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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오스본은 지독한(?) 애처가

락도리의 대중음악 후비기

등록일 2007년10월01일 17시03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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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7-10-01
 

솔로앨범의 성공적인 데뷔는 오지오스본을 블랙사바스의 일원이 아닌 솔로아티스트로서 새로운 락 영웅으로 만드는데 일말의 의심도 없었고, 그의 뒤에는 든든한 원조를 하는 출중한 연주가들 특히 랜디 로즈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81년 두번째 앨범인 [Diary of Mad man]에서 ‘Over the Mountain’과 ‘Believer’ 같은 곡에서 또다시 불을 뿜는 빛나는 연주를 들려주던 랜디로즈는 아쉽게도 82년 두번째 앨범의 투어를 끝마치지 못하고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오지오스본은 친구로서 랜디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랜디로즈를 추모하는 그의 라이브앨범 자켓을 보면 오지가 그 자그마한 랜디를 번쩍 들어올리면서 정말 행복에 겨워하는 표정을 볼 수 있다. (실제로 둘이 같이 등장하는 사진을 보면 오지에게 랜디로즈는 일개 기타리스트가 아닌 목숨도 내줄 만큼 아끼던 친구였다.)

크나큰 실의에 잠겨있던 오지오스본을 곁에서 지켜준 사람은 다름아닌 블랙사바스 시절 알코올과 약물의 구렁에서 나올 수 있게 도와준 샤론오스본이다.

83년 [Bark at the moon]에서 새로운 기타리스트인 Jake E. Lee를 영입하여 직선적인 헤비메틀 사운드에 더욱 접근했으며, 86년 [The Ultimate Sin] 등 80년대 헤비메틀 걸작들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헤비메틀 황태자의 자리를 굳건히 이어간다.

89년 [No rest for wicked]앨범부터는 또 하나의 기타 히어로 당시 약관의 나이 19세 인 잭 와일드-Zakk Wydd-를 영입하는 파격 세션을 단행했다.

결과는 대만족!! 등장 당시 큰 키와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 조각 같은 꽃미남의 외형에 출중한 실력(그의 기타 실력 중에는 엄청난 손가락 근육의 힘을 필요로 하는 ‘피킹 하모닉스’라는 궁극의 필살기가 있다!!)으로 세 번째 기타리스트인 잭와일드와 함께하는 오지오스본에게 세간의 사람들은 종종 오지오스본을 ‘고르는 기타리스트마다 대단한 인재를 찾아내는 희한한 눈이 있다며’ 인복과 그 안목을 부러워 하기도 한다.

2~3년 마다 앨범을 발매하는 오지오스본은 무대에서의 광기 어린 쇼맨십, 발표하는 앨범마다 수록된 주옥 같은 헤비메틀 사운드, 보컬인 오지오스본 이외에 주목 받는 출중한 밴드멤버들···. 과연 ‘헤비메틀의 대부’로 불릴 만큼 손색이 없는 커리어와 카리스마를 가진 그가 2002년이 되면서 또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오지오스본과 가족의 실제상황을 담은 MTV의 리얼리티쇼 ‘Osbournes’이다.

무대 위에서의 무시무시한 카리스마 헤비메틀 교주가 십대인 아들, 딸에 꼼짝 못하고 아내에게 충성하면서 나이 때문에 챙겨먹는 건강 보조제 및 우스꽝스러운 러닝복으로 마당을 뛰는 장면들은 또 다른 매력으로 대중에게 다가 왔다.

실제로 이 티비쇼는 오지오스본을 잘 모르던 헤비메틀 팬이 아닌 대중들까지 사로잡으며 Emmy award (미국 TV물의 아카데미 시상식)의 Reality show부문에서 수상까지 했는데, 에피소드에서는 막 나가는 헤비메틀 스타를 아버지로 둔 그에 못지않은 엉뚱한 큰 딸과 아들, 암으로 투병하는 오지오스본 인생의 절대적 신앙이자 사랑하는 아내 샤론 오스본을 극진히 간병하고 기도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록 아내에게 “I love you Sharon, Give me your F**kin Kiss”라고 직접적인 사랑표현을 하는 면이 있긴 해도 말이다.

(다행이 샤론오스본은 가족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암 투병으로 인한 재활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현재 다시 오지오스본의 매니저로 다시 일하고 있다)

본인의 음악적 커리어도 대단하지만 그에 안주하지 않고 1996년부터는 자신의 이름을 딴 락 페스티벌을 매년 개최하고 있는데 ‘Ozzfest’가 그것이다.

초창기 오지오스본 본인과 샤론오스본의 친분이 있는 밴드를 기용하여 시작한 이 페스티벌은 현재 ‘신인 헤비밴드들의 등용문’ 이란 타이틀이 붙을 정도로 헤비뮤직 비즈니스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성공했다. 또한 그에 등장한 후배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또한 잊지 않고 말이다.

오지오스본은 평생을 헤비메틀 음악인으로 종사하여 왔지만 사람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면서 ‘Osbornes show’가 휴머니즘을 자극하는 상업적 시도란 일부의 비평도 있지만 음악과 가족과 사람에 대한 그의 ‘진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당연한 결과이며 아직도 대중들은 그의 열정과 진실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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