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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영사 칼럼]1. “주주손손” (주인은 주인이고...

등록일 2007년05월04일 15시31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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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7-05-04
 

 

“주주손손” (주인은 주인이고... ; 2007.03.28.)

 

홍 승목

 

"주인은 주인이고 손님은 손님이다"라는 말을 간단히 하고 싶은데 '주객불변(主客不變)'이니 '주객부동(主客不同)'이니 하려니까 너무 낡은 냄새가 난다. 그렇다고 해서 "주주객객(主主客客)"하려니 발음이 목에 걸리고... 주주캑캑? 주주깩깩? 한글세대가 다수이니 발음도 부드러운 "주주손손"으로 하기로 하자. 그런데 이 '주주손손'은 참으로 난공불락이다. 미풍양속이라면서 완강하게 버티던 '남녀유별(男女有別)'이나 '장유유서(長幼有序)'도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이 '주주손손' 만은 끄덕도 없다.   

 

한국에 체류하는 미국인 관광가이드가 자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 욕을 하고 다닌다면 한국정부는 어떻게 할까? 당연히 체류자격을 박탈하고 한국에서 퇴거시킨다. 체류자격은 한국의 주권문제이기 때문에 - 한국이 주인이기 때문에 - 주한 미국대사관이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설사 이견을 제기하더라도 아주 조심스럽게 할 것이고, 한국정부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한국이 싫으면 진작 자기 발로 떠났어야지, 어떻게 한국에 있겠다고 하면서 주인 욕을 하고 다니는가? 도적의 집에 찾아가더라도 손님으로 갔으면 주인에 대한 예의를 다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 아닌가? 그 정도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인간은 우리나라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당신네 국민들 교육이나 잘 시키세요." 미국대사관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의 대사관도 '자국민 보호'라는 명목으로 이러한 일에 함부로 개입하지는 않는다. 체류하는 나라에 침을 뱉는 자국민을 보호하려고 덤벼드는 것은 외교의 최하급이다. 여기까지는 일반상식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을 떠나는 순간 이러한 상식을 잊어먹는 경우가 가끔 보인다.

 

대학교수인 친구가 최근에 단체관광으로 필리핀을 다녀가서는 메일을 보내 왔다. 관광버스에서 여행가이드한테서 이런 안내를 받았다고 한다: "필리핀은 형편없는 나라입니다. 질서도 엉망이고 경찰은 다 부패해 있고...  못 사는 게 당연하지요. 한번은 술에 취해 택시를 타고서 잠이 들었었는데 나중에 깨어 보니 경찰서 앞에 와 있더라구요. 운전기사가 나더러 차에서 자고 있어서 영업을 제대로 못 했다면서 한국 돈으로 몇 만원이나 되는 돈을 내라고 합디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못 내겠다고 버티었더니 경찰이 구금하더군요. 대사관에 연락해도 도와주지도 않고... 도대체 대사관은 뭐 하러 있는 건지..."  [註 : 동료영사들에게 확인해 보니 구금된 이유는 택시요금 때문이 아니라 경찰서에서 소란을 일으키며 기물을 파괴하고 공무집행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란다. 영사가 전화로 경찰에 선처를 간곡히 부탁하여 가까스로 문제가 악화되는 것을 무마시켰는데, 대사관의 도움을 받은 부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억하심정에 그럴 수 있지 뭐" 할 만한데도 이 교수친구는 그냥 넘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여행가이드의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하면서 나더러 제대로 일하란다. 내가 총영사로서 관할하는 지역에서 일어난 것이니까...  따갑게 지적한 메일의 본문은 이렇다:

 

    1.  관광객으로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필리핀에 간 것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한 것이었지, 여행가이드 개인의 사소한 음주사건이나 듣자고 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곳에서 "당신은 쓸데없이 이 나라에 와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울화가 치밀더군. 세상에 배울 점이 없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 사람도 셋이 모이면 그 중에 나의 스승이 있다고 했는데 하물며 한 나라에서 배울 점이 그렇게도 없을까? 더욱이 필리핀은 과거에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살던 나라였었는데 그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닌가? 이집트나 그리스 같은 나라에 가서도 고작 '사기꾼의 나라'니 '부패한 나라'니 하는 이야기나 듣고 돌아오란 말인가? 사실은 나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뺏은 것은 바로 그 가이드였다. 그 시간에 다른 가이드로부터 의미 있는 안내를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기회를 박탈당했으니까 말이야.   

