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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가 기러기 엄마에게

등록일 2007년11월05일 17시1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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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7-11-05
 

어느덧 ‘기러기 아빠’라는 명칭이 귀에 익숙하게 됐습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이 저의 이름과 별개로 통칭하는 명사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필리핀에 있는 아내는 ‘기러기 엄마(?)’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개념에 충실하게 생각하면 기러기 엄마가 되려면 제가 아이들과 같이 있고 아내는 외국에 나가있어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의 아내를 ‘기러기 엄마’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부창부수라는 한자숙어가 아니라도 심적으로는 같은 상태일테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기러기 아빠의 아픔과 서글픔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위로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내와 자녀를 해외에 보내고 혼자 살고 있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타국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의 이야기는 거의 신경쓰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생활하는데 있어 오히려 더 힘든 사람은 기러기 아빠보다는 아내와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자기에게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도전과 다짐을 수반하는지 알면서도 말입니다.

기러기 엄마는 위대한 사람···

그러고 보면 기러기 엄마는 참으로 위대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힘든 도전을 하는 모험가이기도 하고, 머나먼 타국에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끼나 장기를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기도 하고, 그 어떤 여성들보다 글로벌 마인드(Global Mind)를 가지고 있는 선각자들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녀가 한국인으로서 라기 보다 세계인으로서 성장하기를 바라기에,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거듭되는 변화에 자신을 던져 응전해 나가는 한국의 기러기 엄마들은, 1970년대 우리 아빠들이 중동지역의 건설인력으로서 외화를 획득해 나갔던 마음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한국의 아줌마’ 였기에 그 어떤 사람들보다 알뜰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넓은 집에 ‘아떼’까지 고용하면서 살아가는 부유한 모습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 내막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 ‘기러기 엄마’들의 알뜰한 생활상에 혀를 두르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 이야기만 하는 우리, 아내에게 미안해집니다

어제는 아내와 함께 아이들 교육에 대해 많은 시간을 이야기 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하고 자라는 모습을 아내에게 듣고서 같이 웃기도 하고 건설적인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TV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지만 아내와 함께 아이들의 미래와 희망 그리고 부모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 어떤 유혹도 가로막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한참을 통화하고 난 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갑자기 마음 한 구석에서 후회라는 반갑지 않는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 많은 통화시간 동안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 막상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한다는 혹은 힘든 생활에서 잘 이겨나가고 있는 아내에 대해 위로의 말도 없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매정한 남편의 모습과 별로 다르게 생각되지 않는 순간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의 전화가 아니라 선생님과 학부모의 대화와 같은 모습이였던 것입니다. 갑자기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쓰나미처럼 저의 가슴을 휩쓸어 버렸습니다. 자녀들 못지 않게 더 중요한 그 무엇인가를 놓치고 만 저의 모습은 참으로 참담하게 느껴졌습니다. 기러기들은 날아갈 때, 서로를 위로하는 소리를 내며, 순서를 바꾸어 가며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내와 둘이서 열심히 날개짓을 했지만,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는 소리는 별로 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저 보조를 맞추어 가며 앞만 보고 날개짓 한 것 같습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됐는데...’, ‘말 안해도 아는 것 아닌가?’하는 반문도 있을 지 모르지만 사랑은 표현할 수록 풍부해지는 것이라고 믿는 저로서는 다소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여보, 사랑해요’로 시작하는 마음의 편지를 씁니다

다시 전화를 하려고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다가 너무 늦은 시간이라 결국 전화하지 못하였습니다. 갑자기 술 한잔이 생각나더군요. 술 한잔을 핑계로 술 취한 사람이 중얼거리는 소리처럼 아내에게 마음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때 어떤 말들이 생각났는지 지금은 명확하지 않지만, 아내에게 ‘고맙다, 이해한다, 같이 있지 못해 미안하다. 사랑한다’라는 말들을 여러 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정리하는 이 시간. 마음속으로 다짐도 해봅니다. 다시 통화를 할 때, 아니 바로 지금 전화를 걸어, 다정한 목소리로 ‘여보 힘들지? 고마워요, 당신 마음 이해해요, 그리고 같이 있지 못해 미안해요,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말을 꼭 하기로···. 어제의 읊조림처럼 허공속에 흩어지는 기러기 아빠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에게 따스한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바라면서.

한상진씨는 40세의 샐러리맨으로 KTF에 재직중입니다.

지난해 11월 가족들을 앙헬레스로 보낸 기러기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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