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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참전용사

김관형 목사의 한 손에는 신문

등록일 2008년06월30일 15시13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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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8-06-30
 

 

작년 이맘 때 필자의 교회에선 미군으로 한국전(韓國戰)에 참전하여 중국군 포로가 되었다가 크리스천 중국군 군의관의 도움으로 풀려난 미국인 할아버지를 모셔서 6∙25 기념행사를 가졌고, 올해도 한국전에 참전했던 필리핀 할아버지들을 모실 계획을 갖고 있다.

우리는 한국전 당시의 상황과 참전용사들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 때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떠난 때였고,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내리달아 낙동강 물로 밥을 지으며 부산만 접수하면 된다는 승리감에 도취된 때였다.

그 때 우리 민족은 지금의 동남아나 아프리카 이상으로 불쌍한 존재였다. 북한군의 탱크를 저지하기 위해 화염병을 만들어 탱크에 집어넣는 원시적이고도 무모한 항전을 했던 지지리도 못난 나라였으니 말이다. 그 모습을 타전 받은 세계연합(UN)은 창설 이후 처음으로 파병을 결정하곤 즉각 16개국의 UN군을 보냈다. 그들은 미국을 비롯하여 벨기에 그리고 에티오피아 등의 나라들인데 그 중에 필리핀도 있다.

필리핀의 한국전 참전용사들 중 일부는 “Korean War Veteran(한국전 참전용사)”이라는 글귀를 새겨 넣은 검정색 모자를 자랑스럽게 쓰고 다니신다. 참전용사들 중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셨고, 생전에 계셔도 거동이 자유롭지 않은 80세 전후의 노령들이시다. 약 20세의 젊은이들이었던 그 분들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전우를 부둥켜안고 울다가 어딘지도 모르는 땅에 묻고, 다시 울며 돌아서야 했던 불운한 시대의 사람들이었다. 비록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본국에 돌아왔어도 전쟁의 참혹한 기억 그리고 부상의 고통으로 불안하고, 불편한 삶을 살다가 그렇게 일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분들에게 최소한의 대우라도 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 분들의 피와 눈물이 결정(結晶)이 되어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고 또 우리가 태어나 자란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했으니 말이다.

세계에 세워져 있는 한인교회들이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위로하는 행사를 매년 갖는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그 분들은 한국인들이 입은 옷을 보면서 자기들이 한국전 때 보았던 무명 한복과 비교하면서 감탄해 마지않으며 또 어떤 분들은 아리랑을 부르는 시간엔 격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회한의 눈시울을 적신다. 우리가 아무리 갚으려고 해도 10년 후면 할 수 없는 늦추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일이 바로 그 분들에 대한 예우다.

나라가 누란지세(累卵之勢)의 위기에 직면해 있을 때 생명을 걸고 나라를 지켜준 그 외국 은인들에게 진정한 겸손과 예절로 고개 숙여 인사를 해야 한다. 밥 한 끼 그리고 옷 한 벌이 목숨을 내놓았던 그 분들의 숭고한 정신과 피와 눈물에 대한 보답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가 됐든, 어떤 단체가 됐든 나서서 그 과거의 은혜를 잊지 않고 늘 감사하고 있다는 마음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은혜 입은 자들의 바른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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