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모 TV방송이 거푸 3회에 걸쳐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기독교의 어두운 부분을 방영한 일로 기독교는 언잖아하며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그 대책이 고작 그 방송의 민영화 그리고 시청거부라고 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비판의 내용은 대략 몇 가지다. 그 첫째가 세습(世襲)이다. 몇몇 대형교회들에서 담임목회자의 자식에게 교회를 인계하는 일이 있어서 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교회는 개인의 사업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인위적인 방법으로 대물림을 하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 물론 아버지의 아무런 영향력 행사가 없었는데도 그 아들을 교회가 딴 마음으로 초청하여 목회를 하게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둘째는 재정 사용의 불투명이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교회는 정확한 회계보고를 하고 또 자체의 감시하는 기능이 있다. 그러나 대형교회에서 목회자나 몇몇 장로들에 의해 재정 사용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문제도 사회정의를 떠나 교회 자체를 위해서라도 고쳐져야 한다. 한 사람의 기업경영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면 기업주의 뜻대로 쓰고 싶은 곳에 쓸 수 있다. 그러나 교회의 재정은 수 백, 수 천 사람이 모은 것이기 때문에 한 두 사람의 결정에 의해 지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셋째는 세금 문제다. 이것은 교회와 목회자를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 종교단체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금을 내지 않는 것으로는 생각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가 세금을 내야 하는 규정이 현행법에 의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것도 법이 정할 때까지는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반드시 내야 하는 조세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탈세를 하는 것이 현실인데 법에도 없는 것을 지키라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요구에 불과하다. 필자도 한국에 있을 때 납세증명을 제출할 필요가 있을 때 미과세증명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가진 부동산이 없었고 또한 교회에서 받는 것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호화생활이다. 이 부분은 말하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목회자가 그런 생활을 하는 것을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를 개척하거나 미자립 교회를 섬기며 몇 날 며칠을 라면만 끓여 먹어 가족들이 영양실조에 걸리는가 하면 등록금을 준비하지 못해 자녀들을 휴학시키는 사례는 수없이 보아왔지만 수억 원 대의 외제차를 타는 사람을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사람이 있으니 취재하여 방영하겠지만 만분의 일을 보고 9,999도 다 그런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옳은 말에도 함구와 변명으로 일관하는 것은 사회의 표본이 되어야 하는 교회로서 온당치 않다. 또한 극히 일부를 전체인양 호도하는 것도 옳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에 완전한 곳은 아무 데도 없다. 남을 감시하는 기구조차도 비리가 있고 또 사회정의를 위한다고 하는 단체조차도 부패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눈을 감고, 입을 닫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편향된 생각이나 시각으로 현실을 봐선 안 된다는 말이다. 즉 쌀 한 가마니에 들어 있는 몇 개의 뉘를 보고 전체를 몹쓸 쌀로 단정짓지는 말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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