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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dori의 대중음악 후비기] 1

등록일 2007년05월25일 15시34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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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7-05-25
 

ROCKdori의 대중음악 후비기

 

칼럼리스트 소개

 

칼럼리스트 이태훈은 격동의 70년대 말에 태어나 재수 좋게 마이클 잭슨과 한영애, 이문세 음반을 어린 나이에 알현하여 음악에 관심을 같게 된다.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정신못차리고 펜대신 헤드폰을 수학공식보다는 좋아하는 노래 가사 하나를 더 외우던 안경잽이 학생은 대학시절 자체로 급조한 밴드 메탈 VH(Vertical Hate)로 홍대 인디씬을 전전하기도 하였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은 후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뿜어내는 글 작업으로 다음, 싸이월드 페이퍼 등에 칼럼을 연재. 드디어 제 2의 땅인 필리핀에서도 그 짓(?) 계속하고 있는 귀여운 30대 락돌이 이다.

 

 

필자가 소위 ‘팝쏭’ 이란 걸 듣기 시작한 것은 아주 꽤 오래 전일이다.

그다지 애호가는 아니셨지만 유행하는 외국가수의 테이프나 LP를 간간이 소장하시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유치원생 일적에는 Michel Jackson의 Thriller 앨범을…..초등학교를 한영애의 ‘바라본다’ 앨범 과 Beatles의 베스트 음반 등을 시작하여 언제부터 라고 할 수 없는 시기에 서서히 음악이란 공간에 심취하여 들어가고 있었다.

 

이후 중학교 시절과 고등학교 시절 동안 꾸준히 모아오던 음반들, 내 젊은 날, 어린 시절을 밝게 비추며 밤 잠 설레게 하던 여러 Rock star들과 음률들은 지금에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와서 마음 깊은 곳 애잔한 감정들이 풋풋이 자리 잡고 있다.

필자 본인은 팝 평론가도 아니요, 더욱이 더 큰 의미의 대중문화의 평론 같은 것은 하지도 않았다.

이제부터 풀어갈 썰(?)들은 내 머리 속의 단편들이며, 이국 땅 필리핀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교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래도 이런 기고로 인해 나의 그 시절을 되돌아 보며 혼자 헤죽거리며, 또는 내 글을 읽고 똑같이 헤죽거리는 독자들이 생긴다면, 그로 인해 행복해 한다면 그로써 족하다.

 

그리고 이 필리핀이라는 곳이 음악 사랑에 있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음악에 대한 조예와 애정이 가득한 나라에서 그들과 숨쉬고 살아가는 우리 교민들에게 혹시나 모르고 지나쳐 갔을 그들이 사랑하는 음악에 관한 이해를 돕고자 칼럼 기고를 자청하고 나섰다.

 

앞으로 기재되는 칼럼들은 철저히 주관적 입장이 반영이 되었고 정확한 문헌을 참고하거나 한 내용들이 아니므로 혹 잘못된 정보 혹은 다른 의견을 가진 독자분 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 분들께서는 서슴없이 잘못 된 부분을 꼬집어 비틀어 주시어도 좋고 나아가 같이 음악에 대한 교감을 공유하는 만남의 인연까지 기대하셔도 되겠다.

 

아무나 붙잡고 ‘음악 좋아해요?’ 라고 묻는다면 ‘아뇨’ 라며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 기고를 통해 또 하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객기 어리지만 음악다운 음악을 듣자이며, 내가 듣는 혹시라도 무심결에 듣고 지나치는 음악들을 알고 듣고, 느끼자 라는 걸 말하고 싶다. 일종의 넋두리라고나 할까?

 

음악인이라는 것을 직업으로 택한 사람들에게는 그 3-5분 사이의 작품이 짧게는 몇 일, 몇 시간, 혹은 몇 개월이 걸린 창작의 고통 속에 태어난 소중한 ‘내 아이’ 이다.

