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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 Honk! Honk! Honk!

한국 기러기 아빠의 하루- 한상진

등록일 2007년08월27일 16시24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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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7-08-27
 

찌는 듯한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 일까? 아니면 맑고 푸른 하늘을 시샘하는 것일까? 길가의 행인들의 발걸음을 바쁘게 만드는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마치 내가 경험하였던 필리핀의 날씨처럼···.

 

유수 같은 기러기 생활 9개월, 가족만남을 꿈꿉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흔히 이야기하는 기러기 생활을 한지 9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참으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우리들이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은 한편으로 야속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머리속에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그 어떤 감동적인 영화보다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바로 멀리 떨어져 있던 기러기가 가족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4번 정도 다녀왔기 때문인지, 이제는 처자식이 사는 동네가 눈을 감으면 익숙하게 펼쳐집니다. 마음은 이미 필리핀에 가있지만 인천공항에서 수속을 하고 대기하는 시간은 이산가족을 상봉하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조급해 지기만 합니다. 넓지 않은 이코노미석이 불편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아내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소풍을 떠나는 아이들보다 더 들뜬 마음이 되고, 어른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때문에 눈은 신문을 보고 있지만 머리속에는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만 떠오르게 됩니다.

 

‘사랑한다’ 기러기 아빠의 되뇌임

약 3~4시간의 지루한 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내고 클락필드 공항에 내리면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 1시의 고요한 시간. 차를 타고 어두운 앙헬레스의 도로를 지나 처자식이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합니다.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다소 조그마한 집을 렌트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처자식이 비와 더위를 피하고, 사랑이 싹트는 장소이기에 더욱 고맙고 반갑기만 합니다.

아빠는 사랑하는 아내보다는 아이들(다희, 형준)이 더욱 보고 싶었나 봅니다. 짐을 내려놓자 마자 아이들 방으로 달려갑니다. '아빠 왔다~~~' 큰 소리로 외치며 들어가고 싶지만 새벽시간인지라 마음속으로 크게 외치고 몸은 아이들이 깰까 봐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아이들은 아빠가 온다는 즐거움보다는 하루종일 더운 날씨에 지쳐있었는지 저마다의 독특한 포즈를 취하고서 새근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자고 있습니다. 이마에 땀방울이 습기를 머금은 꽃잎처럼 촉촉하게 배여 있기도 하고, 가끔은 뒤척이며 잠꼬대 비슷하게 내는 소리가 방금 도착한 아빠의 귀에는 '아빠~~'하며 부르는 소리처럼 들리기만 합니다. 갑자기 가슴 한구석에서 밀려오는 감정은 그 어떤 태풍의 강한 바람보다도 강하게 아빠의 마음을 흔들어 버리고, 결국 아빠는 아이들을 조용히 껴안으며 나즈막한 소리로 귓가에 '사랑한다'라는 말만 남겨놓고 방을 빠져 나옵니다. 아내는 나의 이런 모습이 너무도 불쌍해 보이는 가 봅니다. 오래간만에 만났다는 반가움보다는 애틋한 눈빛으로 나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주곤 합니다. 

 

익숙해지지 않는 퇴근길··· 누군가 마중나오길 여전히 기대합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하루를 살아갑니다. 오늘 하루는 다시금 돌아올 수 없는 선물(President)이자 현재(President)이기에 그 소중한 시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내게 됩니다. 가끔은 동료 직원들과 업무추진을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회의를 하기도 하고, 새로운 일들을 구상하며 새로운 기획서를 꾸미기도 하고,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해주기도 하면서 회사에서의 '나'라는 존재감을 다시금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들이 퇴근하고 난 뒤, 자그마한 갈등에 빠지게 됩니다. 자취생활을 많이 해 본 사람들이 느끼는 '불 꺼진 집'에 들어 갈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방법으로 저녁시간을 보낼 것인지···.

동료들과 만나 저녁식사 겸 술자리를 갖고 집에 들어옵니다. 이제는 혼자 집에 들어가는 것이 익숙해 질 때도 되었건만 마음속에서는 누군가 마중 나오기를 기대하곤 합니다. 창문을 열어 놓고 가지 않아 한낮의 더위가 남아 있는 거실의 열기는 술기운이 더 올라오게 만들고, 아침에 급하게 스프를 만들어 먹고 치우지 않은 그릇들이 식탁 위에서 장식물처럼 올려져 있습니다. 흔히들 기러기 아빠가 망가지는 모습을 많이 보고 들었기에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는 자기 각오를 다시금 기억하고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설겆이를 한 후 나만의 취미생활인 독서삼매경에 빠져 들어 버립니다.

술 한잔을 해서 일까요? 읽고 있던 책을 떨어뜨리고 거실 쇼파에 기대어 자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몸을 추스려 방에 들어가 큰 대자로 뻗어 다시금 잠을 청해봅니다. 하늘을 날고 싶은 한 마리 새처럼 팔을 넓게 벌리고 내일을 위한 소리 없는 날개짓을 해 봅니다. 오늘 꿈에서는 한 마리 기러기가 되어 창공을 훨훨 날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Honk ! Honk ! Honk !소리를 내면서 말입니다. (영어로 기러기 울음소리를 Honk라고 한다고 하네요)

한번은 걱정하고 있을 아내를 위해 Honk ! (여보 걱정하지 마요. 저녁 먹었어요),

또 한번은 아이들을 위해 Honk ! (걱정하지 마라 아빠는 너희들이 있어 행복하단다)

그리고 마지막은 나를 위해 Honk ! (열심히 살고 있어. 힘내···.)

 

한상진씨는 40세의 샐러리맨으로 KTF에 재직중입니다. 지난해 11월 가족들을 앙헬레스로 보낸 기러기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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