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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선교 23년 김원배 원로 목사, 시련 이기고 ‘제2의 인생’

등록일 2008년07월21일 17시0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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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8-07-21
 

(편집자 주) 지난 6월7일 케존시 쿠바오 지역에 위치한 쿠바오성서침례교회(담임 목사 김원배)는 창립 19주년을 맞아 감사 집회를 열었다. 필리핀 선교를 위해 23년간 인생을 바쳐온 김원배 목사에게는 매우 감격스러운 시간이었다.

아픈 몸을 이끌면서도 필리핀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그는 필자에게 “나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여전히 필리핀 선교에 꿈을 꾼다. 필자는 그의 인생 스토리를 통해 잠시 필리핀 선교를 엿보았다.

 

선교의 꿈을 품고 필리핀으로~

올해로 69세를 맞이한 김원배목사는 1982년 성서 유니온 기독교 단체를 통해 동남아 선교 대회로 필리핀을 처음 방문했다. 그는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 판자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필리핀 사람들을 보며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여기저기 빈민촌을 다니며 저들 생의 참상을 보고 주님의 민망함을 느꼈다”고 말한 김목사는 ‘필리핀 선교’에 사명감을 가지게 됐고 고국으로 돌아오자 마자 필리핀 선교를 갈 준비를 했다.

당시 그는 부산에서 구서성서침례교회를 개척해 14년간 목회를 하고 있었으며 매주마다 참석하는 청․장년의 수가 100여명이었고 성도들이 늘어나고 있을 시기였다. 하지만 “목자없이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겠다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이었다”며 1983년 가을, 교회를 후임 목사에게 일임하고 ‘연차 목회자 전국모임’에서 필리핀 선교사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 그는 1년간 각 교회를 방문해 선교 후원을 요청했으며 결국 1984년 6월14일 ‘믿음과 미래의 개척’이라는 각오 아래 가족들과 함께 필리핀으로 오게 됐다.

“저는 (필리핀을) ‘믿음의 선교’라고 생각했고 내 나이 45세였으니 의욕도 있었습니다. 영혼 구원과 교회 개척에 초첨을 두었지요”

 

필리핀 선교사로 부딪히는 문제?

외로움· 언어장애· 재정적 어려움 그리고 건강

열정을 안고 온 김 목사의 선교 이력은 이랬다.

 

1985년 성경통신신학교를 열고 집에서 야간 성경학교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침.

1986년 톤도 빈민지역에 시원성서침례전도처를 염.

1988년 케존시 쿠바오 EDSA 지역 근교에 3층 건물 임대해 쿠바오성서침례교회를 개척. 1년 후 같은 지역의 다른 장소로 이사함.

1994년 쿠바오성서침례교회 재정적 자립을 선언. 교인들의 헌금으로 교회를 이끌어 감.

1995년 쿠바오 지역에서 성서대학을 건립. 30명 학생을 배출함. 재정 부족으로 2003년 문을 닫음.

이후 목회 기간 동안 팡가시난, 탈락, 칼라오칸, 불라칸, 민다나오, 바타안 지역 등지에 33개의 교회를 개척, 민도로 섬에서 망얀 부족을 전도해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 건립. 현재 15년째 교육사업을 담당하고 있음.

2008년 쿠바오성서침례교회 만 19주년을 맞이함.

 

어찌보면 화려한 이력(?)이라 할 수 있었으나 한편으로 그에게 어려운 시험들과 고초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날씨가 항상 더우니 짜증이 나고 필리핀 사람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 외로움도 많았습니다. 마닐라 지리도 잘 몰랐고요. 생활비에 여유가 없어 매달 송금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많았었습니다”

영어로 하는 설교에서도 그는 ‘쉬운 영어’를 고집하면서 “나의 유머로 이들을 웃길 수 있다면 ‘성공’이라 말할 수 있지만 한국사람인지라 제 설교는 너무나 진지합니다”라며 언어적인 고통이 있음을 표현했다.

그에게 닥쳐진 가장 큰 시련은 ‘건강’이었다.

1988년 국내에서 한참 88올림픽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환호하던 시기에 그는 과로로 쓰러졌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보니 나온 병명은 ‘중풍’. 무서운 병 답게 반신의 신경이 돌아가지 않고 혀도 꼬이기 시작했다. 무더운 나날들 속에서 그는 에어컨 앞에 코를 들여대고 숨을 쉴 수 밖에 없었으며 밤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수면제를 복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건강으로 인한 가족들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오직 ‘하나님’ 존재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제2의 또다른 인생 시작!

반신의 마비상태가 왔지만 김원배 목사는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라는 믿음을 갖고 자신의 몸관리를 시작했다.

지금도 매일 밤마다 2시간씩 걷기 운동과 줄넘기를 빠짐없이 하고 있다는 김 목사. 그는 배움을 통해서도 자기 발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신학교 석사과정에 등록, 부지런히 공부도 한다.

그의 몸이 완치되기까지에는 1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걸렸으나 23년간 선교사로써의 삶은 보람됐으며 지금도 제2의 또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나 같은 사람이 주님의 부름을 받아 필리핀 선교를 계속함은 하나님의 은혜요, 다음으로는 한국교회의 지원이요, 마지막으로 현지 동역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고마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김원배 목사는 여전히 필리핀 선교에 꿈을 가지며 앞으로 200개의 교회 개척과 10년간의 모금을 통해 쿠바오성서침례교회의 토지를 구입해 건축하고자 한다. 그는 마닐라에 땅값이 오르면서 토지를 구입하기 어렵다며 본지를 통해 크리스천 교민들의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다.

 

김 목사가 말하는 필리핀 선교

김원배 목사는 80년대 초기 한국 선교사들은 10명 내외였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가난한 필리핀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선교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나 필리핀 교회가 너무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데다가 대부분의 한인 선교사들 또한 생활에 급급했다. 제대로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선교사들도 많았으며 적극적인 전도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선교사들의 숫자는 늘어갔고 필리핀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교회개척과 신학교육, 의료선교, 장학금 지급, 구제 및 특수 선교 등으로 현재 필리핀 개신교회의 수가 5만이 넘어섰으며 여기에는 한국 선교사들의 기도와 땀, 그리고 후원금이 들어가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김원배 목사는 필리핀 선교에 아직까지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선교 전략’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인들은 필리핀에서의 선교도 한국방식으로 하지요. 일단 규모를 크게 정하고 건축부터 합니다. 그러나 필리핀 사람들은 건물보다 사람을 중요로 생각하지요. 나무 그늘 밑에서 성경공부를 해도 그런 모임을 중요시 여긴 답니다. 이는 ‘문화의 차이’이고 ‘생각의 차이’입니다”

그는 또 한국 선교사들의 단합이 어렵고 선·후배 사이에 친밀한 교제가 필요하다며 개인적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원배 목사가 예상하는 현재 필리핀 한국 선교사들의 숫자는 약 500여명.

그는 선배로써 후배 선교사들에게 “우선 복음을 전하는데 말이 통해야 하니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배 목사들이 이룩한 업적을 귀하게 여기고 팀 사역을 권장하고 싶습니다. 또한 선교와 신학과 문화를 연구하는 학도가 됐으면 합니다”고 조언한다.

 

 

장혜진 기자 wkdgpwls@manil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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