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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규 컬럼] 16. 나의 아버지에게 배운 것들.

등록일 2007년02월22일 15시02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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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7-02-22
 

16. 나의 아버지에게 배운 것들.

나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모두 학업을 마치고 30대에 접어든 나이로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큰 아들은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참한 아내를 얻어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두 돌 지난 아들 하나를 열심히 잘 기르고 있습니다.
작은 아들은 아직 미혼으로 우리 부부와 함께 살며 우리 회사에 나와서 내 일을 돕고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 평가하건데 “고슴도치 아버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다 자란 아들인데도 지금도 아들들이 사랑스럽고 대견합니다. 그래서 종종 주위 사람들에게 아들 이야기를 할 때가 많습니다.
한국에 있는 아들과는 거의 날마다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 며느리와도 자주 전화로 주거니 받거니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때로는 즐거운 마음으로 며느리에게 농담을 할 때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제법 말을 배운 귀여운 손자와도 가끔 통화를 합니다.
내 아내는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엄하게 가정교육을 시켰습니다.
두 살 터울의 개구쟁이들이라서 어려서 장난이 매우 심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면 반드시 시시비비를 가려서 잘못하였을 때에는 벌을 세우거나 종아리를 때리고 반성문을 쓰게 하였습니다.
아이들을 혼내준 후 마음 아파하는 아내에게 나는 늘 “나이 들면 저절로 철이 드니 그냥 말로 잘 타이르고 넘어가면 된다.”는 말로 위로를 하였습니다.
내 아이들을 기르면서 나는 우리 부모님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돌아가신 나의 아버님과 어머님은 성품이 매우 온화하시고 인자하신 분이셨습니다.
아버님은 평생을 교육자로 헌신하신 분답게 우리 형제들의 교육에 많은 신경을 쓰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 형제들이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아버님이 매를 드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오직 불러서 앉혀 놓고 말로 조용히 타이르시곤 하였습니다.
형제 중에 유난히 장난이 심했던 나는 어려서 놀다가 많은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어느 해 정월 대보름날에 어머니께서 설빔으로 손수 지어주신 명주 바지저고리를 입고서 깡통에 불을 담아서 들불놀이에 나섰습니다. 친구들과 들판에서 깡통을 신나게 돌리면서 재미있게 들불놀이에 열중하다가 그만 깡통에 담겼던 불씨가 내 바지저고리로 떨어져 불이 붙는 바람에 당황한 나는 들판 잔디에 몸을 데굴데굴 굴려서 겨우 불을 껐습니다. 바지저고리가 불에 군데군데 타고 흙에 뒹군 강아지처럼 온 몸이 엉망이 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가니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야단은커녕 불에 데거나 다친 곳이 없는지 걱정하시며 온 몸을 살피시고 깨끗이 씻기신 후에 새 옷으로 갈아입혀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우리 아들들을 기르면서 해 준 것이 있다면 우리 아버님처럼 내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아이들을 교육시킨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늘 말하기를 “공부를 계속 하겠다면 지원하는 것은 내 몫이고,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과 계속하겠다는 의지는 너희들 몫이다.”라고 말해왔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나는 열과 성의를 다하여 지원을 해 주었고 아이들도 각자 열심히 공부해 주었습니다.
또 한 가지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은 것은  우리 아버님이 우리 형제들에게 하셨듯이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해 주고 늘 의견을 존중해 주도록 노력한 것입니다.
부모라고 아이들의 의견을 무시한 적도 없고 윽박지른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형제지간에 형이라고 더 잘 해준 것도 없고, 아우라고 덜 해 준 것도 없이 늘 무엇이든 두 아이들을 공평하게 해 주었습니다.
초등학교 과정은 한국인 학교를 다니게 하였습니다. 중학교 과정부터는 International school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는 두 아이 모두 미국의 보딩 스쿨로 유학을 보내서 형제가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학교생활을 하게 했습니다. 그 이후 대학, 대학원, 박사 과정 등 각자 본인이 원하는 만큼의 교육을 받도록 지원해 주었습니다.
큰 아이는 졸업 후 곧바로 한국으로 들어와서 일을 시작하였고, 작은 아이는 미국에서 일을 하다가 내가 불러 들여서 우리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부모라면 누구든 마찬가지 생각이겠지만 나 또한 오랫동안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번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가 바로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외국 사람들에게 말 하면 이해가 잘 안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고기를 잡아줄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된다.”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서는 은근하게 가슴으로 느끼는 깊은 사랑을 받았고, 어머니에게서는 피부로 느끼는 따뜻하며 자상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끔찍한 사랑을 받고 자랐으니 나 또한 아들들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나의 두 아들들도 제 아이들을 그렇게 사랑하며 바르게 교육시키기를  바랍니다.
청소부 아버지를 둔 미국의 NBC TV 간판 앵커 “팀 루이스”는 아버지를 인생의 스승으로 주저 없이 꼽았습니다.
그는 주요 인터뷰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의 조언을 구하였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랐다고 하였습니다.
나도 가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돌아가신 내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믿는 자녀답게 세상의 온갖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올바른 삶을 살아갈 것을 절실히 바라며 날마다 기도합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약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늘 생각하며 사회에 조금이라도 공헌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 합니다.
나의 아버지가 어려운 시절에 늘 이웃을 위하여 헌신하시며 검소하고 반듯한 삶을 사셨듯이 말입니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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