 

    2.  주인을 그렇게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다니는 손님을 쫓아내지 않는 것을 보면 필리핀은 참으로 너그러운 나라인 모양이네. 그렇다고는 해도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필리핀인이 한국인을 좋아할 리가 없는데, 대사관에서 한국인이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말려야 하는 것 아닌가? 스스로 자초하여 하루 구금당한 것을 가지고도 대사관을 원망하던데 나중에 쫓겨나기라도 하면 오죽할까? 그 사람이 "자국민 보호를 제대로 하라"고 악을 쓴다고 해도 "쫓겨날 짓을 했으니 나가야지" 라고 대답한다지만 주재국에서 "국민교육 제대로 시키라"고 하면 뭐라고 답변하려나? 구차스런 변명을 해야 할 상황이 오기 전에 예방대책을 마련하게.  

 

    3.  대사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제발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서 자기가 주인인 양, 아니면 자기가 최종결정권자인 양, 주제넘게 문제를 해결하려 덤벼들지 말라고 홍보 좀 하게. 외국에 자주 여행을 다니다가 얻은 중요한 교훈 중 하나가 "우리 한국인들 중에는 이견이 생기면 '반드시 내가 옳다'고 확신을 가지고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자기 스스로 판결까지 다 내리는 사람이 종종 보이는데 비해, 외국인들은 대개 '상대방이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 차분하게 대화를 나눈다"는 차이점이야. "외국에 나가서 한국인이기 때문에 당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개 한국에 있을 때도 사소한 일로 마찰을 일으키고서는 자기가 절대로 옳다고 우기면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일 거야. 외국에서 이런 처신을 하면 당하기 마련이지 않겠나? 

 

    4.  그 여행가이드 말인데, 술에 만취해서 택시에서 목적지도 미처 밝히지 못한 채 곯아떨어질 정도였다면 강도를 당할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런데 무사했으니 고마운 일이지. 택시 운전기사가 자기 때문에 영업을 못 한 것도 사실 아닌가? "돈 많은 한국인"을 상대로 바가지요금을 씌워 주머니 돈을 털어가는 양심불량 정도인데. 이런 것까지 필리핀 사람에게 시비를 가리려고 했다니 쯧쯧... 자기가 그 나라의 주인도 아닌데 잘못을 바로 잡겠다고 덤벼들면 그 나라에서 누가 한국인 손을 들어 줄까? 그리고 대사관에 연락만 하면 '영사재판권'이라도 행사해 줄 것으로 믿는 건가? 지금이 제국주의 시대인가? 아니면 필리핀이 한국의 식민지라고 착각한 건가? 대사관은 식민통치기관인 총독부가 아니란 걸 분명하게 이해시키게. 필리핀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정부의 책임이겠구먼. 국민들이 잘못 알고 있다면 제대로 알려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들은 제대로 알 권리가 있다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맡은 일에서 일류가 되겠다는 의지를 갖도록 온 국민을 격려할 필요가 있다"고 늘 주장하던 자네 아닌가? 필리핀에 있는 여행가이드부터 일류가 되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 어떤가?

 

공자 앞에서 문자 좀 써 봤네. 지난번에 "우리나라 대학교수들 다수가 학문에 너무 게으른데다가 심지어는 학자로서 실패한 것을 정치권력을 잡아서 자위하려는 경향까지 보인다. 자신을 속이는 짓이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데 대한 반격인 셈이지. 이제 이쯤해서 서로 비긴 걸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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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영사칼럼'을 시작하면서]  15년 전인 1992년 마닐라 한인신문(월간)에 정기 기고하던 '영사칼럼'을 재개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물론 얼른 받아들였습니다. 교민 여러분과 가급적 다양한 대화창구를 열어 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서 매달 1-2회 정도 뵙겠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대사관의 방침보다는 아직 이에 이르지 않는 개인적 소망사항을 반영하거나 대사관 업무와 무관한 내용을 담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글은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sungmoghong)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의견이 있으신 분은 이 블로그에 댓글로 올려 주시면 꼭 읽고서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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