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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60주년 참전용사 초청 강연 개최

등록일 2010년07월08일 10시53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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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10-07-08
 


 

 

민주평통 필리핀 지회 주최, 학부모·유학생 등 270여명 참석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지난 6월25일(금) 포트 보니파시오 소재 필리핀한국학교에서는 필리핀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추모하고 감사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필리핀 지회 주최로 열린 6.25참전60주년 참전용사 초청 강연회는 참전용사 및 참전용사 가족들과 교민 학부모, 유학생 등 2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구국대표기도, 6.25영상물 방영, 각 인사들의 기념사, 참전용사 체험담 강연 등의 순으로 진행했다.

 

민주평통 서병현 동남아협의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우리 젊은이들과 함께 60년 전 우리를 도와줬던 참전우방국을 생각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하는 의미있는 행사”라며 “유대인들이 딱딱한 빵을 씹어먹으며 민주주의를 되새기듯 우리도 자손 대대로 쓴 교훈을 가르쳐 다시는 전쟁의 아픔을 겪지 않도록 조국통일에 지혜를 갖고 나아가자”고 역설했다.

 

김용호 대리대사는 기념사에서 “60년 전 민주주의의 자유를 위한 7460여명의 필리핀참전용사들의 용기와 숭고한 희생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며 “당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다”고 참석한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에게 사의를 표했다.

 

이에 마우로 라치카 PEFTOK(필리핀한국전참전용사회)회장은 “황무지였던 한국이 지금은 놀라울 정도로 기적의 역사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은퇴해 고령의 나이를 맞이한 우리들을 아직까지 잊지 않고 지원해주고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고는 “감사하고 사랑한다”며 한국에 대한 애틋한 애정을 보였다.

 

한편 류덕호 무관의 짧은 강연에 이어 행사는 기념메달 및 감사패 증정 등으로 성황리에 마쳤다.

한국전 당시 필리핀은 7420여명의 참전용사를 파견했고 그들 중 116명이 전사하고 299명이 부상당했다. 60년이 지난 현재 생존한 한국전참전용사는 약 2710명으로 추산되며 그 중 30여명이 PEFTOK(필리핀한국전참전용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장혜진 기자 wkdgpwls@manilaseoul.com/ 사진제공 뉴스게이트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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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참전 노병의 눈으로 바라본 6.26

살아남은 자의 증언’- 막시모 영 제10대대 전투단 단장

6.25 한국전이 60주년을 맞이했다. 전쟁의 잔혹함과 노병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통해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지난 6월25일(금) 6.25참전60주년 참전용사 초청 강연회에서 막시모 영(Maximo P Young) 제10대대 전투단 단장은 그가 겪은 전쟁 이야기를 짤막이 들려주었다.

 

“1950년 한국전 파병 당시 나는 많은 한국 어린이들이 머리에 짐을 이고 두려운 눈으로 숨을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대대는 전쟁터에서 가까운 지역을 찾아다녔는데 마을 여기저기에는 온통 불이 타들어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었죠”

 

그는 한국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뮤동(신계) 전투를 소개했다.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1950년 11월11일 오전 7시 50마일 전방에 중공군이 산지대에 깔려있다는 전보를 듣고서도 우리 부대는 ‘신계’라는 지역으로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5개의 탱크가 좁고 좁은 길을 지나야 했죠. 제가 탄 탱크는 5개 중 세번째에 있었습니다”

 

당시 의무대와 보급부대가 제10대 전투단의 뒤를 따라다니며 전투단을 지원 중이었다. 그러나 길을 가는 도중에 지뢰에 의해 한 6X6군트럭이 하늘로 쏟아 올랐다가 떨어지며 폭발했다. 다행이 사상자는 없었으나 이로 인한 긴장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됐다.

 

우리 부대는 폭발사고가 있은 지 5Km 전방 내에 또다른 지뢰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죠. 그래서 수색병을 미리 보내 폭발사고를 예방하고자 했죠. 그때였어요!”

 

지뢰를 찾기 위해 수색병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측에서부터 총성이 들리기 시작한 것. 전투할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총성이 들리자 무서운 나머지 모두들 숲으로 숨기 시작했다. 그러자 총성은 점점 커져갔고 이는 약 15분 가량 지속됐다고 한다.

 

나는 탱크 속에 있었는데 아무도 먼저 나서 싸울 생각을 안하는 거예요.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었죠.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이왕 죽을 바에 용감히 싸우다 죽자’였어요”

 

그는 탱크에서 나와 탱크 위에 장착된 기관총을 앞, 좌우로 쏘기 시작했다. 우측에서 총성이 들린 것은 사실이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어디서 들리는지 감각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는 적군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쪽을 향해 계속해서 기관총을 쏘기 시작했고 그의 군인들도 용기를 되찾고 나와 총격전을 벌렸다.

 

“총격전이 1시간 반가량 지날 때였어요. 적군들이 후퇴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의 전투 결과는 이러하다. ‘아군 1명 전사, 적군 42명 사망, 적군 부상자 100여명.’ 그의 용맹스러움에 의한 승리의 전투였다.

 

60년이 지난 막시모 영 단장은 비록 늙고 쇠잔해졌지만 그의 자부심만큼은 젊은이 못지 않는다. 당시를 회상하는 그의 눈은 반짝였다. 그리고 이름조차 생소한 머나먼 나라, 한국을 위해 싸웠던 희생이 지금의 발전된 한국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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