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쓰촨성의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3만을 넘어서고, 매몰되거나 실종된 사람들이 또 그만큼을 넘을 것이라고 하니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건물더미에 깔린 스물여섯 살의 가장(家長)이 멀리 있는 아내와 통화하면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다며 “꼭 살아서 당신에게 달려가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그만 구조된 직후 사망하고 말아서 13억 중국인들을 울렸다. 중국정부는 지진의 희생자들을 위해 3일간의 애도일을 정했으며, 피해자나 이재민들을 위해 모금운동도 펼치고 있고, 우리 정부도 구조대를 파견하는 등 구호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것은 큰 나라의 일이라서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다만 인도주의적인 움직임이며, 지구촌의 일원으로서의 당연한 처사라 하겠다. 그런데 중국의 슬픔을 더 슬프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소위 “악플러”라는 사람들이다. 인터넷상에서 “더 죽어야 정신 차린다”느니 하는 저주의 말을 쏟아놓는 사람들 때문에 그 슬픔이 한국인들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 있다.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을 미워하는 이유를 찾아본다. 멀리는 중국이 오랜 역사를 두고 한반도를 침탈한 일들이겠고, 근대사에선 한국전쟁에 개입하여 남북통일을 가로막은 요인이 되었다고 한국인들은 생각하고 있다. 또한 요즘엔 한국인들에게 중국에서의 경제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다는 풍문을 들으면서 중국을 싫어하고 있다. 그리고 이른바 “짝퉁”이라 일컫는 한국제품의 모조품이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일과 베이징 올림픽의 횃불을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난 폭력사태 등으로 인해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을 증오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티벳 사태와 인권상황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위의 이유들을 객관적으로 보면 이해를 해야만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역사 이래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탈한 일은 어느 한 나라만의 행위가 아니었고, 우리도 용병으로 약 10년 동안 베트남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으니 그 나머지를 거론하면 된다. 역시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을 막아 화교들이 음식장사 등으로 한푼 두푼 모은 것을 자루에 넣어둘 수밖에 없었는데 1962년에 있었던 화폐개혁으로 말미암아 졸지에 재산이 10분의 1로 줄어드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한국 땅을 떠난 사람들이 얼마던가. 그러므로 이런 저런 것을 생각하면 사돈네 남의 말을 하는 격이다.
우리에게 전쟁을 하자고 선전포고(宣戰布告)을 해오는 나라가 아니라면 모두 친구를 삼아야 하는 것이 지구촌의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타국의 폐허에 뛰어들어 생명을 내걸고 구조대열에 참가하는가 하면 많은 구호물자를 실어다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방에 앉아서 이 나라, 저 나라를 적으로 만드는 행위는 좌시해선 안 되는 망국행위(亡國行爲)인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자. 그리고 중국이 어떤 나라이며 또 어떤 나라가 될 것인지를 바로 보자. 또한 그것이 아니고 라도 남의 불행에 박장대소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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