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 [신화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충돌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국제사회가 중동 확전을 막기 위해 지난주 유엔 총회 무대에서 벌인 숨 가쁜 외교전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모양새다.
특히 미국과 프랑스가 만들어 제시한 '3주 휴전안'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퇴짜'를 놓으면서 휴전을 낙관했던 미국은 체면을 크게 구겼다.
이스라엘이 휴전안을 수락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미 당국자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자국 내 극우 여론을 의식해 자신들의 뒤통수를 쳤다고 생각해 분노하며 이스라엘 측에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충돌이 격화하면서 중동 위기가 고조된 지난 24일(현지시간) 개막한 유엔총회는 확전을 막기 위해 급박하게 돌아가는 외교의 장이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론 더머 이스라엘 전략부 장관을 비롯해 유럽과 아랍 등 각국의 외무 장관을 만나 확전을 막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으며, 백악관 중동 담당 특사들도 나서서 이스라엘과 레바논 당국자들을 만나며 분주히 움직였다.
이러한 노력은 25일 미국과 프랑스가 양측이 3주간 휴전하는 것을 골자로 한 휴전안을 발표하면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내는 듯 보였다.
AP 통신은 해당 휴전안이 미국과 프랑스 측의 사흘에 걸친 강도 높은 토의 끝에 마련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튿날 곧바로 헤즈볼라와 휴전 가능성을 일축하며 국제사회의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네타냐후 총리실은 "미국과 프랑스의 휴전 제안에 아직 응답하지 않았다"면서 전력을 다해 헤즈볼라를 공격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네타냐후 총리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전쟁 목표로 내세운 이스라엘 북부 피란민의 귀환을 달성할 때까지 "온 힘을 다해" 헤즈볼라를 공격할 것이라면서 전쟁 강행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날 네타냐후 총리의 유엔 총회 연설과 거의 동시에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 지역에 헤즈볼라 본부를 노린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이번 공격 이후 이스라엘군은 28일(현지시간)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이 공습으로 헤즈볼라 남부전선 사령관 알리 카르키 등 일부 지휘부도 사망했다고 이스라엘군은 덧붙였다. 익명의 헤즈볼라 소식통은 AFP통신에 전날 저녁부터 나스랄라와 연락이 끊겼다고 전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전날 공습으로 6명이 숨지고 91명이 다쳤다고 밝힌 바 있다. 나스랄라는 1992년부터 32년 간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이끌어 왔다.
유엔 무대에서 쏟아진 확전 자제의 목소리가 무색하게 중동 상황이 줄곧 악화일로를 걷자 현재 상황에 대한 미국 영향력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휴전안 논의에 대해 잘 아는 복수의 익명 소식통들은 AP에 프랑스가 갑작스럽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한 뒤 이 회의에서 휴전안에 대해 밝혀 미국 측이 당황했으며, 이로 인해 미국도 일부 당국자들이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생각한 상태에서 휴전안을 공개하도록 내몰렸다고 전했다.
당시 대외적으로 미국 당국자들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휴전안을 수락할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드러냈는데, 일부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들은 이에 반대하며 주의를 촉구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미 당국자들이 휴전을 낙관한 배경에는 네타냐후 총리의 측근 중 하나인 더머 이스라엘 전략부 장관의 확신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