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도 그렇지만 필리핀에 살면서 우리들은 어쩌면 소중한, 그 무엇인가를 너무 많이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필리핀 교민생활에서는 추억을 찾기가 힘들다. 어릴 적 친구들과 밤 늦도록 구슬치기 하던 시절도 없고 밤12시 통금시간이 가까워 오며 귀가 길을 서두르던 시절, 밤새 술을 마시고 청진동 해장국을 먹기 위해 광화문 거리를 걷던 시절, 레코드 음반 불법판을 사기 위해 청계천 뒷골목을 누비던 시절은 이곳에선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필자는 한국을 방문한 일이 있다. 일 때문에 지방을 가게 되었다.
대학교 시절 알고 있었던 국수공장을 지나게 되었다. 이곳을 지날 때면 대나무 발에 가지런히 벌려 있던 국수 면발을 자주 보았는데 그 모습은 마치 면 기저귀 빨래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십 수년이 지난 지금 그런 모습은 없고 상가 건물들 만이 그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젠 그 모습도 찾아보기 힘든 내 머리 속의 추억만 된 것이다.
필리핀의 삶은 현실만 있을 뿐이다. 한국의 경제여건 때문에,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필리핀과 연계된 비즈니스 때문에 실로 다양한 이유로 필리핀에서 잘 살기 위해서 왔다.
그 잘 살기 위함, 먹고 살기 위함이라는 명분 때문에 우리가 어릴 적 가졌던 순수성과 열정을 모두 한가지 목표아래 묶어 놓고 살고 있는 것 같다. 바로 ‘돈’이다.
사무실에서 가정에서 때로는 차 안에서 한국의 가락을 듣고 명상하고, 잠깐 짬을 내어 시 한편을 읽고 감상하고,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닿았던 사물들에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참 괜찮을 듯 하다.
우리가 잃어버린, 아니 우리가 빼앗긴 ‘정체성’과 ‘인간성’이 있는 사람 냄새가 그립다.
한국어를 불편해 하는 아이들에게, 한국인의 긍지와 우수성, 그리고 세계 속에서 발전하고 있는 한국의 전통과 기상을 심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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