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후원하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네이버톡톡
맨위로


 

독립유공자 후손, 박제인 노인회장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한 평북 박천 출신의 박병강(朴炳彊) 선생

등록일 2019년03월09일 00시0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기사글축소 기사글확대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박병강 선생은 평북 박천 출신이다. 1906년 유인석(柳麟錫) 의병장의 문하생으 로 유인석이 군사를 규합하였을 때 이에 가담 하였으며, 유인석이 재차 요동(遼東)에 들어갈 때 그를 수행하여 노령(露領) 해삼위(海蔘威) 로 가서 활동하였다. 유인석이 1915년 동삼성(東三省) 지역에서 순국하자 그후 1921년 중국(中國) 상해(上海) 로 가서 중국인 부호 임척풍(林拓豊)의 후원 을 얻어 박은식(朴殷植) 등과 함께 일간신문 인 〈사민일보(四民日報)〉의 편집인으로서 독 립정신 고취 및 일제의 잔학상을 폭로하는데 주력하였다. 1930년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귀국할 때 안중근(安重根)의 이등박문(伊藤博文) 처 단과 관련된 혐의로 신의주(新義州)에서 피체 되었으나 일본영사관에서 중국 내의 각 영사 관에 조회한 결과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 어 1930년 11월 27일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에 건국훈장 애국장(1987년 건국포장)을 추 서하였다. -emo["\udb82\udc54"]ji-신보-emo["\udb82\udc55"]ji- 1923년 3월 31일에는 다음과 같 은 기사가 실렸다. “한국인 박병강은 오른쪽의 손가락을 자르 며 ‘피로 求生을 대신해 求死를 하고 밥을 먹 듯이 칼을 맞겠다’ 등과 같은 글을 쓰고 밑에 唯血獨立軍이라고 서명하였다. 이 편지를 가 지고 중앙 黨部에 가서 일제 통치의 고통을 진술하며 北伐軍을 따라 전선에 가서 선전활 동을 하겠다는 요청을 했다” 손자 박제인 회장은 부모님께서 해방과 동 시에 평북 박천을 떠나 남쪽으로 이주하시어, 할아버지에 대한 유품이 많지는 않지만, 해방 을 6개월 앞두고 1945년 2월에 세상을 떠나 셨다는 이야기를 부모님을 통해 전해 들었다 면서, 할아버지가 대한민국의 광복을 6개월 앞두고 돌아가신것에 대해서는 너무 안타깝 다고 말했다. 박제인 회장은 할아버지가 태어나신 지 올 해로 140년을 맞아 중국 박물관에 있는 할아 버지의 휘호도 보고,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을 발굴해 주신 중국 복건성을 방문해 관계자들 을 찾아 뵐 계획을 설명하면서 3.1운동 100주 년을 맞아 앞으로 100년에 더 위대한 미래를 염원하며 “대한사람 대한으로, 대한독립만세, 대한민국 만만세…”라고 크게 외쳤다.

양한준(편집인)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한인뉴스 필리핀뉴스 한국뉴스 세계뉴스 칼럼

포토뉴스 더보기

기부뉴스 더보기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