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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자의 사람香]시간강사에서 정규교수가 되기까지

University of Santo Tomas(UST) 정치외교학과 박정현 교수

등록일 2010년08월27일 18시14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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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10-08-27
 

 

장기자의 사람 (교수편)

‘한때의 마주침’이 아닌 서로의 향기를 오래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리운 만남들’. 살아가면서 가장 좋은 향기는 ‘사람의 향기’가 아닐까? 5년간 취재 현장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향기를 담아본다. –편집자 주

 

 

2년 전, 한 세미나에서 박정현 교수를 처음 만났다. 그는 그때 유독이 기자들을 멀리했었다. 자신의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며 당부하고 가능한 말을 아꼈던 것으로 기억난다.

 

“사실 공개적인 자리가 꺼려지긴 해요. 다른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는 직업이 아니다 보니 이것저것 말조심하게 되고.. 또 필리핀에 오래 살다 보니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되고.. 그래서 아예 (한국사람 만나는 것)그런 쪽으로는 담을 쌓고 지냈죠”

 

그랬던 그가 어떤 일을 계기로 지금은 기자들과 긴장을 풀고 대화할 수 있는 사이로까지 발전했다. 전부터 인터뷰 대상자로 염두에 두었는데 이제서야 그의 사는 이야기를 듣게 돼 내심 기뻤다.

 

아세안’ 연구 위해 필리핀 땅 밟다

국내에서 석사를 마치고 국책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박정현 교수는 지난 2003년 8월 아내와 함께 필리핀 거주생활을 시작했다. 올해로 딱 7년째 접어들었다. 국내에서 남부럽지 않은 연구원으로 한창 잘나가던 그가 필리핀에 온 이유는 뭘까.

 

“장 기자 말대로 국책 연구소 연구원이라면 꽤나 잘 나갔어요. 월급도 많이 받고.. 하지만 박사과정을 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됐죠. 대부분의 정치외교학과 출신들이 박사 과정을 밟으면 ‘비교 정치학’이라는 걸 많이 해요. 여러 가지 정치적인 형태를 비교하는 학문인데 정치학의 큰 테두리 중 하나죠. 하지만 이 ‘비교 정치학’을 전공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보니 이대로 가다간 앞이 안보이겠다 싶었어요”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당시 필리핀에서 상위 1%에 드는 필리핀 교수님과 친분이 있었어요. 제 고민을 듣고는 필리핀에 와서 ‘아세안’에 대해 연구하라고 권유하셨죠. 아세안은 잘 알겠지만 동남아 10개국이 모인 공동체잖아요. 현재 아세안의 목적이 EU(유럽연합)처럼 정치통합까지 이루는 것인데 이 아세안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에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학문이라며 추천하셨어요. 그분의 설득에 의해 필리핀에 오게 됐죠”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 대한 중요성은 최근 들어 상당히 커지고 있다. 박 교수에 따르면 한중일도 아세안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쏟아 붇고 있다. 싱가폴과 브루나이를 빼고 나면 모두 개발 도상국가들로 앞으로 장기적인 발전과 잠재성을 충분히 갖춘 나라들인 동시에 차세대 시장의 주역 국가들이기 때문. 필리핀도 아세안 멤버 중 하나에 속한다.

 

UST 정규교수, 꿈에도 생각 못해

“필리핀에 온 해 11월부터 UST(University of Santo Tomas)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어요. 보통 4~5년 걸리는데 저는 작년에서야 박사학위를 받았죠. 남들보다 조금 오래 걸린 이유는 1년 정도 학교등록을 안했어요. 논문을 쓰는데 여태까지 나온 정치이론 가지고는 아세안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도저히 분석할 수 없었거든요. 적어도 제 연구에서는요.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휴학을 하고 여행을 갔어요. 싱가폴, 방콕,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 세미나에 많이 참석하면서 어떻게든 연구방법을 찾으려고 애썼죠. 결국 방법을 알아내서 논문을 쓰니까 제 생각대로 딱딱 맞아떨어지더라고요”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그는 2006년부터 UST에 시간강사로 일해왔다.

