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잘파크내 '필-한 우정의 탑 안내석과 조형물',과 '추모와 평화 기원의 탑'이
위치한 곳이 국립박물관의 무리한 공사로 인해 훼손되어 몇 달째 방치 상태다.
한국 민관 공들여 설치한 조형물…국립박물관 공사에 아무렇게나 방치...관리 주체 없어 무관심 일관
中·日 정원 있는데, 韓정원은 없다...조형물 한데 모아 국격 높이는 홍보전략 필요
외국 주요 인사들이 필리핀을 공식 방문할 때 첫 일정은 리잘파크(Rizal Park) 헌화로 시작된다. 리잘파크가 우리나라의 국립서울현충원과 같은 상징성을 지닌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엄숙한 분위기만 있는 장소도 아니다. 필리핀을 대표하는 랜드 마크이자 마닐라 시티투어의 단골 장소이기도 하며 많은 시민들이 휴일에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대규모 인원이 참여하는 국가적 행사에 단골로 사용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리잘파크만큼 많은 사연과 의미를 품고 있는 장소도 없을 것이다.
2023년 6월 현재 리잘파크는 국립박물관 재건축 계획에 따라 공사가 한창이다. 리잘파크에는 한-필 양국 역사와 민관 예산이 들어간 조형물도 다수 있다. 문제는 박물관 확장 계획에 따라 이 조형물들이 현재 설치된 장소에서 이전을 위해 철거될 위기에 처해있고 이를 조율해야 할 한국측 민관 주체가 불명확한 가운데 조형물 유실이나 파손 우려가 제기되고 의도했던 위치에서 벗어난 장소에 설치될 수 있다.
리잘파크는 약 58헥타르(약 17만 5450평)크기로, 크게 동쪽 구역(Eastern Section), 중앙 구역(Central Section), 서쪽 구역(Western Section)으로 3개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현재 공사가 한창인 구역은 필리핀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과 국립 인류학 박물관(National Museum of Anthropology)이 속해 있는 동쪽 구역이다. 이 구역에는 자유의 투사 일명 라푸라푸 동상 (Statue of the Sentinel of Freedom : 한국 자유총연맹에서 약 1500만 페소 예산 지원한 거대 동상), 필리핀-한국 우정의 탑(Filipino-Korean Soldier Monument)안내석과 한국전에 참전한 필리핀군과 한국군의 우정을 기리는 조형물 추모와 평화 기원의 탑(Soul waves)과 안내석,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필리핀에 강제 동원되어 희생된 한국인의 넋을 기리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밖에도 리잘파크 중앙 구역에는 '현대 그룹'에서 예산을 지원한 꽃시계(World-Class Filipinos Bloom), 춤추는 고리 (Dancing Rings), 새로운 필리핀 (Ang Bagong Pinoy Sculpture)조형물이 있다. 이 밖에도 리잘 공원과 인접한 산티아고 요새 (Fort Santiago)에는 호세 리잘의 '마지막 인사' 한글 번역 원판이 있으며, 마닐라호텔 건너편에는 1998년 필리핀 독립 100주년과 한필수교 50주년을 맞아 제작된 기념 조형물로 '한-필 우호의 나무(Gift of tree)'라는 프로젝트 명 아래 무궁화 식수(植樹)와 식수대를 조성한 바 있다.
이중 '필-한 우정의 탑 안내석과 조형물', '추모와 평화 기원의 탑 안내석과 조형물'은 2010년 한비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우리 정부와 민관이 함께 기획하고, 예산을 들여 설치한 조형물이다. 이 안내석에는 조형물 설치에 기여한 이혜민 23대 대사(2010-2012), 일제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지원위원회 위원장 오병주, 한필수교 60주년 기념위원회 공동위원장 박현모(현 한인총연합회 고문, 12대 회장)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지난 5월 기준으로 동쪽 구역의
'필-한 우정의 탑 안내석과 조형물', '추모와 평화 기원의 탑 안내석과 조형물'은 공사를 위해 이미 뿌리 뽑혀진 상태이다. 이 구역의 가장 큰 조형물인 '릴리프 맵 오브 더 필리핀 아일랜드 (Relief map of the philippine Islands)'역시 이미 파손되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상태이다.
박현모 고문은 지난 3월 무더운 날씨 속에 필리핀 한인총연합회 심재신 회장, 마닐라 서울과 함께 공동으로 실태조사에 나서 처참할 정도로 관리가 부실한 조형물 관리 실태를 파악하고, 한필 양국 간의 우호증진과 국격을 드높이는 차원에서 민관이 관심을 가지고 조형물을 관리해 줄 것을 당부한 바 있다.
