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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개통식에 쌀트럭과 동행한 아로요

김연근의 시사칼럼

등록일 2008년03월28일 12시29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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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8-03-28
 

 

필리핀 관광안내 책자에 나오는 이푸가오의 계단식 논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돼 있고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힐 만큼, 보는 이들의 감탄사를 자아낸다.

경사 6, 70도의 산비탈에 1평에서 30평미만의 논 수십만개가 이어져 그 길이가 지구 반 바퀴에 해당하는 2만2,400킬로에 달하는데, 이 모든 것이 가축이나 기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전적으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혹자는 여기 쌀들이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산물이며, 이는 논바닥에 다슬기들이 해충 방제와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관광객들 눈에는 신기한 구경거리지만, 그곳의 농부들은 평지에서 땅 한평 얻을 경제력이 없기 때문에 연고권자가 없는 험산이라도 일궈내 생계를 꾸려야만 하는 처절한 생존의 현장이다.

평지에 노는 땅이 많은 필리핀에서 약 2000년 전부터 조성된 계단식 논의 역사는 농부들이 논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 전통적으로 이어져 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들이 배정받기로 된 농지 144헥터가 대기업의 돼지농장으로 개간되는데 항의해 작년 말 1,700킬로를 행군해 대통령에게 호소했던 민다나오 부키논주의 농부들은 지난 25일 마침내 뜻한 바 반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산 미겔 식품이 땅을 나눠주기로 합의한 것이다.

농민에게 농토를 배정하는 ‘농지개혁법’이 있고 이를 이행하라는 확정판결이 나와도 무장한 사병들의 실력행사로 이를 저지하는 보수적인 지주들이 정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필리핀에서 이는 해결이 잘된 드문 사례에 해당된다.***

16일 부활절을 전후한 2주간 필리핀은 외견상 평온했다. 연휴를 즐기는 시민들로 공항, 터미널과 고속도로는 붐볐지만 도심은 한산했고, 스캔들과 대통령 퇴진 시위에서 비롯된 정치 불안도 어느 정도 해소됐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대법원은 전 경제기획원장관인 로물로 네리 현 고등교육위원장이 신청한 ‘행정부특권(executive privilege)’에 속한 사항의 상원청문회 증언 제한 요청을 9:6으로 합헌 판결을 했다. 더 나아가 상원은 청문회에서 이런 증언을 강요해 행정부와 갈등을 조성해서도 안되고 이를 거부하는 증인들에게 구인장을 발급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고 판시했다.

 한달 전 대법원이 제시한 ‘제한적 증언’ 타협안을 상원이 거부한 데 대한 유감이 다분히 보이는 판결이기도 했다.

언론은 대법원 판사를 꾸준히 물갈이 하고 관리해 온 아로요 대통령이 상원에 대해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하고 2010년 임기 말까지 대법원이 행정부의 거수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상원은 역시 뇌물 의혹이 있는 ‘북부 철도 프로젝트’나 차관을 얻기 위해 영해를 공동 탐사 해역으로 양보했다는 ‘스프래틀리스 군도’ 관련 협정에 대한 청문회 등 후속 청문회에서 고위 관료들이 ‘행정부 특권’을 남용해 증언 거부 사태가 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현 정국을 안정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행정부의 독재를 견제할 수단을 약화시켰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올 수도 있다.***

부활절을 전후해 ‘스캔들 정국’은 급격히 ‘민생 정국’으로 넘어가는 양상이다.

치솟는 국제 유가와 국제 쌀값,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적인 경기 후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해 지면서 필리핀이 직격탄을 맞을 수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 석유값이 30%이상 오르면서 지프니, 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의 인상과 그렇지 않아도 높은 전기료가 줄줄이 인상을 기다리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쌀 파동이다. 시중 쌀 값이 킬로당 18-27페소에서 27-40페소로 오르고도 추가 인상 가능성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간상들의 가격 조작과 정부미를 일반미로 탈바꿈해 파는 현상을 엄단하고, 시민들에게 쌀은 충분하니 사재기 할 필요가 없다고 역설하지만 ‘쌀가게 앞 줄서기’는 이미 시작됐다.

다행히 정부는 베트남과 년간 150만톤을 수입하는 협정을 26일 체결했다고 발표해 쌀 부족 걱정은 해소되는 분위기이나, 쌀값 폭등으로 인한 민심을 수습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정부는 5인 가족 월 생계비 6000페소 미만인 빈곤층을 파악해 정부미를 킬로당 18페소에 판매하는 정부 보조금 제도를 실시한다고 이미 발표했다.

정부의 ‘버리는 쌀 줄이기’ 캠페인에 호응해 졸리비는 4월부터 ‘쌀 반공기’ 옵션을 채택하기로 했고 맥도날드 등 다른 패스트푸드 체인들도 이를 검토 중에 있다.

또 정부는 쌀 증산을 위해 3200만불을 들여 ‘다수확 볍씨’를 보급한다고 발표했지만, 근본적인 대책 없이 현상 유지에 급급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1980년대 초반까지 주요 쌀 수출국이었던 필리핀이 세계적인 쌀 수입국으로 전락한 한데는 채 한 세대가 걸리지 않았다.

그 동안 인구는 2000만이 늘어 작년 말 9000만명을 돌파했으나 노는 땅은 있어도 농사지을 땅이 없는 농민들이 증산에 힘써도 년 수확량 증가는 4, 5%에 불과하다.  

엄밀히 분석해 보면 필리핀은 영농에 적합한 제반 조건을 구비한 나라다.

일년에 3모작을 할 수 있는 기후인데다, 태풍, 홍수, 가뭄 등 자연 재해도 드물고, 한달 이상 물속에 잠겨 있거나 가물어도 수확이 가능한 벼를 개발하는 등 선진 기법을 갖추고 있어   주곡 자급률이 90%에 머무는 것은 인재(人災)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 최근 불기 시작한 바이오 에너지 작물 재배와 열대 과일을 재배하는 대규모 ‘플란테이션’으로 한정된 농지마저 줄어드는 실정이다.

겉으로는 찬성하지만 내심으로는 농지 개혁에 반대해 온 봉건적 지주 가문 출신이 대부분인 필리핀의 정치인들은 농지 분배문제가 이제 식량 부족, 식량 폭동으로 이어져 부메랑으로 자신들에게 향해 오지 않도록 지금 어려운 씨름을 하고 있다.

아로요 대통령은 수일 전 수빅-클락-탈락 고속도로 개통식에서 쌀 트럭과 동행해 통과하면서 쌀 문제가 뻥 뚫린 고속도로만큼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심경을 피력했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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