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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서거

등록일 2009년08월07일 10시43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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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9-08-07
 

필리핀 피플 파워의 상징인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이 76세를 일기로 1일 오전 3시 18분에 서거했다고 전 대통령의 아들 베니그노 아키노(Benigno Aquino III) 상원의원이 밝혔다. 공식 사인은 심호흡정지다.

 

아키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에 대장암 진단을 받은 후 항암치료를 받아왔다. 지난 5월에는 대장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으며 6월에는 식욕 부진으로 마카티 메디컬 센터(Makati Medical Center)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왔으나 최근 암이 간까지 전이되며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아키노 상원의원은 “어머니는 여러분의 지속적인 사랑과 지원에 감사했다. 그녀의 소원은 우리 모두가 우리나라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1933년 필리핀 명문 정치가문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아키노는 미국 뉴욕의 마운트 세인트 빈센트 대학에서 수학과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이후 그녀는 전도유망한 정치인인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Benigno “Ninoy" Aquino Jr.)를 남편으로 맞아 평범한 주부로 살아간다. 하지만 1983년 망명에서 돌아온 남편이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당하자 반정부 지도자로 변신, 1986년에 민중봉기를 이끌며 20년간의 페르디난도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독재정권을 종식시키고 대통령직에 올라 민주주의의 상징이 됐으며 그녀의 승리는 세계 민주화 운동의 물결을 고무했다. 타임지는 아키노 전 대통령을 1986년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했다.

 

동요하는 대통령
아키노는 대통령직에 오른 후 민족화해정책을 채택해 필리핀 공산당 최고 지도자 일부를 포함한 500명 이상의 정치범을 석방했다.

 

그녀는 새로운 헌장을 안출한 위원회를 통해 새로운 헌법 작성을 감독했다. 1987년 헌법은 계엄령 시대의 1973년 헌법을 대체했고 마르코스 통치기간에는 없었던 자유 선거와 상하 양원제 의회, 독립적인 대법원과 같은 민주적 기관을 복원했다. 마르코스 독재정권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개정된 헌법에는 대통령의 임기를 6년 단임제로 제한했다.

 

아키노의 취임과 함께 경제가 불황에서 회복되기 시작했으며 국내 총생산이 점차적으로 증가해 2년 후에는 6.7%에 도달했다. 그러나 수차례에 걸친 군부의 쿠데타 시도와 임기 초에 있었던 10~12시간의 정전과 함께 1991년 미국 경제의 위축으로 필리핀 경제는 불구가 됐다.


비평가들은 그녀가 마르코스 축출 당시 함께 했던 많은 지지자들이 희망했던 국가의 대규모 외채는 청산하길 거부해 사회, 경제 개혁 약속에 미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아키노 전 대통령은 노동집약적 사업을 추진하고 국가의 실업 및 빈곤 감소를 위한 목표를 세우는 일을 시작했음을 지적했다.

 

첫 3년간 아키노 정부는 마르코스를 추종하는 군인들이 시도한 몇차례에 걸친 폭력적인 쿠데타로 동요했으나 그녀는 모든 위험에서 살아남아 1992년까지 대통령으로써의 임기를 다했다. 당시 그녀는 피플 파워 혁명의 핵심 인물인 피델 라모스(Fidel Ramos)를 위해 선거운동 했고 그는 아키노의 지지로 큰 힘을 얻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피플 파워 혁명 20주년 기념 기사에서 아키노 전 대통령은 “나는 그들이 나의 임기를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지만, 독재 이후에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그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또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것 자체도 확실한 어려움이 있었으며 마르코스 독재 정권 기간 동안 매우 강력해진 군과의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고 밝혔다.

 

영향력 있는 인물

퇴임 후 아키노 전 대통령은 은퇴하여 개인 생활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녀의 상징적인 위상을 필요로 하는 정치적 이유로 그녀는 필리핀 정치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아있었다.


2001 년 1 월, 그녀는 횡령 혐의로 고소된 조셉 에스트라다(Joseph Estrada) 전 대통령을 축출시킨 두 번째 EDSA 혁명에 참여하며 당시 부통령이었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를 대통령직에 올려놨으며, 2005년에는 아로요 대통령이 대선에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자 아로요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각료들을 적극 지지했다.

 

그녀는 최근 몇 년 동안 사회, 정치적 이유로 활발히 활동하며 2006년에는 해군본부에서 일시 해고 당한 아리엘 케루빈(Ariel Querubin) 해군대령을 지지했고 지난해에는 NBN-ZTE 내부 고발자인 존 로자다(Jun Lozada)를 공적으로 지원했다. [GMA 8/1]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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