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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김연근의 시사칼럼

등록일 2008년02월11일 11시42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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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8-02-11
 

어쩌면 최근의 필리핀 정계에 가장 큰 파장을 몰고 올 두 사건이 지난 5일과 7일 발생했다. 하나는 베네시아 하원의장 불신임안이 통과돼 대통령 측근인 프로스페로 노그랄레스가 신임 의장이 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광역전산망(NBN) 스캔들’을 조사하는 상원 청문회의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행방불명 상태이던 로자다가 돌연 나타나 스캔들에 대해 말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수일 전부터 예고된 베네시아 불신임안은 하원 재석 225명 중 174명 찬성, 35명 반대, 15명 기권이란 압도적 다수로 가결돼 십수년에 걸쳐 하원의장을 5 연속 재임해온 ‘하원의 제왕’ 베네시아를 쓰러뜨렸다. 베네시아가 누구인가. 1992년 라모스 전대통령과 함께 ‘기독교 이슬람 민주 연합당(라카스 CMD)’을 설립해 제1 여당을 만들고 라모스와 아로요 두 대통령을 배출해냈다.

 1998년 대선에서 그는 에스트라다에게 참패했지만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아로요는 부통령이 됐고 에스트라다의 실각으로 대통령 승계, 2004년 재선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집권여당 당수이자 하원의장으로서 그는 매년 되풀이된 쿠데타 음모와 대통령 탄핵의 와중에서 아로요를 지켜온 2인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들 베네시아 3세가 국가광역전산망 입찰에 참가했다 탈락하면서, 대통령 부군인 마이크 아로요가 7000만불의 리베이트를 받기로 하고 계약에 개입했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10년 넘게 지속해온 대통령과의 유대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자신이 원내총무로 발탁했던 노그랄레스(다바오 제1 선거구)와 ‘대부’역할을 했던 대통령의 두 아들이 주축이 된 ‘하원 쿠데타’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은 베네시아를 지지한다고 공언했지만 대부라고 말하기 전에 병석에 있는 아버지 마이크 아로요를 비방하는 친아들 단속이나 잘하라고 응수한 대통령 일가에게 복수(vendetta)를 당한 것이다.

표면적인 불신임 이유는 하원 예산을 농단하고 개혁을 외면한 것이지만, 기실 대통령 일가의 복수극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세가 기울자 베네시아는 1시간에 걸친 신상 발언을 통해 대선부정, NBN스캔들은 물론 작년 말 40억불에 체결된 송전공사(TransCo) 공매에도 흑막이 있다고 대통령 일가를 비난했다. 이 비난으로 야당의 찬사를 받았지만 라카스당 내에서는 당총재이기도 한 대통령을 비방한 당수로 낙인시켜 왕따를 당하는 입장이 됐다.

90명의 의원과 지자체 주지사, 시장 대부분이 소속된 제1여당 라카스당은 탈당 사태가 발생하면서 의원수 50여명에 불과한 대통령 직계 캄피당에 통합 당할 처지가 됐다.

정재계는 베네시아의 이탈이 아로요 정권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대통령 일가의 보복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을 보면 ‘벤데타’에 대해서는 필리핀 특유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미 간통죄를 규정한 형법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논의가 한국에서도 거론되고 있지만, 필리핀 형법은 부정한 배우자와 그 관계자를 현장에서 또는 추적해서 살해해도 무죄이며 또 그 가해자가 타지로 피신하지 않는 한 보복 살인이 허용된다는 원시적인 특유의 법이 있다.

비록 그것이 당연한 것일지라도 명예와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당연히 보복이 따른다는 필리핀의 유별난 정서는 이미 필리핀의 문화가 됐다. 손가락질하거나, 따귀를 올리거나, 멱살을 잡아서 살인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허다한 것을 특히 외국인들은 유의해야 할 일이다. 화를 내야 할 때도 참고 웃음과 ‘노 플라블렘’으로 버무려지는 필리핀의 일상사가 여기서 연유된 것인지도 모른다. ***

지난주 상원 청문회 두 시간 전에 돌연 업무 차 출장 간다며 출국했던 로자다는 5일 오후 귀국하자마자 잠적해 화제가 됐으나 7일 새벽 2시에 돌연 나타나 기자회견을 가졌다.

경찰은 신변 보호를 요청한 로자다의 누이 부탁으로 보호 중이었다고 발표했으나, 그동안 정부측 인물들과 만나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동자부 산하 국영 산림공사의 사장인 로자다는 전산망 전문가로 NBN프로젝트의 컨설팅을 맡아 추진에 관여해 왔다.

그는 베네시아 3세가 정부 지출이 수반되지 않는 BOT(build-operate-transfer)방식으로 전산망을 구축하자는데 동의했으나, 아발로스 전 선관위원장이 정부가 차관을 얻어 수행하며 260만불의 공사규모에 리베이트를 130만불 얹겠다고 주장해 이를 반대하다가 살해 위협을 받고 추진과정에서 빠졌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대통령 부군이 한차례 동석했고 아발로스가 그에게 전화 보고하는 것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NBN은 329만불로 낙착돼 추진되다 베네시아 3세 등이 향응, 성 접대, 뇌물스캔들을 발설해 물의가 일자 아로요 대통령이 중국 국영 계약당사자인 ZTE의 양해를 받고 전격 취소하기에 이른다.) 이 로자다의 돌출 발언이 있자 정부측은 허위라며 해명에 급급했고 카에타노 블루리본 청문회 위원장과 락손 상원의원을 비롯한 반 아로요 진영에서는 대통령의 즉각 정직이나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주무부서인 정보통신부는 전문가로 컨설팅을 했다는 로자다를 알지 못하며, 민간회사가 국정 정보가 교차하는 국가전산망을 관리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이 있어 정부가 관리를 맡기로 한 것이며, 260만불로는 전국의 30%밖에 커버하지 못해 전역을 커버하기 위해 계약금액이 329만불로 책정됐고, 중국정부가 연리 3%의 저리차관을 팩키지로 제의해 ZTE사와 계약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로자다는 현재 상원에서 휴식이 끝나는 대로 청문회에서 증인 심문을 받게 돼 NBN 스캔들의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보인다. 또 이에 따라 정국이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건이 각각 새벽 한시와 두시 경에 연출됐지만 국민들이 TV 생중계를 방청할 수 있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 진다’는 속설은 오래된 불란서 영화 제목에서 유래한 것으로 남녀관계와 음모, 비리의 어두운 측면을 강조하는 말이지만, 또 진실이란 잘 밝혀지기 어려운 속성을 지닌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한 차례의 진위 공방이 강타할 필리핀 정국을 설날 에 지켜봐야 하는 일은 결코 달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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