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흔을 넘긴 윤영희(71) 할머니에게는 가슴으로 낳은 필리핀 '손녀'가 있다. 윤 할머니가 지금까지 이 소녀와 주고받은 손 편지만 무려 80여통. 그 사이 10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낯선 외국인의 후원이 그저 좋기만 했 던 이 소녀는 할머니와 고민을 나눌 만큼 성숙 한 사춘기 소녀로 훌쩍 자라났다. 21일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에 따르면 윤 할머니는 지인의 소개로 2004년 7월부터 컴 패션을 통해 매달 필리핀 소녀 클레어(15)에게 양육비를 후원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해외 아동을 후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후원 아동을 직접 만나기 어려 운 탓에 '후원금 자동이체' 이상의 관계를 맺는 경우는 드물다. 윤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빈 곤은 물론 홍수 등 자연재해 위협에 시달리면 서도 선생님이 되는 꿈을 꾸며 항상 희망을 잃 지 않는 클레어에게 '후원금 몇만원' 이상의 힘 이 되고 싶었다. 진심을 담은 손 편지는 그 마음 하나로 시작됐다. 오가는 편지는 연계 기관을 통해 한국어→영어→현지어, 그리고 그 역순으 로 번역을 거쳐 전달된다. 윤 할머니는 "누군가 나를 생각해주고 있다 는 걸 알면 어려움을 이기는 힘이 생기는 법"이 라며 "아이에게 힘이 돼주고 싶은 마음에 편지 를 쓰기 시작했는데 벌써 10년째"라고 웃었다. 후원에 대한 고마움과 인사만 담겼던 편지는 언 젠가부터 주변 지인들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 했던 고민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갑작스럽게 요관암 진단을 받은 윤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한 치 앞을 모르고 사는 하루살이 인생길"로 표현하며 착잡한 심 정을 담아 편지를 보냈다. 클레어는 "몸이 편찮 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슬펐다"며 할머니 를 위로했다. 클레어는 이어 "몇 달 전 아버지 께서 심장마비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셨다. 가 끔은 고난에도 부딪히지만, 그것이 우리를 강하 게 만든다고 생각한다"라며 또래답지 않은 조 언으로 할머니를 뿌듯하게 했다. 2007년 6월 클레어는 윤 할머니에게 화재로 집이 완전히 불 타는 사고를 당해 임시텐트에 서 생활하게 된 소식을 전했고 윤 할머니는 서 둘러 클레어에게 안부를 묻는 답장을 띄었다. 지난해에는 학교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클 레어의 편지에 윤 할머니는 "이 기회를 통해 내 가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신을 돌아볼 줄 알길 바란다"며 따끔한 충고를 하기도 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이었지만 그들은 편지에 속 깊은 고민을 담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할머니와 손녀는 이렇게 세대를 초월한 친구로 마 음을 열고 힘이 돼줬다. "할머니와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저는 정말로 좋아요. 편지를 읽으면서 할머니가 저를 얼마나 사 랑해 주시는 지 느낄 수 있거든요.(클레어)" "클레어! 나는 행복해. 너와 이렇게 교제를 하 며 같은 마음으로 함께 기도할 수 있어서 고맙 단다.(윤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