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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스의 맛있는 이야기]맛있는 분식(김밥 천국 편)

등록일 2009년12월03일 11시23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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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9-12-03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학교와 집 사이에 분식점이라는 추억의 동선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바깥에 둔 만두 찌는 솥의 뚜껑을 열면 알라딘의 요술 램프 같은 연기가 확 피어 오르며 점점 뚜렷해 지는 만두의 포스는 지나 가는 동심을 울렸다.

“분식 일체”. 모든 분식에 관계된 메뉴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작은 주방에서 주인 아줌마의 손에 의해 뚝딱하고 차려졌다. 학교 앞 분식점에서는 돈 대신 회수권도 받아 주었는데, 라면이 너무 너무 먹고 싶은 날은 회수권으로 라면을 사 먹고 집까지 한 시간 가량을 걸어 가기도 했다. 당시 먹거리가 부족했던 우리들에게 분식점은 특별한 맛을 즐길 수 있는 미각의 공간뿐만 아니라 맛을 서로 나누며 친구들과의 우정을 키워 나가는 공간이기도 하였다. 또한 입시의 중압감과 내신 성적에 대한 친구들과의 경쟁의 굴레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상하게도 빵집은 여학생과 미팅을 하는 장소였고 분식집은 친한 친구들과 가는 장소로 구분되었다.

 

빵집에선 따끈하게 병우유를 주문하고 곰보빵(소브레빵)의 툭 튀어 나온 곰보딱지를 얌전하게 손가락으로 뜯어 먹었고, 분식점에서는 격 없이 소리를 내며 면발과 국물을 들이킬 수 있었다. 1970년대의 분식집 메뉴들은 아주 단촐 하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만두나 튀김, 순대와 라면 등이 고작이었는데 그 뒤로 종합분식이라는 간판으로 아주 다양한 메뉴군을 구성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개발되는 노력으로 라면도 다양한 종류로, 만두나 김밥도 다양한 식자재와 토핑, 고명 등으로 여러 이름의 메뉴를 만들어 주었다.

 

인천의 광신제면이라는 면공장에서 면 뽑는 구멍을 잘못 조정하여 실수로 생겨난 쫄면도 있지만 소득이 증대되면서 생겨나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입 맛의 요구에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청소년들의 주머니 사정도 점점 나아지면서 청소년 마케팅이 주목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쉼터인 분식점에 뮤직 박스가 생겨나고 느끼한 목소리로 팝송을 소개하는 장발의 D.J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의 인기는 청소년들 사이에 다소 열광적이어서 좀 맛이 떨어지는 떡뽁기집도 인기 있는 D.J.가 출연하면 높은 매상을 만들어 놓기도 하였다. 아마도 독자적인 형태로 청소년 문화의 시작을 알리는 전조였을 것이다.

 

“분식”(粉食)의 사전적인 의미는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나 통념적으로 분식을 말한다면 부담 없이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간식을 포함한 먹거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의 간식거리에 대해서는 100% 부모의 책임이 따라야 한다. 패스트 풋이나 정크 풋으로 아이들을 비만으로 만든다거나 그들의 건강을 헤친다면 그 책임은 무지한 부모의 전적인 몫이다. 더 이상 아이들을 핑계 삼지 말고 단호하게 먹거리의 방향을 잡아 주어야 한다.

 

오늘은 올티가스의 코리안 타운이라고 불리우는 Escriva Drive에 위치한 “김밥 천국”을 찾아 왔다. 문을 열자 주방에서 예닐곱 사람들이 만두를 만들고 빚느라 아주 분주하다. 테이크 아웃을 하기 위해 만두를 기다리는 손님들도 있고 분명히 필리핀 사람인데 무슨 찌게 같은 것을 먹고 있는 모습이 익숙치가 않았다. 불고기나 갈비집에서 현지인들을 봤다면 예사스레 넘겼을텐데 한국식의 분식집에서 그들을 보니 그들의 입 맛을 높이 평가해 주고 싶다.

 

김밥 천국의 대표적인 메뉴는 역시 추억을 느끼게 해주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고기 만두이다. 어린 시절 만두 가게 통 유리 진열대에는 무수한 고기 만두와 김치 만두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손님이 주문하면 이윽고 만두 찌는 솥에 잠시 들어 갔다가 하얀 김과 함께 나오면서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한 입을 물자 육즙이 입 안 가득하여 턱 밑으로 찔끔 흘리는 실수까지 하게 만든다. 육즙이 넘쳐나는 고기 만두를 만들기 위해서 고기 만두는 매일 빚는다고 한다. 김치 만두는 타 김치 만두에 비해 좀 매운데 칼칼한 맛도 마음에 든다. 도봉구 수유리에 가면 안성 손칼국수 라는 식당의 김치 만두가 아주 유명한데 거의 비슷한 맛이다. 여사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한국에서 제일 맛있다고 만두 붐을 일으켰던 “명인 만두”에서 직접 배워 온 것이라고 한다. 김밥 천국답게 다양한 김밥들이 있는데 김이 좀 얇으면서 바삭한 식감을 준다. 쫄깃쫄깃한 쫄면이 콩나물과 다른 채소들과 어우러져 매콤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맛도 준다. 이상하게도 쫄면은 남학생들 보다는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메뉴였다. 바지락 들어 간 손 칼국수도 홍두깨로 직접 빚고 칼로 썰어 묵직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송우리에서 포천 가능 방향에 있던 “홍두깨”라는 손 칼국수집이 기억난다. 돈까스라는 메뉴는 경양식집에서 독점하던 메뉴였는데 어느 날부터 분식집들이 대형화되면서 다양한 메뉴의 확보를 위해 받아 들인 것이다. 그래서 분식집의 돈까스와 경양식집의 돈까스는 약간의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경양식집에 비해 값이 싸면서 양이 푸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 “왕”자를 붙여 “왕돈까스”가 된 셈인데 기사 식당의 돈까스와 비슷한 맛을 낸다. 돈암동의 온달 왕 돈까스나 남산과 혜화동 기사 식당의 왕 돈까스. 여기 김밥 천국의 돈까스가 딱 그 추억의 돈까스 맛이 난다.

 

어쩌면 이렇게도 메뉴 하나 하나 마다 옛날의 기억과 추억이 떠오르는지 그 당시 함께 먹었던 친구 녀석들의 얼굴도 떠 올라 감회가 새롭다. 4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그들 모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리 모두는 우리의 인생을 잘 살고 있을까? 우리 나이쯤 되면 이 물음을 깊게 묻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김밥 천국 사장님 내외분을 보면 참 열심히 사시는 것 같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때 마다 한국에 직접 가셔서 그 메뉴의 원조격 식당에 가서 전수받아 오셔서 메뉴를 선 보인다고 한다. 여사장님의 그 노하우들을 가지고 주방을 총 감독한다. 남편 되시는 사장님은 신선한 재료를 확보하려고 매일 새벽 디비소리아, 로컬 시장들을 다니신다고 한다. 꼭 재료비를 아끼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렇게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싱싱한 식자재가 확보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이쯤 되니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수고로 내가 맛있게 추억을 먹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고맙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우리가 분식을 먹으며 영양을 보충하고 새로운 맛의 먹거리에 대한 만족을 얻으려 했다면 지금 우리는 분식을 먹으며 추억을 더듬으며 과거의 단순한 회상만이 아니라 지금의 삶의 자리를 다시 물으려는 것일 게다.

 

(마닐라점 말라테 Nakphil Street. 0917-538-7790/633-0953)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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