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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감래•••

필리핀 유학생들의 S 다이어리

등록일 2008년04월22일 14시17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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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8-04-22
 

이름: 임현준

나이: 24

학교: 아테네오 데 마닐라 4학년 정치외교학과

한국학생협회 문화부장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에서 영어한마디도 하지 못하면서 홀로 도착했었을 때가 엊그제 같다. 나의 8년4개월 유학생활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2가지 요인은 운과 노력이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못 이기고 노력하는 사람은 운 좋은 사람을 못 이긴다’는 말이 있다. 나에게는 비록 천재적인 재주는 없었지만 운과 노력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남들 다 가는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도 불가능 했다. 그만큼 공부를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 때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 줄도 몰랐고 컴퓨터 게임이 나의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걱정이 태산이었던 부모님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나를 필리핀에 유학 보내기를 택했다.

나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셨던 필리핀에서 선교사활동을 하신 이모, 이모부는 나의 첫 번째 인복(人福)이었다. 그 분들은 실패와 좌절만은 경험한 나에게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한 일화로 내가 영어공부를 할 때마다 남들 앞에서 나의 영어실력이 늘었다는 거짓말 섞인 칭찬을 항상 하셨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도 나에게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칭찬이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더욱 잘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뒤늦게 알아차린 사실이지만 이모는 고개를 숙이고만 살던 나를 위해 칭찬을 부탁하신 거였다.

마침 운이 좋게도 아테네오 고등학교는 신축공사로 자금이 많이 필요한 시기였기에 외국인학생을 기부금 입학제형식으로 받아주고 있었다. 그 덕에 나는 실력도 없이 1학년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한국인이 거의 없었던 상황이라 나는 어느 누구한테도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같은 반 애들조차도 영어 잘 못하는 외국인을 반겨줄 리가 없었고 항상 밥은 혼자 먹었고 수업시간에는 조별과제(Group Work)가 가장 싫었다.

내가 반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다음에 할말을 영작해서 외워가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려고 많이 연습해 학교를 갔다. 그러나 역시 말이 안 통하는 징크스는 여전했다. 그러던 차에 담임선생님께서는 내가 수학을 잘한다는 이유로 나를 반장으로 임명했고 그때부터 나는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많이 생겼다.

선교생활을 하시는 이모, 이모부 밑에서 교회생활도 부지런히 했다. 그때 당시에 한인교회를 다녔었는데 그 교회목사님께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영어성경암송을 요구하셨다. 해야 할 일이 많다는 핑계를 대는 나에게 목사님은 이 성경암송과 같은 작은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큰일을 기대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 때부터 모든 일에 내 혼신을 다하는 습관이 생겼다. 차 안에서나 길을 걸을 때 중얼거리면서 성경암송을 했고 내가 뭘 하는지 잘 모르는 반 친구들은 나를 흉내내면서 미친 사람취급까지 했다. 그 때의 영어성경암송은 내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었고 이 암송법으로 나는 고등학교 교과서를 통째로 집어 삼켜버렸다. 물론 성과는 좋았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단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교과서에 모르는 단어를 모두 사전 찾아 외우면 아침등교시간이 거의 다 되었었다. 단어장을 벽에 붙여보니 한쪽 벽이 단어장으로 도배가 되었다. 내 방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벽에 붙은 단어장을 보면서 다 외우긴 한 거냐며 테스트를 했고 내가 못 맞출 때마다 부질없는 짓 그만 하라며 비판을 했다. 그 때마다 나는 오기가 생겨 단어장을 떼어 다시 외우고 붙였다. 이런 노력으로 나는 고등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고 아테네오 대학까지 합격했다.

고생하는 시절은 이제 끝이라고 시작했던 나는 대학에 가서 고생은 평생일 거라는 현실을 느꼈다. 어려운 전공서적을 읽고 있으면 내가 영어를 읽는지 독일어를 읽는지 조차 파악이 안됐고 1학기에 읽어야 할 총 분량을 쌓아보니 30cm 약간 넘었다. 이 노력으로 막노동을 하면 재벌도 될 수 있겠다는 말도 안된 상상까지 했었다. 내가 포기하고 싶었을 때 마다 내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던 유도부 코치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1분 1초도 잊어는 안 된다며 고진감래(苦盡甘來)를 강조하셨다. 그 때부터 나는 포기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는 자세로 모든 일에 임했고 유도대회에서 손가락이 부러져서 시합이 정지된 상황에서도 이겨야겠다는 긍지로 다시 싸웠다.

이와 같이 나의 정신적 지주와 사람들의 비판이 나를 노력할 수 있게 자극시킨 것 같다. 아직도 자신의 머리가 돌이라서 안 된다고 믿고 있는 유학생들이 있는가? 괜찮다. 원래 값비싼 다이아몬드는 깎는 고통이 없기 전에는 돌이었다. 뒤에서 1,2등을 다투던 나도 가능한데 여러분들이라고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아무런 고통 없이 대가를 바라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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