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 이 발발하자 6월 27일 UN은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다인종적이고 다국적인 16개국으로 이 루어진 유엔군의 이름으로 전쟁에 필요한 군 대, 물자, 장비 등의 공급하기로 합의한 결의안 이 통과되었고, 대한민국은 UN군의 지원으로 자유를 위해 투쟁할 수 있었다. 또한 UN군의 지원이 현재 대한민국의 토대가 되었다. UN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에 참가한 필리핀 은 미국, 영국에 이어 3번째로 1950년 9월 10 일 제 10전투대대 1,300여명을 파병하였으 며, 9월 15일 오전 8시 마닐라항의 미군기지 를 출발한 55명의 장교, 1,150명의 사병, 176 명의 보충병이 해군 수송선 실베스타 안토락 호를 타고 19일 부산에 도착하였다. 당시 필리핀군의 파병 결정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한국전쟁 초기에 필리핀 내 에서 한국전 참전을 놓고 찬반세력이 형성되 었으나, 한국사태에 대한 점진적인 인식 변 화와 함께 유엔안보리 결의안 통과, 그리고 당시 UN총회 의장이었던 로물로(Carlos P. Romulo)가 필리핀 외무장관이라는 배경 속 에서 필리핀은 한국전 파병을 결정했다. 9월 29일에는 영국, 호주 등 8개국이 38선 돌파결의안을 유엔에 상정했다. 필리핀대표 로물로(C.P Romulo)는 제안설명에서 유엔군 의 38선 돌파권한은 이미 6월27일의 안보리 결의(1511호)로 인정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결의안은 “북한의 무력공격을 격퇴하고 이 지 역에서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기 위해 필 요한 지원을 한국에 제공할 것을 유엔회원국 에게 촉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그 중 ‘이 지역에서 국제평화와 안전의 회복’이라 는 구절이 유엔군이 38선 이북으로 작전확대 를 가능케 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었다. 한국전쟁에 UN 군의 파병을 의결하였고, 38선 돌파결의안을 상정하였으며, 필리핀 외 교부장관시절에는 필리핀과 북한과의 외교관 계를 거부하는 등 한국을 위해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이다. 1961년 12월 최덕신 외무장관 초청으로 한 국을 방문한 로물로씨는 박정희 의장으로부 터 5.16기념패를 선물 받았으며, 중앙대학교 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필리핀 군인, 외교관, 저널리스트로 한 시대 를 풍미한 로물로는 1985, 12월 15일 8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현재 로물로의 손녀 가 퀘죤과 마카티에 ROMULO CAFÉ를 운영 하며, Café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로물로의 일생을 보여주고 있다. Café의 메뉴 판에서부터 로물로의 사진으 로 Café의 이름을 설명하며, 음식은 로물로씨 가 관저에서 외교관들에게 대접했던 필리핀 의 음식으로 차려진다. Café의 전체적인 인테 리어는 로물로의 많은 사진들이 흑 백인관계 로 블랙화이트로 디자인되었으며, 아쉬움 점 이 있다면, 한국과 많은 인연이 있었는데 벽 에 한국관 관련된 사진이 한 장 없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ROMULO CAFÉ는 퀘죤 시와 마카티시 두 곳에서 영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