요즘은 워낙 에 컴퓨터로 곡 쓰는 프로그램도 발달도 하고 음향의 기술도 발달 해서 과정이 간소화 되기는 하였겠지만, 기본적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나오는 프로세스는 변하지 않았다.

 

지금 누구나 차고 다닐만한 조그맣고 귀여운 모양의 MP3 플레이어. 사실 본인도 지금 사용이야 하고 있지만, 이게 사실 좋은 물건이 아니다. 아니 음악인들이 보면 아주 무시무시한 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가공할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사실 내가 처음 음악이라는 ‘것’에 빠져 들기 시작하던 때는 (89년~90년 대) 요즘처럼 그리 쉽게 음악을 접할 수 없던 시절의 끝자락이었다. 나보다 더 이전의 세대에서는 자국민의 노래도 검열이란 가위 속에 팔다리 잘린 채로 들어야 했고, 이후 그렇게 형성된 협소한 대한민국의 음악시장은(음악’딴따라’에 대한 인식 역시) 정식으로 발매만 된다면야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열악한 상황에서 몇몇의 애호가들만이 ‘빽판’ 하나를 구하기 위해 서양 혹은 일본 ‘노루표’ 비디오를 사러 간다는 누명을 쓰고 각자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구하기 위해 청계천 상가를 그렇게 뒤 벼야 했다.

 

2000년 벽두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던 Napster1) 를 시작으로 이제 음악은 하나의 파일이 되어 아티스트들의 그 고뇌와 노력들은 전선을 타고 세계 이곳 저곳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그것을 반영하는 MP3플레이어는 LP는 그렇다 처도 CD의 존재 까지도 위협 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의 음악산업 시스템은 디지털 기술에 ‘예술 끼워팔기’로 전락 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잠시 개인적인 넋두리 아닌 넋두리를 해버렸는데, 다시 음악 이야기로 돌아가 마무리를 짓는다면, 필자는 이러저러한 기억 속의 단편들을 최대한 모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지난 시절의 좋은 혹은 현재의 음악들, 산재 되어 있는 숨겨진 보물 같은 음악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보려 한다.

때에 따라서는 앨범의 소개가 될 수도 있고, 테마를 맞는 음악들을 나름대로 선별하는, 또한 음악사의 뒷이야기들도 소개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지금부터라도 지워지고 있는 나의 옛 시절 혹은 현세의 명인들에게 일말의 글 질(?)으로 나마 음악 애호가가 생긴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주1) Napster – 세계 최초로 전세계 MP3파일 공유를 서비스한 업체 명. MP3파일 자체의 개발은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에서 이루어 졌으나 이를 파일공유로서 거대한 사이트로 만든 것은 역시 미국이 처음이었다. (국내에는 대표적으로 소리바다가 있다.) 냅스터 서비스의 시작으로 유명 아티스트들이 이에 대항하는 운동을 퍼트렸으며, 당시 딱히 인터넷을 통한 서비스에 대해 명확한 법적대응권이 없었기에 2000년부터 2001년까지 필자를 비롯해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서로의 파일을 공유를 하였으나 2002년 초부터 유료화 (한국도 마찬가지)가 되면서 그 불꽃은 수 그러 들었다. 그러나 아직 네덜란드에서 운영되는 k모 서비스, 역시 유럽권에서 운영되는 l모 서비스 등이 남아있다. 한국에선 대부분 소리바다나 푸르나 같은 서비스 사이트 역시 무료로 음악 파일 공유하는 것을 금지 하고 있지만, 이미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그 의미가 무색해 진지 오래다.

 

공연장을 찾아가보자!!

멋진 음악을 듣고 감명 받은 사람의 다음 단계는 공연장을 찾는 것이다. 넓은 홀과 동지감을 혹은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나와 같은 수많은 관중들과 같이 맞이 하는 ‘진짜 음악’은 이어폰 혹은 소형스피커를 통해 받은 감명을 몇 배 더 증폭 시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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