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인 시위가 폭력으로 번지든지 아니면 제한된 장소를 벗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경찰부대다. 그런데 그 현장에서 시위대들과 몸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전․의경”들의 가치관 혼란은 그들만이 갖는 고통이다. 상대가 적이라면 젊음의 혈기를 유감없이 발산할 것이지만 도리어 보호해야 하는 내 국민이라는 데 고충이 있는 것이다. 부대 지휘부는 통제선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리고, 시위대는 그것을 벗어나려고 하니 몸싸움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시위대가 폭력을 행사해서 자기들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느껴질 때는 같이 폭력을 쓸 수도 없고 또 물러설 수도 없어 다만 악에 받치는 눈물이 전부일 수밖에 없다.
“여대생 군홧발”동영상의 가해자로 지목된 전경의 사법처리 방침에 대해서 경찰은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서울지역 기동대 소속의 한 의경은 “우리는 2년간 시키는 것만 할 뿐인데 사법처리를 한다는 건 윗사람들의 책임회피라는 생각이라”며, “윗선의 지시에 애매한 사람만 고생하고, 피해 받는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우선 전․의경들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들도 국민이며, 보호 받아야 하는 우리의 가족이다. 그들을 향해 돌이나 화염병을 던지는 사람들 그리고 각목이나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사람들은 전․의경들이 자기 국민이 아닌 때려 부셔야 하는 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전․의경들은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의 신분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사법적 처리를 하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 다만 죄를 물으려면 그들을 지휘하는 사람들에게 물어야 한다. 오히려 그들이 명령에 따르지 않고, 자리를 이탈하거나 저지선을 사수하지 않는다면 무거운 군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그런 오합지졸로는 전쟁을 할 수도 없고 또한 그런 허약한 존재들에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시위대에게 물러서지 않는 더욱 막강한 경찰부대가 필요한 것이다.
그들이 신고 있는 것은 고무신이 아니고 군화다. 그 군화가 혼자 조용히 앉아있는 여대생을 걷어찬 것이 아니라 거의 이성을 잃은 집단과 집단과의 격돌에서 본의 아니게 누구의 몸에 닿았다면 “군홧발의 폭력”이 아니라 “특수한 공무수행”으로 봐주어야 한다. 병역의 의무를 하러 나간 자신이나 자신의 아들이 쇠파이프와 각목에 얻어맞으며 시위대 앞에 무릎 굻고 앉아 살려달라고 빌어야 한다면 과연 더 이상 그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비애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들은 자주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그럴 땐 살아남기 위해서 자위권을 발동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개인의 기본권을 행사할 수 없는 진압장비의 하나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에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것이다. 시키는 일을 했는데도 질타를 당해야 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말인가. 만일 자기 자녀에게 무엇을 하라고 해놓곤 시킨 대로 한 그들에게 왜 그렇게 했느냐고 나무란다면 부모에겐들 대들지 않겠는가.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정당방위권을 적절히 행사할 수 없는 국민 아닌 국민인 꽃다운 나이의 전․의경들이 폭력시위의 방패가 되어야 하는 세상, 그들이 그렇게 쇠파이프와 각목에 맞아도 조금도 마음이 아프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왜곡된 정의감에 불타는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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