 

“Visiting Professor이란 타이틀로 2~3년 정도 UST 정치학과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필리핀 대학에서 시간 강사는 그나마 쉽게 일할 수 있지만 정규 교수가 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저하고 영국인, 필리핀인이 정규 교수 후보자로 있었는데.. 대부분의 교수들이 압도적으로 저를 지지해줬어요”

 

필리핀 명문대로 손꼽히는 University of Santo Tomas(UST)는 내년에 400주년을 맞이해 아시아에서 역사가 가장 긴 대학이며 4명의 필리핀 대통령과 3명의 부대통령, 카톨릭 주교들 등 훌륭한 동문들을 배출해 법, 정치, 경제 및 각계 분야에서 뛰어난 명성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UST 교수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죠. 게다가 제가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진행된 일이었어요. 그때 친한 필리핀 친구가 이력서를 보내라고 연락이 왔어요.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면서요. 저는 도대체 무슨 일일까.. 막연히 생각하고 궁금해 했죠. 그 친구는 제 이력서를 받고는 자기들끼리 회의를 거치고 추천을 받고 하면서 어느 정도 일이 진행된 다음에 연락이 왔어요”

 

박 교수의 친구가 연락이 온 날은 태풍이 지나가면서 비가 엄청나게 온 날이었다. 박 교수가 “태풍이 이렇게 오는데 다음에 오라”고 말했지만 끝까지 오늘 꼭 가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비가 그렇게 쏟아지는데 찾아와서 한다는 이야기가 저를 정교수로 추천했다더군요. 그리곤 ‘앞으로 인터뷰가 세번이 있을 텐데 여기서 크게 결격 사유가 없으면 너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어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필리핀 사람들에게 잘해준 게 하나도 없는데 나는 이 사람들에게서 많은 복을 받는 구나..’하고요”

 

세 번의 인터뷰는 어려웠다. 특히 퇴임을 한달 남짓 앞둔 과 학장은 박 교수가 워킹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인터뷰 자체를 거절했다. 워킹 비자는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여러 번 설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 때 과 비서의 말이 ‘현 학장의 퇴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새로운 학장이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보면 어떻겠냐’고 던진 조언에 박 교수는 인내심을 갖고 한 달의 시간을 기다렸고 드디어 새로운 학장과의 인터뷰는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티칭 데모, 각 학과장과의 인터뷰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작년 초, 드디어 UST 정치외교학과 정교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현재 그는 ‘아시아 정치와 발전’이란 주제로 대학생들과 대학원생 모두를 가르친다.

 

필리핀서 외국인 교수로 사는 법

박정현 교수는 수업이 없는 날이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일이 많다. 책 정리도 하고 틈틈이 최신 자료들을 찾아가며 철저히 수업준비를 한다. 학교에 가는 날이면 수업이 있기 3시간 전에는 도착해 학교 업무들을 본다. 타 교수들하고의 관계도 좋은 편이다.

 

“저는 인사를 잘하는 편이예요. 한국식으로 깍듯하게 인사하죠. 밥 먹을 일 있으면 같이 밥먹고 얼마 안되는 밥값이면 제가 항상 내요. 사실 그게 제가 교수되는데 점수를 많이 딴 것 같애요. 식사하면서 웃고 잘 이야기 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주니까..”

 

최근에는 박 교수네 단과 대학이 ‘English Policy(오로지 영어만 쓰는 정책)’의 시범으로 뽑히는 바람에 타갈로그를 하라는 압박도 없어져 마음이 더 편해졌다고 한다.

외국인 교수로서 수업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없느냐고 물어보니 특별히 어려움은 없지만 문화적 차이는 가끔씩 느낀다고 한다.

 

“제가 필리핀 정치나 문화를 갖고 이야기를 할 때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학생들이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한번은 타갈로그어 중에는 ‘Utang Na Loob(마음의 빚, 마음속의 은혜)’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필리핀 정치적 부패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한 적이 있어요. 정치인들이 마을에서 음식을 제공한다 던지.. 봉사를 한다 던지.. 그런 일 많이 하잖아요. 그러면 필리핀 마을사람들은 마음에 빚이 생겨서 다음 선거 때 그 정치인을 뽑는 거죠. 그런 뜻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한 4학년 학생이 벌떡 일어나더니 ‘‘’Utang Na Loob’은 필리핀 문화이고 전통적인 가치인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했을 때 좀 당황했어요. 전 ‘Utang Na Loop’ 자체를 나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뜻은 어느 나라에서든지 다 있다. 하지만 이게 정치와 연결됐을 때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부패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이해를 시켰죠. 그 다음부터는 민감한 이야기가 나올 때는 늘 조심스레 이야기 해요”

 

한국 유학생들에 대해서는 그도 할말이 많다.

 

“(유학생들이) 필리핀 학교를 다니는 것이 나름대로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아요. 자신들이 공부를 못해서 (필리핀 대학을)왔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국에서 봤을 때 필리핀 대학을 낮게 평가한다고.. 자격지심이 있는 친구들도 더러 있어요. 그런 학생들에게 큰 형 뻘로서 좋은 조언을 해주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없어 아쉬워요”

 

“한국에서도 서울대를 비롯한 몇 개 대학 빼고는 지방 대학이 많으니 큰 차이는 없다고 봐요. 오히려 취직할 때 개인의 능력이던지, 경험을 많이 보죠. 필리핀에서는 영어는 기본으로 해야 하고 영어 외에 여러가지 경험할 수 있는 환경들이 많아요. 국제회의 라던지 한국 대학교들 보다 참여할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합니다. 또 굳이 한국에서 취직을 해야 할 필요성도 사실 없어요. 외국 글로벌 기업들이 연봉도 높고 경쟁력도 있으니 선입관을 버리고 자신감을 갖길 바랍니다”

 

그는 교내에서 낙제(Fail)는 커녕 점수를 후하게 주는 교수로 소문났다. 그 자신도 낙제는 절대 주지 않는다고 한다.

