸난: Kataas-taasang, Kagalang-galangang Katipunan ng mga Anak ng Bayan: 일명 KKK)이 일으킨 항쟁에 연류되어 체포되어 12월 30일 처형된다.

 

호세 리잘이 처형 전까지 수감되어 있던 곳이 바로 산티아고 요새 지하 감옥이였으며, 리잘 공원은 그가 공개 처형된 장소이다.

 

그가 처형된 장소에는 처형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디오라마가 설치되어 있으며, 공원 서쪽 중앙에 호세 리잘의 유해가 안치된 리잘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자유의 파수꾼 동상”

 

심재신 회장과 박현모 회장 등은 리잘 공원 동쪽으로 이동해 공원에 들어 섰다.

동쪽 리잘 공원에는 거대한 라푸라푸 동상이 서있다.

라푸라푸와 한국이 무슨 연관성이 있냐 싶겠지만 리잘공원에 설치된 '자유의 파수꾼'이란 이름의 이 라푸라푸 동상은 한국과 깊은 연관이 있다.

 

2004년 하원의원 라울 겔마르와 네리사 코라손 순루이즈는 라푸라푸를 세부뿐 아니라 필리핀의 영웅으로 기리자는 뜻에서 리잘공원에 그의 동상을 설치할 것을 건의했고, 당시 관광부 장관이였던 리차드 고든 또한 이를 지지했다.

 

하지만 국립역사연구소는 이를 반대했는데, 이유는 아그리파나 서클에는 필리핀 혁명의 영웅들의 동상만 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통령이였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이 승인하며 동상건립이 추진되었는데, 당시 한국자유총연맹(권정달 회장)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한국을 위해 싸워준 필리핀을 기리는 의미에서 1,500만 페소를 기부하여 동상건립을 추진하였다.

 

“자유의 파수꾼”이라고 불리는 이 라푸라푸 동상은 조각가 후안 사지드 이마오(Juan Sajid Imao)가 디자인했으며, 3.05미터(10피트)의 받침석에 12.19미터(40피트)의 크기에 청동 재질로 제작되었다.

 

이 라푸라푸 동상은 바다를 바라보며 칼집에 들어있는 캄필란을 바닥에 세우고 두 손을 모아 짚고 서있는 모습이다. 동상을 디자인한 이마오는 자신의 자유를 위협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준비가 되어있는 강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묘사했다고 밝혔다.

 

“자유의 파수꾼 동상”과 리잘 기념비의 거리는 120미터로 이는 라푸라푸와 리잘 사이의 400년이란 역사적 간격을 의미한다고 한다.

 

필리핀-한국 군인 기념비와 영혼의 파도 “자유의 파수꾼 동상”을 지나 북쪽 난초공원을 지나면 ’영혼의 파도’ 위령비와 한국전참전기념비가 있다. 필리핀-한국 참전기념비는 '영혼의 파도'는 한국군을 지원한 2명의 필리핀 군인을 형상화한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영혼의 물결’ 기념탑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제에 의해 필리핀 지역에 강제 동원되어 희생된 한국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한국과 필리핀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박현모 고문은 당시 한국-필리핀 수 교 60주년 기념위원회 공동 위원장으로 기념탑 건립을 추진했다.

 

길을 건너가면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흔히 꽃시계로 알려진 “세계적 수준 의 필리핀 꽃: World-Class Filipinos Bloom”이라는 거대한 시계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념으로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2008 년 국제 올림픽 위원회 스포츠 및 예술경연대회(조각 부문) 대상을 수상 한 조각가 호세 조 F. 다투인의 작품으로 2010년 작동을 멈춘 것을 2011년에 재설계한 것이다.

 

복원을 위해 한국의 현대가 자금을 지원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일본 정부와 대만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일본공원과 중국공원을 지나면 호세 리잘의 처형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디오라마 파크가 나오고 로하스 대로를 건너면 리잘기념비와 나란히 서있는 시계탑과 작은 돌로 된 비석 같은 걸 볼 수 있다.

 

이것이 필리핀의 “킬로미터 제로”이다. 마닐라에서 필리핀의 지역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일컬을 때 기준이 되는 것이 이 “킬로미터 제로”-도로 원표이다. 이 킬로미터 제로 양쪽에는 쌍둥이처럼 비슷한 스테인레스 조형물이 있다.

