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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규 컬럼] 9. 내가 만난 참전 용사

등록일 2007년02월22일 15시07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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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7-02-22
 

20여 년 전 가족과 함께 터키를 여행하는 도중에 우연히 이스탄불에서 6.25참전 용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많이 찾는 관광지에서 만난 그 참전 용사는 참전할 때에 받은 훈장을 상의 옷깃에다가 주렁주렁 매달고 관광 기념품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참전하여 받은 훈장이 생계를 위한 수단이 된다는 것이 내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태국 방콕의 수상 시장에서 열대과일 장사를 하는 참전 용사를 만나 적도 있습니다.
몇 년 전엔 필리핀에서 한국 전쟁 당시 고문단으로 파견되었던 노인이 우리 집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한국 전쟁에 참전한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기며 한국인인 우리를 무척 반가워하였습니다.
한국전이 발발한지도 어언 50여년이 지났으니 대부분의 6.25 참전 용사들은 유명을 달리했거나 살아있다 하더라도 80세 이상의 고령일 것입니다.
10 여 년 전에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한 신생 국가인 에리테리아라는 나라를 사업차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에티오피아가 1개 대대 병력을 우리나라를 위하여 참전시켰다는 정도의 상식을 갖고 그 나라를 방문하였습니다.
사업 때문에 정부 관리들을 만나던 중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싸운 퇴역 전사들의 단체 (우리나라의 재향 군인회와 같은 단체임) 책임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을 얻기 위하여 싸우는 중에 팔 하나를 잃었으며 다리 한쪽도 부상당하여 불구가 된 상이용사였습니다.
이 단체는 정부의 예산으로 퇴역한 전사들의 생계지원 및 후생복지와  취업을 도우며 자체 사업을 통하여 얻어지는 이익금 또한 그들을 돕는데 쓰고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어렵게 세운 독립국이어서 이 기관의 영향력은 막강할 뿐만 아니라 자체 사업을 의욕적으로 벌이려 하던 시기라 여러 가지 사업을 계획하면서 나에게 자문을 구하고 투자를 독려하였습니다. 그와 만나서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우연히 한국전 참전 용사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생존한 자는 10여명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사람이 에티오피아와 투쟁하다가 부상하여 정부의 수용기관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였더니 그곳 책임자 앞으로 소개장을 하나 써주어서 그것을 가지고 안내원 한 명과 같이 다음날 그가 있는 곳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 곳은 에리테리아의 수도인 아스마라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소요되는 산악 지역에 위치한 수용시설이었습니다.
그곳엔 거동이 불편한 불구자가 약 3,000명가량 수용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수용 시설은 우리나라의 비닐하우스만도 못했습니다.
내가 책임자에게 소개장을 보여주고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하자 곧 6.25때 참전했던 용사가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70대 초반쯤의 거동이 불편한 초라하기 그지없는 노인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인사를 한 후 내 소개를 하였습니다.
“나는 한국 사람인데 사업 때문에 이곳에 왔다가 참전 용사가 계시다기에 한 번 만나 뵙고 싶어서 왔다.”고 하였습니다.
내 이야기를 알아들은 그의 얼굴엔 갑자기 말할 수 없는 감회가 서리는 듯 표정이 변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여야 할지 망설이는 표정이더니 얼굴에 미소만 띠고 있을 뿐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에티오피아의 6.25 참전 용사들은 참전 후 에티오피아로 돌아가서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던 국가가 셀라시에 황제 시대에 사회주의 국가로 바뀐  것입니다.
국가의 체제가 이렇게 갑자기 바뀌자 한국전에 참전했던 용사들은 적성국을 도운 반역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전역 되었고 국가에선 아무런 지원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절대 빈곤국으로 변한 에테오피아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처절했을 고통이 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들은 오랜 기간 죽을힘을 다하여 에티오피아와 싸워서 마침내 에리테리아라는 나라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처참하게 늙고 병든 몸으로 수용시설에 맡겨진 것입니다.
나는 수용소 소장에게 조그만 정성을 드리고 싶다고 하니 정부 기관인 재향군인회와 같은 기관을 통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가지고 간 출장비 중 일부를 봉투에 담아서 그 노인에게 전달해 달라며 맡기고 돌아왔습니다. 
다음달 관보에 내 이름과 내가 맡긴 돈의 내역이 실린 것을 확인하고 조금이나마 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병들고 지친 그 노인을 보면서  영화 “25시”의 안소니 퀸이 생각났습니다.
그가 과연 자신의 젊은 날을 돌아보면서 무슨 생각에 잠길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를 도운 것을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우리는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며 우리의 힘이 닿는 한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6.25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그냥 값싸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젊은 생명이 바쳐진 고귀한 피의 대가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곧 6월이 다시 돌아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다시는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없어야하겠습니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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