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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형 목사의 한손엔 신문]친일파 백선엽과 영웅 백선엽

등록일 2010년03월31일 17시37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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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10-03-31
 

백선엽은 1920년 생으로 평남 강서군에서 태어나 1939년에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직에 있다가 만주군에 입대하여 장교가 된다. 2차대전 종전 후, 본국으로 돌아와 고당(조만식) 선생을 찾아가 그의 비서로 채용되어 고당의 비서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후 고당의 민족주의 운동에 가담하지만 김일성의 공산주의 지배를 반대해 1945년 12월에 월남하였다. 월남 후 그 해에 만들어진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했고, 1946년 2월에 임관하여, 같은 해 1월 15일에 창설된 국방경비대의 제 5연대장을 맡았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국방경비대가 정식으로 국군으로 재편되면서 제 5연대장과 육본 정보국장을 거쳐 국군 1 보병사단 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육본 정보국장 재직 중이던 1948년에 발생한 여순 14연대 반란사건 이후 공산 게릴라 소탕 및 숙군사업을 지휘하였다. 이때 같은 만주군 출신으로 남로당 프락치로 활동 하던 중 체포된 박정희 소령의 구명에 힘쓰기도 했다.

1950년 6월에 백선엽은 육군보병학교에서 고급간부교육을 받고 있던 중 급거 귀대하여 육군 제 1사단을 지휘하였으나, T-34/85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 밀려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후퇴하면서 무단이탈을 하는 군인들을 막으며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저 사람들(미군)이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싸울 것을 호소하였다. 그는 1952년에 32세의 나이로 최연소 육군참모총장이 되었고, 1957년에 다시 한 번 참모총장이 된다.

그는 퇴역 후 대만, 프랑스, 캐나다 대사를 거쳤고, 박정희 정권에서 교통부 장관을 하면서 제 1기 지하철을 시작했다. 2009년 3월 23일,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기념하여 백선엽을 명예 육군원수로 추대할 계획임이 보도되었다. 이 일이 실행된다면 백선엽은 대한민국 최초의 원수계급 보유자가 된다. 이상은 인터넷에 떠 있는 자료를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가 지휘했던 한국 육군의 상징적 부대인 1사단이 자체에서 모금하여 백선엽 장군 기념석을 부대 안에 설치했다. 역사는 아이러니컬하다. 한 쪽에선 친일파라고 침을 뱉는가 하면 다른 한 쪽에선 영웅으로 추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역사책은 전체를 다 보아야지 한 장만 보면 안 된다. 또한 적어도 65년이 지난 과거를 오늘의 시각으로 보면 세월의 굴절 때문에 바로 보기가 어렵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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