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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규 컬럼] 12. 고향 이야기

등록일 2007년02월22일 12시27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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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7-02-22
 

내가 태어난 곳은 물 맑고 공기 좋은 경기도 일산이란 곳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파트가 숲처럼 들어서버린 신도시로 변해 버렸습니다. 조상 대대로 정답게 살던 동네 사람들은 토지 보상금을 받고 뿔뿔이 흩어져 삶의 터전을 옮겨야했습니다. 몇 년 전에 한국에 갔을 때에 시간을 내어서 나와 동갑내기인 고종사촌이 살고 있는 일산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촌이 말하길 내가 태어난 집이 하필이면 전철역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사촌은 보상금으로 현대식 이층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내 눈엔 나지막한 산자락 밑에 자리 잡은 운치 있던 옛집만 못해 보였습니다. 
교육자이신 아버님의 근무지를 따라서 초등학교 1학년 무렵 우리 가족은 일산을 떠나 서울의 서대문 근처로 이사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대부분의 성장기를 서울에서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 후 결혼하여 삼십대 초반에 사우디아라비아로 나가서 지금까지 한국에 들어가지 않고 반평생을 해외에서 보내고 있으니 이제는 고향을 잃어버린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내가 스스로 고향을 버렸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천상병 시인은 “고향 이야기”라는 시에서 경남 창원군 진동면이 고향이고 , 대학 2학년까지 보낸 부산이 고향이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산 차바켄 타태야마시를 제 3의 고향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나가 그러하듯 나도 어린 시절 아련한 추억 속의 고향은 가끔씩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가 되어 내 기억 속에 떠오르곤 합니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서울에서 살아온 서울 토박이입니다. 그런데 우리 할아버님과 할머님이 혼인 하신 후에 여러 해가 흘러도 아기를 갖지 못하시자 가뜩이나 손이 귀한 집안이어서 어른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결국은 두 분을 물 좋고 공기 좋은 일산으로 내려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곳에 가셔서 우리 할머님은 남매를 낳으셨습니다. 위로 우리 고모님 한 분을 낳으신 후 아래로 외아들이신 우리 아버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아버님이 장성하신 후 어머님과 결혼하셔서 4남 3녀를 두신 것을 기뻐하신 우리 할머님은 큰 자랑으로 삼으셨다고 합니다.
해마다 연초에 아버님을 따라서 친척 분들에게 세배를 드리러 가면 어른들이 나를 “다방골집 아이”라고 부르시며 덕담을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선산에 성묘하러 가서 묘지기네 동갑나기 아들과 온 몸에 온통 따가운 잔디가 들러붙는 것도 아랑곳없이 해가 지도록 동산에서 뒹굴며 즐겁게 놀던 추억이 어제인 듯 합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서 옛날에 제일 높은 건물이었던 화신 백화점에도 가서 이것저것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 하였고 남산 방송국에도 가서 “누가누가 잘하나?”  생방송 퀴즈대회에도 여러 번 나가서 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청계천에도 갔었고 창경원에 밤 벚꽃 놀이도 갔었습니다. 더운 여름 친구들과 어울려서 한강에 가서 훌떡 옷을 벗어던지고 벌거벗은 채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어 수영도 하였습니다. 수영이 끝나면 아이스케키 하나씩을 사서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오곤 하던 추억이 그립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서울에 가도 옛날의 서울이 아닙니다. 점점 더 낯 설은 도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젊은 날 건설 회사에 입사해서 돈 벌러 간 곳이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30대 후반에,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내 사업을 시작한 곳도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사우디의 수도인 리야드(Riyadh)에서 지금껏 사업을 하고 있으니 그곳이 나에겐 제 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도 리야드 공항에 도착하면 가슴 속에 왠지 모를 푸근함과 안락함이 느껴집니다.
그곳에 가면 낯익은 거리와 건물들,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아직도 나를 반깁니다.
젊어서부터 인연을 맺고 함께 늙어가는 사우디 친구들도 많습니다.
일 때문에 오랜 세월 인연을 맺은 다국적 친구들도 여전히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엔 한 번 오면 오랫동안 머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다니는 지하교회가 있으며 내 회사와 내 직원들과 이웃들이 있기에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 듭니다. 여러 해 사귄 사람들만이 서로 간에 느낄 수 있는 애틋함이 묻어나는 살가운 정이 느껴집니다. 한 번 가면 길어야 십 일 정도 머물다 오는 곳이지만 돌아올 때는 서운함과 아쉬움이 가슴에 남습니다.

필리핀에 와서 정착하여 사업을 하고 있는지도 어언 7년이 되어갑니다.
앞으로 이곳이 나의 제 3의 고향이 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여러 가지로 정 붙이기가 쉽지 않은 곳이 이곳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나이 들면 환경에 쉽게 적응하기가 쉽지 않나 봅니다.

젊은 날에는 별로 소중하게 생각지도 않던 고향이 나이 들어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앉으니 자꾸만 가슴 속에서 되살아나서 잠 안 오는 밤이면 가슴을 아리게 만듭니다.
누구에게나 어머니처럼 두고두고 그리운 대상이 고향인 것 같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커다란 은총이요 축복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6.25 전쟁으로 말미암아 수십 년을 그리운 고향땅을 옆에 두고 돌아가지 못한 채 바라만 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동포들을 생각할 때에 참으로  연민의 정을 금할 길 없습니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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