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기이겠지만, Grunge Rock는 왜? 시애틀이며, 또 항상 너바나와 펄잼이 같이 비교가 되는데 둘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물론 그런지가 시애틀의 것만은 아니다. (시카고를 대표하는 ‘스매싱펌킨스’도 있다)
80년대 유행했던 본조비, 머틀리크루로 대변되는 화려하고 단순하고 즐기는 음악들은 거의 매일 비가 내리고 차분한 도시인 시애틀에서는 그저 덜 열광햇을 뿐이며 너바나의 전 레이블로도 유명한 Sub Pop레이블로 대표되는 지역 밴드들의 네트웍이 잘 짜여져 있어 60,70년대를 이어온 락의 기본성이 잘 살아있던 토양이 한몫 했다고들 한다.
그래서 비록 그들의 사운드를 그런지, 얼터너티브 밴드들이라고는 칭하지만 각각의 음악적 토양들이나 그들의 스타일, 색채감 등이 제 각각이다. 그럼 너바나의 패배주의적, 소위 Loser 성향과는 다른 펄잼의 메시지는 무어시냐?!
같은 Loser들을 대변하지만, ‘Alive’ 라는 노래의 가사 속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머니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기도 하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 속에서도 I’m still alive란 외침으로 ‘살아 있다는 것’ 만으로도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최소한의 희망을 노래하며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것을 외치는 참여정신이다.
밴드를 이루는 구성원 역시 가장 기본적인 3인조인 너바나에 비해, 가사와 메시지를 전담하는 보컬과 하드락 밴드의 기본구성인 리듬기타, 리드기타의 5인조 구성으로 그런지밴드이면서도 꽤 장시간 헤비하면서도 기술적으로도 뛰어난 기타솔로들을 보여준다.
또한 음악 외적인 모습으로는 언급한 바와 같이 티켓마스터와의 대결은 물론이고, 환경문제에 심취해, 지금은 다 무슨 운동인지도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대표적으로 티벳 독립지지운동, 바다 오염 방지 캠페인, 멸종위기인 흰돌고래(?) 수렵금지 캠페인 등 아무튼 음악 외적인 비록 정치적은 아니더라도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91년부터 시작된 얼터너티브밴드의 공습은 이내 그 음악적 한계 때문인지, 지속적인 밴드들의 부재 덕분인지 모르게 94년 커트 코베인의 사망을 기점으로 거품이 사라진다. 이후 발표한 펄잼의 앨범도 더 이상 얼터너티브의 매력에 대중들이 취하지 않는 까닭도 있거니와 밴드 자체에서도 제3세계 음악 등 실험적인 음악적 변신을 꾀하면서 본래의 그들의 분노 등 파워가 많이 딸리기 시작했지만, 98년 [yield]앨범을 시작으로 다시금 하드록 사운드로 돌아가면서 마치 레드제플린의 그것과 같은 원초적이고 고전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의지로 다시금 그들만의 메시지를 설파 중이다. 락 음악의 태생이 돈 없고 사회적으로 핍박 받는 흑인들의 한을 담은 블루스에서 출발하여 70년대 예술적 가치로서의 탐구를 거쳐 80년대 대중음악으로서 자리매김 하기까지, 락을 추구하던 아티스트들은 그 자신이 사회 저급계층이었다는 것, 성공 후에도 자신이 하층민이었거나 중산층이었음을 잊지 않는 그 출발선상에서 펄잼이 차지하는 위치는 더욱 가치가 있다.
비록 자신이 중-하층민이었더라 하더라도 유명인사가 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엔터네이너’로서의 신분상승이 아닌 혹은 Loser인 자기자신을 자학하고 세상에 대한 맹목적인 ‘엿’을 날리던 커트코베인과도 다른 마치 블루컬러계급의 영웅 브루스 스프링스턴과 닐영과 같이 항상 자신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겸손, 자기 개선, 내부의 문제들을 항상 끊임 없이 노래함으로써 절망 속의 희망을 -언제나 대규모 스테디움에서의 공연이 아닌 소규모 공연장 또는 대학교에서의 공연으로- 노래하는 펄잼의 음악적 태도야 말로 진실로 언행일치의 정점을 보여주는 참여밴드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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