 

“낙제를 주는 몇몇 교수들이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낙제 하나가 그 학생 인생에 어떤 영향력을 끼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순순히 제 경험도 포함되죠. 제가 대학교 4학년 1학기때 고수익이 보장되는 회사에 취직을 했어요. 취직을 했으니 학교 수업에 잘 안 들어가게 되잖아요. 그런데 어떤 교수가 한 과목을 F를 준거예요.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고.. 그래서 다니던 회사 채용에도 취소가 됐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대학원을 간다, 교수를 하겠다 이런 생각이 없었거든요. 마음고생이 심해 그때부터 이곳 저곳 여행을 다녔어요. 그런 다음 다른 학교로 편입해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을 들어갔죠”

 

낙제를 주지 않은 대신에 박 교수의 수업은 대체로 엄격한 편이다.

 

“제 수업 도중에 학생들이 떠드는 걸 제일 싫어해요. 그렇다고 화를 내는 건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말하는 소리가 들리면 하던 강의를 멈추고 그 학생을 계속 쳐다봐요. 그리고 그 학생의 이야기가 끝나면 ‘오케이, 땡큐’라고 하고 다시 강의를 진행하죠. 강의 내용이 계속 잘리니까 좋지 않긴 하지만 그 만큼 규정을 두는 거죠. 집중할 수 있게”

 

교수로서 보람을 느낄 땐 언제냐고 하니 가슴속에서 꼬깃꼬깃한 작은 메모지를 꺼냈다. 거기에는 한 학생이 서툰 한국어로 쓴 감사의 글이 담겨 있었다.

 

“지난 학기 때 필리핀 학생이 준거예요. 기말 고사 볼 때 이걸 놓고 가더라고요. 작은 거지만 이런 걸 받을 때 기분이 좋고 가장 보람되죠. 항상 지갑에 넣어가지고 다녀요. 힘들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한번씩 봐요. 그러면 기분도 괜찮아지고 힘도 생겨요”

 

정치외교학 교수로서 바라본 ‘한국 외교’

정치외교가 전공인 그에게 ‘한필 외교’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현재 우리 외교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 좀 더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양자간의 외교관계에는 오래된 친구로서 별다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너지적인 효과를 얻고자 한다면 한필 관계보다 좀 더 넓은 테두리에서 한국 정부가 아시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봐요. 그 첫째로 중국의 영향력을 한국 정부가 인정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중국은 대국이고 빨리 발전하는 나라로만 알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맹기로서, 정치적인 헤게모니를 갖은 국가로서 중국의 위상을 커가고 있는데 말이죠. 현재 우리 정부의 외교정책 대부분은 미국에 중심을 두고 미국을 최우방국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국과 대립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천안함 사태의 경우,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 중 하나도 한국이 ‘중국의 친구’가 아닌 ‘미국의 우방국가’로 다가갔기 때문에 지지를 얻지 못한 겁니다. 미국과 중국. 한국 정부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전략적인 외교가 필요해다. 한국은 중국의 존재를 인정하고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동시에 아세안 국가들하고도 지금보다 좀더 협조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키노 새 정부의 헌법 개정에 외국인 투자법도

아키노 새 정부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 7월 국정연설을 통해 아키노 대통령이 내놓은 정책 중에 교민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있을까.

“아키노 정부의 국정연설은 미래 청사진 보다 전 정권의 부정부패적인 행각, 부족한 예산 등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 했죠. 전 정권에 대한 ‘정치적인 복수’성향이 짙다고 할까요. 사실 대통령 공략법으로 새로운 정책, 블루 프린트를 먼저 내놓았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다만 2~3개월 내 중기필리핀개발계획(Medium-Term Philippine Development Plan; MTPDP) 조만간 발표한다고 하니 여기에 관심을 두면 앞으로의 필리핀 경제상황을 잘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 아키노 대통령이 헌법 개정을 시도한다는 말들이 있는데 아로요 정권 당시에는 자신의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헌법 개정’으로 말들이 많고 조심스러웠으나 지금은 입장이 다릅니다. 국가 발전을 위해 낡은 법을 개정한다고 하니 여기에 우리 대사관이나 상공회의소 등에서 ‘외국인 투자법 완화’등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혜진 기자 wkdgpwls@manilaseoul.com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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