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대통령은 9월3일 야마시타 항복 을 기념하기 위한 법안에 서명했다 싱가포르 공략에 있어서 큰 공을 세운 야 마시타였지만, 도조 히데키의 반감에 의해 만주로 좌천돼 큰 작전을 맞진 못했다. 그러 나, 패색이 짙었던 1944년, 제14방면군 일본 육군 사령관으로 기용돼 일본제국 육군이 점령하고 있던 필리핀에 대한 방위전을 지 휘하게 되었다. 그러나, 레이테 섬과 루손 섬 에서의 연이은 패전으로 인해 1945년 9월2 일 필리핀의 키안간 협곡에서 항복했다. 항복할 당시에는 포로로 취급 받았지만, 곧 전범으로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군사 재 판을 받았으며, 야마시타는 숙칭 대학살과 마닐라 대학살 등의 책임을 물어 사형을 언 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