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 누메론(44) 부부는 가로 2.4m, 세로 3.6 m로 성인 2명이 누우면 꽉 차는 쪽방에서 형 제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정부의 주택 공급을 기다리고 있지만 언제 가능할지 알 수가 없다. 필리핀 사상 최악의 태풍인 '하이옌'이 상륙 한 지 2년을 맞은 8일 여전히 수만 명의 이재민 이 쪽방과 같은 임시 거주시설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순간 최대 풍속이 315㎞에 달한 하이옌이 필리핀 중부 레이테주 타클로반을 강타해 7천 350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이재민은 410만 명에 달했다. 약 120만 채의 주택과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이 폐허로 변했다. 필리핀 정부는 국제사회의 도움 속에 1천 500억 페소(3조6천510억 원)를 투입하는 피해 복구 계획을 마련했지만, 지금까지 집행된 자금 은 약 63%에 머물고 있다. 총 20만 채의 신규 주택 수요 가운데 1단계 로 9만2천554채를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재민에게 공급된 주택은 현재 929채에 그칠 정도로 영구 주거시설 건설이 지지부진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적절한 주택 부지 확보의 어려움, 복잡한 행정 절차,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책임 소재 공방, 관료주의 등이 더딘 피해 복 구의 요인으로 꼽힌다. 아르세니오 발리사칸 국가경제개발청 (NEDA) 장관은 "우리가 계획한 전체 사업 가운 데 약 51%가 완료됐다"며 "복구작업이 현재 중 간 단계로, 2017년까지 재건 작업이 계속될 것" 이라고 말했다. 많은 이재민이 일반 주택에 입 주하려면 1∼2년을 더 기다리며 열악한 시설의 임시 거처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7일 오후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는 정부의 느린 피해 복구 작업을 비판하는 촛불 집회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재민들은 구호기금 지급을 둘러싼 비리 의 혹도 제기하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하이옌 피해 생존자 모임의 머리사 카발자오 사무국장은 온라인매체 인콰이어러넷에 "일부 마을 관리들이 태풍 피해자에게 구호비 일부를 달라고 요구하고 마을 대표 편에 서지 않은 사 람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피해 복구 작업이 느리게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각종 잡음도 나오고 있지만 희생 자들에 대한 애도 물결은 이어졌다. 타클로반 시는 8일 하이옌 희생자 추모공원 을 개장했다. 타클로반 컨벤션센터 단지 내 225 ㎡의 부지에 500만 페소(1억2천만 원)를 들여 만들었다. 하이옌으로 숨진 2천300명의 이름을 새긴 시설물이 공원 주위를 따라 설치됐다. 추모공원 중앙에는 숫자 '8' 모양의 높이 7m 짜리 철제 조형물이 들어섰다. 하이옌 상륙 일 을 뜻하는 것으로, 지구가 사람들의 유일한 거 처로 자연 재해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 를 담았다. 이날 저녁에는 현지 가톨릭계의 주도와 시민 의 참여 속에 길이 22㎞에 이르는 하이옌 피해 지역을 따라 5만 개의 촛불을 켜 희생자를 애 도하는 행사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