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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할끼타 필리피나스]나를 행복하게 만든 수많은 블랑카씨

등록일 2009년11월02일 10시56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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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9-11-02
 

민선이(30기)

활동분야: 한국어교육

활동기관: 기술교육개발청 (TESDA Regional Training Center )

 

‘사장님 나빠요’

몇 해전 한국에서 어눌한 한국말과 검게 그을린 피부 그리고 꾀죄죄한 옷을 입고 나온 개그맨이 동남아 노동자를 소재로 한 개그를 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모든 동남아 노동자를 대표했던 그의 이름은 블랑카였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동남아 노동자가 받는 크고 작은 차별과 고통을 재미있게 표현했는데, 그것들은 결코 나에게 재미로 다가오지 않았고, 또한 나를 웃게 만들지 못했다. 그 언젠가 서툰 한국말과 꾀죄죄한 옷차림을 한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사래를 치며 도망을 갔던 내가 떠올랐다.

나또한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수많은 블랑카씨들 가슴에 생채기를 줬다.

오늘도 수많은 블랑카씨들이 꿈의 나라, 성공의 나라 한국에 가기를 꿈꾸며 한국어 공부를 하고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이 꿈의 나라에서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머나먼 자신의 고향을 그리고 있다.

한국말이 서툴고 한국 문화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알고 난 후 우리 사회가 낳은 수많은 블랑카씨들을 돕고 싶었다.

블랑카씨들을 돕게다는 마음을 코이카(KOICA)에서 알았는지 때마침 필리핀을 비롯한 개발 도상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봉사단원을 모집했다. 오직 블랑카씨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겠다는 일념 하나로 비행기로 4시간 떨어진 필리핀에 두려움과 불안함을 가지고 지원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나는 반사적으로 한국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툰 한국말과 까무잡잡한 피부, 깨끗하게 세탁을 했지만 옷 주인과 오랜 시간을 보냈음을 알게 하는 색바랜 옷을 입은 ‘김’의 인사에 비로소 내가 필리핀에 온 걸 인지했다.

김은 한국 나이로 열 아홉, 그는 한국 요리를 배워서 한식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인 블랑카다. 그의 집은 허름한 동네에서 작은 ‘깐띤’을 운영했는데 ‘깐띤’은 한국으로 따지면 작은 ‘식당’이다.

가족도 없이 홀로 한국에서와 늘 상 주말을 혼자 보내는 내가 외로워 보였는지 그는 자신의 집에 나를 초대하곤 했다. 자신이 만든 필리핀 음식은 물론이고 혹여나 내가 한국 음식이 그리울까봐 한국 요리책을 보고 만들었다며 국적불명의 불고기를 만들어 주곤 했다.

한번은 아무런 보수 없이 자신들을 가르치기 위해 한국에서 온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며 김치를 직접 만들어 준 던 적이 있다.

그가 준 김치는 고춧가루가 없었는지, 아니면 고춧가루를 넣는 자체를 몰랐는지 배추는 하얗기만 했다. 그리고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법을 몰랐는지 배추는 싱싱함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렇지만 그가 나를 위해서 만든 그 김치는 비록 맛은 없었지만 그 어떤 김치보다 더 값지게 느껴졌다.

코이카 소속으로 마닐라에서 3시간 떨어진 바탕가스 테스다에서 나는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일자리가 없는 필리핀을 떠나 한국으로 가길 원하는 열여덟 블랑카씨부터 한국어를 배워 대학에서 강의하기를 원하는 50대의 블랑카씨까지 총 25명의 블랑카씨들에게 한국 문화와 한글을 100시간 동안 가르친다.

그 짧은 100시간 동안 그들은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배우고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책을 읽으며 신기해했다

삐뚤, 삐뚤 자신의 이름 쓰는 것을 연습했는데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 나보다 더 한글을 잘 써서 나를 놀라게 함과 동시에 부끄럽게 했다.

한번은 한국 노래를 배우고 싶다며 졸라대는 그들 덕분에 나는 풀 하우스의 송혜교가 되어 곰 세 마리의 율동과 노래를 연습해야 했다. 그들 또한 나에게 필리핀 노래와 춤을 알려주었지만 돌보다 뻣뻣한 내 몸 덕분에 그들도 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수업 때는 그 동안 수업을 하면서 같이 찍었던 사진들을 앨범으로 만들어 나에게 선물로 주었는데 그 선물은 우리집에 온 방문자들에게 부러움이 되었다.

그리고 서툰 한국어로 “선생님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삐뚤삐뚤 적은 편지를 줄 때 나는 참아 왔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블랑카씨들 덕분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짧지만 행복한 100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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