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후원하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네이버톡톡
맨위로


 

[‘여보~ 사랑해~!’ ] 3장 13편. 이름을 불러 주어라

등록일 2010년04월19일 10시49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기사글축소 기사글확대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뉴스일자: 2010-04-19
 

태어나면 제일 먼저 갖게 되는 것이 이름입니다. 아버지든 할아버지든 아이의 이름을 지어 부르게 됩니다. 예전에는 천박하게 개똥이나 소똥이 등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귀한 자식일수록 험한 호칭을 사용하기도 하며 누구보다도 이름을 값지게 여겼습니다.

영화나 소설 등에 보면 제법 심각한 어조로 이름을 더럽히지 말하며 결투도 벌이고 이름이 더럽혀 졌다며 죽음을 택하는 모습도 보아왔습니다. 그렇게 이름은 귀한 것이고 한 사람의 상징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름을 날리다, 혹은 이름을 떨친다는 표현을 보면 이름이 상당히 중요한 것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나는 이름 짓는 것을 좋아합니다. 무엇에든 이름을 붙여 그렇게 부르곤 합니다. 심지어 열대어 한 마리 한 마리에도 이름이 다 있고, 제가 잘 가는 곳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도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 중에 제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랑하는 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을 때입니다. 며칠 밤낮 고민 끝에 이름을 지어 사랑하는 이에게 주었더니 무척이나 기뻐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이름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이의 영어이름입니다.

예전에는 여성의 경우에 자신의 이름보다는 고향이나 가문에서 벼슬이름, 혹은 직업과 같은 것을 빗대어 이름으로 삼곤 하였습니다. 온양댁이나 화성댁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초시댁이니 어사댁 혹은 진사댁이라고 불리웠으며 신길이네 대장간네라고도 불리웠습니다. 혼인을 하기 전에는 그렇게 불리다가 혼인을 하게 되면 새댁 등의 신분으로 부르고 아이를 낳으면 아이의 이름을 붙여서 부르기도 했습니다. 영수 엄마나 경종이 엄마 등이 그것이었고 또 그러다 보니 이름이 소용이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이름은 엄연히 있으나 불리워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영국의 학술저널 앤스로주스(Anthrozoos)란 잡지에 최근에 발표된 글을 읽었습니다. 이 글은 영국 뉴캐슬 대학교의 캐서린 더글라스 박사와 피터 로울린슨 박사의 연구팀의 연구결과 보고서인데, 젖소들을 이름을 붙인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나누고 이름을 붙인 집단의 소에게는 매일 이름을 불러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후 우유의 생산량을 비교해 보니 이름을 불러주었던 소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소와 비교하여 약 260여 리터의 우유를 더 많이 생산했다고 합니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에 관한 소고(小考)이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더 많은 자존감과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젖소의 경우가 이러할진대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그러한 이유로 나는 내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자주 부릅니다. 물론 여보나 당신 등의 호칭도 좋은 의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여보(女寶)라는 호칭은 보물이란 의미입니다. 상대가 보물과 같다고 하여 같은 여(如)자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보물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하고도 귀합니까? 또한 당신(當身)이라는 호칭은 자신의 몸과 같다는 의미이니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못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하나뿐인 고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름 속에는 한 사람의 가문도 들어 있고 그 사람의 어린 시절도 있으며, 꿈도 들어있고, 그 사람의 미래도 들어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여성들의 노력으로 인해서 이름이 많이 불려지는 세상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공식적인 곳 말고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장소인 집에서 이름을 불러준다면 아내들은 아주 기뻐할 것입니다.

자신의 아내를 모임 등에서 누군가에게 소개를 할 때에도 아내의 이름은 빼놓고 누구 엄마, 혹은 아무개씨의 아내라고 소개를 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아내를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분명히 이름을 알려주기 바랍니다. 성과 함께 말입니다. 그래야 아내는 만족해하며 행복하게 됩니다.

김춘수의 꽃이란 시(詩)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내가 그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하나의 눈짓(의미)이 되었다는 시를 말입니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바로 그 순간에 생명을 얻고 나와 함께 평화로움을 느끼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제부터 여러분의 아내의 이름을 불러 주기 바랍니다. 데이트 하던 시절처럼 말입니다. 아주 새롭기도 할 것이며 다시금 설레는 순간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더욱 가까워 질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한인뉴스 필리핀뉴스 한국뉴스 세계뉴스 칼럼

포토뉴스 더보기

기부뉴스 더보기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