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후원하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네이버톡톡
맨위로


 

[마할끼타 필리피나스]스케치하기

등록일 2009년11월02일 10시57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기사글축소 기사글확대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뉴스일자: 2009-11-02
 

박상미(30기)

활동분야: 한국어교육

활동기관: 푸에르또 프린세사 직업기술학교 ( Puerto Princesa School of Arts and Trades)

 

오늘도 수업을 끝내고 집에 와 제일 먼저 달력에 ‘X표시’를 했다. 내 나름의 뿌듯함과 함께...

이제 며칠 후면 휴가를 얻어 한국을 가게된다. 나의 이곳 생활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줄까?

 

#1

검은 물을 본 적이 있는가? 가끔 바다에 나가 속이 보이는 넓은 바다를 봐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먼저는 깨끗하다는 놀라움에 신기해 한다. 그 물의 양을 따져볼 겨를은 없다. 우리가 그 물의 깊이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모른다. 왜일까? 눈으로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일까?

정전과 단수가 자주 되는 이곳에서는 항상 그것에 대비해 넓은 통에 물을 받아 놓는다. 평소의 물도 그 상태가 썩 좋지는 않지만 만일 단수 뒤의 물이라 치면 꼭지를 돌리는 순간 흙탕물이 탁탁탁 뿜어져 나온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피곤한 상태로 집에 와 받아놓은 물로 샤워를 하고 다음을 위해 물을 받아놓고 잠을 잤다. 저녁쯤 일어나 화장실 불을 켰을 때 나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검은 물이었다. 그 시커먼 물을 쳐다보고 있으니 그저 무섭기만 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것들, 자연의 이치가 닿지 않은 기상변화 혹은 사람의 마음까지 나에겐 두려운 것이다.

 

#2

‘얘야...’

조금만 있으면 새살이 날 텐데... 까만 손목 위에 검은 딱지가 떼어지는 걸 보고야 말았다.

처음 내가 자리에 앉을 때부터 무료한 듯 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기도 하고 의자에 웅크리고 눕기도 했다가 한번씩 위험하게 앞 유리에 얼굴을 비비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자기 몸에 부딪힌 그것에 관심을 갖더니 결국 상처를 내버린 것이다. 작은 구멍이 내내 가슴에 남았다. 거의 가죽만 남은 듯한 할아버지의 손목에서 딱지가 떼어지는 순간 붉은 멍울이 졌다.

몰티갑(multi- cap) 운전석의 할아버지와 조수석의 손녀 이야기다.

 

#3

수업을 한창하고 있었다. 간단한 문법 설명을 하고 연습문제를 몇 개 적은 뒤 돌아서서 학생들을 볼 때였다. 울고 있는 학생이 보였다. 서글퍼 보이는 눈물이었다. 왜였을까?

그 날 수업이 시작하기 전 그는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4시간의 수업을 다 받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초등학생인 아이가 오늘은 학교에서 일찍 끝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가봐야 한다는 거였다. 알았다며 수업을 시작했고 나는 그 양해를 잠깐 잊고 있었다. 중간에 쉬는 시간, 오늘은 수업이 끝나고 단체 사진을 찍자고 하시는 co-worker의 공지가 있었다. 애가 탔을 모성애다.

 

#4

“지갑을 잃어 버렸어요. 근데 같이 넣어둔 볼펜도 없어졌어요.” 그러자 학생들은 차를 탈 때는 가방을 앞으로 매야 한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지금 살고 있는 옆집 사람까지 조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주었다. 그러면서도 꼭 빼놓지 않고 하는 얘기가 있다. 마닐라는 많이 위험하지만 여기는 그래도 안전하다는....

매일 수업이 끝나고 같은 방향이라는 운으로 집까지 태워다 주는 학생이 있었다. 내리면서 감사하는 말을 하고 손을 흔들려는 찰나에 나를 부른다. 나도 모르게 현지인처럼 눈으로 대답한 내게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내민다. 음식 사먹을 돈도 없을 것 같으니 받으라며...

소소한 정이었다. 말만으로도 감사한 시간이었다.

 

#5

낙엽이다. 아닌가? 그런데 윙크를 한다.

이것도 아니다. 풀을 뜯어 씹으면서 한번씩 눈을 깜박인다.

요즘 학교로 가는 길에 자주 보는 염소들이다. 바닥을 향해 얼굴을 숙이고 길을 걷는데 염소의 한쪽 귀가 낙엽인 줄 알았던 거다.

한국에 있을 때도 염소는 가끔씩 본다. 그런데 이곳에서 느낀 다른 점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다. 먼 발치에서 혹은 차를 타고 시골길을 지나칠 때 휙 스쳤던 풍경이 아니라 걸어가는 내 옆으로 혹은 걸어갈 내 앞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이 있다는 것이다.

 

#6

정전이 된 날이었다. 교실 안은 너무 더워 수업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밖으로 나가자는 학생들과 일단은 나가보니, 들고 나갔던 교과서는 소용이 없을 듯 했다. 무얼 할까? 이 기회에 한국 놀이를 해 보고 싶었는데, 적절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기본적인 설명을 해주고 노래를 익힌 다음이면 모를까... ‘아! 이것도 안 되겠고, 저것도 안 되겠고... 이거 한번, 아니야......’ 여러 생각이 떠오르는데 학생들은 그 사이에도 자꾸 노래를 불러달라하고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 그래서 난 결국 “우리집에 왜 왔니~ 왜 왔니?”를 하기로 결심했다. 간단하게 놀이에 대해 설명을 하고 연습으로 들어갔는데, 점점 신이 나기 시작한 학생들이다. 50분 가량을 소리쳐 가며 열심히 뛴 후 “이제 그만해요”라는 나의 제안에 그들이 대답한다.

“one more, start~"

지칠 줄 모르는 그들에게 신명나게 놀 줄 알았던 우리의 놀이, 강강술래를 제안해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한인뉴스 필리핀뉴스 한국뉴스 세계뉴스 칼럼

포토뉴스 더보기

기부뉴스 더보기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