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엔 1년에 한 번 의사당에서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있다. 소위 “SONA(State of the Nation Address)”라고 일컫는 것이다. 지난 28일이 그날이었는데 바로 필자의 집 앞이 시위대가 모이는 장소다. 고위층들이 의사당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고 종일 시위를 한다. 그리고 방송들은 그 시위장면을 생중계하기도 한다. 경찰은 의사당으로의 진출을 막기 위해 전날 저녁에 컨테이너를 갖다놨고 새벽부터 헬멧을 쓰고 방패를 든 경찰병력을 겹겹에 세워두고 있었다. 그런데 시위대들은 무엇 하나 집어던지지 않았고, 그들은 종일 경찰저지선을 그대로 잘 지키면서 시위를 했다. 다만 확성기로 자기들의 주장을 열심히 설명했고, 구호도 외쳤다. 또 잦은 외유를 하는 대통령을 빗대어 미국 비행기를 탄 대통령의 풍자적인 형상(caricature)을 커다랗게 만들어 메고 다니기도 하고, 길 한복판엔 자기들의 의사를 표시하는 커다란 그림 그리고 대통령 이름의 이니셜과 함께 “OUST(추방)”라고 그려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대통령이 나라를 떠날(?) 준비도 하기 전에 해가 떨어짐과 동시에 자기들이 먼저 그 자리를 떠났다. 연례행사라서 퀘존 지역에 있는 학교들이 휴교한 것 외에는 시위장 주변에 사는 주민들도 큰 불편이 없었다. 필리핀의 시위대는 자기들의 주장을 펼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국민의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도 아는 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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