 

꽃시계를 디자인한 필리핀의 대표 예술가인 호세 조 F. 다투인의 "Dancing Rings"과 “Ang Bagong Pinoy Sculpture”이 설치되어 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춤추는 고리”와 “새로운 필리핀”이다. 얼핏 보면 똑같아 보이는 두 조형물은 2008년 스위스 로잔에서 다투인이 1위를 차지한 작품을 복제품이다. 진품은 스위스의 국제 올림픽 위원회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댄싱링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된 이 작품은 5개의 링과 중앙 링에 가볍게 용접된 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에 따르면 공은 세계를 나타내고 맞물린 고리는 하나의 꿈을 나타내며, 춤추는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흥미진진한 무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앙 바공 피노이’는 국가 헌법, 법률, 열망을 준수하는 새롭고 개혁된 필리핀인을 상징한다.

모든 사람이 품위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이 영감을 주는 조각품은 '변화' 또는 갱신을 나타내며, 반지는 완벽함과 유연성을 상징하며 수세기 동안 직면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강하고 탄력적이며 승리하는 모든 필리핀인을 대표하는 인간의 형상을 상징한다.

 

이 두 작품 역시 현대의 후원으로 이 자리에 자리잡게 되었다. 마지막 기념물은 마닐라 호텔 맞은 편에 자리잡고 있는데 '한-필 우호의 나무'라 일컬어지는 기념물이다.

 

이는 1998년 필리핀 독립 100주년과 한필수교 50주년을 맞아 제작된 기념물로 당시 기념물 주변에 무궁화와 다양한 나무를 심고 리잘공원 내 무료 급수기가 없다는 것에 착안해 6개의 수도꼭지를 설치해 누구나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했다.

 

프로젝트명도 “기프트 오브 트리” 즉 '나무의 선물'이였다. 당시 기부에 참여한 단체만도 40개였다. 하지만 외진 장소에 위치한 탓인지 일반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제 펜스가 설치되어 있고 바로 옆에는 공중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어 도저히 기념물이 있을 장소로는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기념물 자체도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아 과거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 었다.

 

무료급수를 위한 수도꼭지는 구멍만 남기고 사라진지 오래며, 도색은 변색 되었으며 타일을 깨지고 갈라져 있었다. 현판위에 새겨진 필리핀 국기와 태극기가 아니라면 딱 버려진 급수대로 보였다.

 

'관리소홀의 아쉬움'

 

박현모 고문은 이전 관광부장관의 결정으로 어떠한 통보도 없이 화장실을 설치해 부지를 훼손하였으며, 유관 기관의 어떠한 관리도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아쉬워 했다.

 

심재신 회장도 답사를 마치고 다소 무거운 마음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심재신 회장은 “고문님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리잘공원을 한바퀴 돌고나서, 저의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호세 리잘 동상보다 더 늠름하게 서 있는 라푸라푸 동상이 우리나라 기업이 기증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느 나라보다(일본, 중국) 우리나라의 기념 탑, 조형물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라푸라푸 동상, 꽃시계, 댄싱링 등은 좋은 위치에 세워져 있어서 그나마 길손들의 눈길을 받고 있었으나, 위령비와 참전탑 그리고 급수대 등은 일부 파손되거나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서 누구 하나 찾는 이가 있을까 싶은 현실이었습니다. 하나하나 문화재급 역사유물이었습니다. 만약 일본이나 중국 정원처럼 같은 장소에 코리안 가든이 있다면, 참전탑, 위령비 등등은 그 안으로 옮겨서 스토리를 입히면 관광코스로도 충분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라고 답사의 소외를 밝혔다.

 

리잘공원은 필리핀의 역사적 사건들이 발생했던 장소이다. 1896년 필리핀 혁명의 불길이 치솟아 올랐으며 호세 리잘이 처형된 장소다. 1946년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이 선언되었던 장소이며 마르코스와 아키노 등의 정치적 이정표를 찍은 장소이며, EDSA 시민혁명의 마침표를 찍은 장소다.

프란시스코 교황 방문 당시 50만명이 미사를 드리기도 했다.

 

이러한 리잘공원에 한국과 관련된 기념물만 7가지라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무관심으로 방치되어 훼손된 기념물들을 필리핀 정부가 열심히 복원하고 관리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오히려 훼손된 기념물은 미관에 좋지 않으니 철거할 가능성이 높다.

관광버스에서 우르르 내려 리잘 기념비 앞에서 기념촬영 후 떠나는 이들과 이를 안내하는 가이드를 한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필리핀과 한국의 물적 질적 교류는 이미 손가락 안에 꼽힐 수준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필리핀에서의 한국인에 대한 인식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무심히 지나친 역사의 상징들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한국인을 만들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이는 필리핀의 공원의 일부가 아니라 한국과 필리핀의 우호의 상징이며 필리핀 교민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마닐라서울 편집부

양한준(편집인)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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