◆ 국립 박물관측 NCCA와 아무런 협의 없이 공사 진행...필리핀 내에서도 반발
마닐라 블레틴은 리잘파크 동쪽 구역에서 가장 큰 조형물인 '릴리프 맵 오브 더 필리핀 아일랜드 (Relief map of the philippine Islands)'이 아무런 협의 절차 없이 철거되었다고 보도했다. 필리핀 영토를 부조로 표현한 이 기념물은 유명 조각가 Jose Mendoza가 아버지 마르코스 대통령 시절의 첫 임기(1965-1967년)중 9개월간의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이다.
산토 토마스에서 미술을 전공한 Mendoza는 국립 예술가이자 필리핀 현대조각의 아버지인 Napoleon Abueva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릴리프 맵을 비롯해 많은 조각 작품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Makati Avenue에 있는 Gabriela Silang과 Sultan Kudarat, Paseo de Roxas에 있는 Pio del Pilar, Ayala Triangle에 있는 Bataan Monument가 있다. 이 밖에도 Davao에 있는 Centennial Monument of Peace and Unity', Leyte의 The Risen Christ, 리잘파크 내 있는 'Tamaraw','Carabao' 동상도 그의 작품이다.
2009년 제정된 '국가문화유산의 보호 및 보전을 위한 법률 (공화국법 RA 10066)'을 정부기관 스스로 무시하는 경우 법안은 그저 한낱 종잇조각에 불가하다. 이 법은 50년 이상 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축 구조물을 임의의 개조 또는 철거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국립박물관 측은 국가문화예술위원회 (National Commission for Culture and the Arts, NCCA)가 리잘파크 기념물에 대한 보전 결정 혹은 해제 결정을 내릴 때까지 절차를 따르고 기다려야 했으나 그렇질 못했다.
말라까냥 박물관장을 맡고 있던 Jeremy Barnes는 2007년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Gloria Macapagal Arroyo)대통령 재임 중 임명되어 지금껏 국립박물관 관장을 역임하고 있다. 현재 마르코스 정부의 국립박물관장 재신임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2019년 공화국법 11333은 관광부 산하 기관인 국립공원개발위원회(National Parks Development Committee)에서 태프트 애비뉴를 따라 있는 리살 공원의 동쪽 끝(릴리프 맵이 있는 곳)에 대한 단독 관할권을 국립박물관에 부여했다.
2022년 Jeremy Barnes 관장은 약 10억 페소 가량의 예산이 소요되는 국립박물관 확장 계획을 세웠다. 그가 세운 계획에는 릴리프 맵을 찾아 볼 수 없었고, 그가 왜 릴리프 맵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과 절차를 따르지 않았는지 의혹이 일고 있다.
만약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부득이 하게 철거를 해야 했다면, 이에 대해 NCCA에 보고서를 내는 절차를 따랐어야 했다. NCCA가 이 기념물에 대한 '역사적 가치 및 보존 해제' 결정을 내리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최소 50년 이상 된 구조물을 파괴하거나 개조'할 수 없다. 국립 박물관은 NCCA에 이러한 보존 해제 청원을 요청한 적도 없으며, NCCA 역시 릴리프 맵에 대한 보존 해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RA 11333은 박물관 단지에 대한 단독 관할권을 국립 박물관에 부여했을 수 있지만, 자산 처분을 결정할 권한은 부여하지 않았다. 따라서 적법한 절차 없이 단지 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기념물을 임의로 파괴할 수 없다.
◆ 조형물 기증했다고 끝 아니다…중장기적인 계획 가지고 지속적인 관리 필요
정리해보면, 조형물을 설치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양국 간 우호 증진과 의미를 되새기며, 후세에 이를 전한다는 다양한 목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증 설치된 조형물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1차적인 책임은 필리핀 정부 당국에 있다. 앞서 문제가 된 2개의 조형물은 우리 정부가 예산을 대고 설치를 한 조형물이다.
다만 한번 기증 설치했다고 끝이 아닌 지속적인 관리 책임과 체계적인 국가 홍보전략 수립 차원에서 2차 책임은 우리에게도 있다.
한인총연합회 측은 올 초부터 대사관과 함께 확장 공사를 추진하고 있는 국립 박물관, 리잘파크를 관리하는 국립공원개발위원회와 접촉하고 있으나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이어 한정된 사무국 인력과 민간단체라는 한계 탓에 필리핀 정부기관 과의 협의에 난항을 겪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결국 대사관과 문화원이 한인회와 힘을 합쳐 필리핀 정부 기관들과 협의를 통해 이 문제를 조율해 줄 필요성이 있다.
리잘파크에는 중국정원, 일본정원이 존재한다. 한국 민관의 귀중한 예산과 수고를 들여 설치된 조형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거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세워진다면 의미는 반감할 수밖에 없다. 필리핀에 오래 산 이들조차 리잘파크 내 한국 민관이 설치한 조형물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
지금이라도 민관이 함께 힘을 모아 보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국가홍보 전략 차원의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재필리핀한인언론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