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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스의 맛있는 이야기] 맛있는 죽

등록일 2009년08월28일 17시5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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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9-08-28
 

“죽써서 개 줬다.”는 오래된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열심히 성의있게 만든 것이 한 순간의 실수로 물거품으로 돌아 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만큼 “죽”은 정성과 인내가 필요한 슬로우 푿(slow food)이다. 사실 “죽”은 곡물 음식 중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음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초기 농경시대에는 수확한 곡물을 끓여 죽을 쑤고 여기에다 마치 토핑처럼 산나물을 섞어 끓이거나 사냥한 수조 육류등을 넣어 함께 끓였다. 이 “죽”은 입맛이 없을 때 다양한 첨가물을 넣어 끓여 주면 입맛도 돋구게도 하고 노인이나 어린이, 환자들에게 약리 효과와 별미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또한 식량이 부족할 때에는 구황식품의 역할도 해 주었다.

 

죽의 종류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냥 쌀로 죽을 쑨 흰 죽에서부터 우유를 넣은 타락죽, 잣, 깨, 호도, 대추, 황률을 널고 끓이는 열매죽, 생굴, 홍합, 전복, 조개를 넣고 끓이는 어패류죽, 콩, 팥, 녹두, 보리, 풋보리를 넣는 청대콩죽, 율무죽, 마름죽, 칡죽, 마죽, 담채죽, 닭죽, 송이죽, 동지팥죽, 단호박죽, 흑임자죽, 콩나물죽, 아욱죽, 시래기죽 등…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전복죽을 쑬 때 초록색의 내장을 함께 넣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전복의 내장에는 제법 단단한 물질들도 들어 있다. 이 나라에서 내장을 함께 넣어 죽을 쑤려면 내장을 손으로 주물럭거려 이물질을 제거한 후 넣어서 사용하면 된다.

 

필자가 즐겨 먹는 “죽”은 역시 전복죽과 닭죽인데, 정말 favorite한 “죽”은 필자의 집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비법처럼 전수되어 내려 오는, 아마도 사대부 집안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가난한 갱신기죽이 있다. 왜 그 죽을 갱신기죽이라 불리우는지는 필자도 알 길이 없다.

단지 가난한 경상북도의 한 시골에서 태어나신 아버지가 부모없이 형수의 손에 의해 키워지면서 배운 마더 통그(Mother tongue)라고나 할까? 성석제님의 글에 의하면 “갱시기죽”이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내게 있어서 그 “죽”은 아버지의 가난한 어린 시절의 애달픈 추억이 담겨져 있는 까닭으로 갱신기죽이라는 아버지의 유아적인 기억의 언어 혹은 모향어(母鄕語)가 더 적절하다.

 

간단이 레씨피를 소개하자면, 우선 찬 밥이 필요하다. 설령 쉰 밥이 있다해도 오래 끓여 먹을 요량이니 재료에서 결코 왕따당하지 않는다.(필자가 초등학교때는 보온 밥통이 없었던 탓인지 밥이 곰팡이가 피면서 곧 잘 쉬곤 했다) 우선 찬 밥을 오래 끓이면서 다진 쉰 김치를 넣는다. 냉장고 안에 있는 남아 있는 모든 재료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갱신기 죽의 장점이다. 먹다 남은 나물류, 느끼할 수 있는 재료들만 빼고 다 집어 넣어 푹 끓여 준다.(마치 소여물처럼) 여기에 소면이나 라면도 넣어준다. 물론 면은 최대한 오래 끓여 퍼지게 만들어야 제 맛이 난다. 끓여 먹을 수 있는 채소들은 다 넣어도 되는데 깻잎을 넣으면 향이 강해 원하던 맛에 접근할 수가 없다. 참고로 필자의 아버지는 육류를 못드셔서 고기류는 일체 첨가하지 않는다. 계란이나 오뎅도 맛을 반감시킨다. 해물은 어떠한 종류도 사용 가능하다.(단 오래 끓일때 질겨지는 것들은 제외시킨다.) 푹 끓여 낸 갱신기죽은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생전에 한 번도 못 받아 보시고 가난한 형수의 주름진 손에서 눈치 보면서 자랐을 아버지의 가난한 과거의 뒷 모습의 맛을 닮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이 갱신기죽의 한 그릇을 애련하게 느끼시면서도 반가워 하신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만달루용 파이오니어 스트릿에는 로빈슨 백화점이 들어서 있다. 일층에 Mr.Choi’s kitchen라는 식당이 있는데 이 곳의 플레인 콩지(Plain Congee)는 아주 담백하고, 배불리 먹다가 배터져 보라는 듯 엄청난 양을 자랑한다.(이 곳의 탕수육, Sweet & Sour pork이나 Peking Duck도 맛있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죽”이다.) 한 그릇에 65페소인데, 술 먹은 다음 날 해장거리로 친구, 재영이와 함께 가면 한 그릇으로 둘이 나눠 먹기에 딱 알맞다. 주방에서는 어떠한 눈치도 안주건만 괜히 제 발이 저려 두 그릇 시켜 한 그릇은 그 자리에서 먹고 다른 한 그릇은 take out해 온다. 꼭 이 식당이 아니어도 중국 식당에서 닭죽이라든가 야채죽, 해물죽을 저렴한 가격에 맛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필리핀이기도 하다. 某 세미 중국 음식 패스트 푿의 콩지는 아무리 가격이 저렴하다해도 불만족스럽다.

“죽”은 아주 간단한 요리처럼 보여도 패스트 푿化되면 격과 맛이 떨어 지고 만다.

 

이젠 사람이 됐는데 무슨 마늘을 더 먹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흰 쌀 죽을 쑬때 다진 마늘을 넣어 보면 흰 죽이 어느새 진가를 발휘한다. (팔팔 끓을때 다진 마늘을 넣어야 매운 맛도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다.) 간은 꼭 천일염을 사용해야 나트륨의 과다 복용으로 부터 면할 수 있다. 실은 이 곳, Mr. Choi’s kitchen도 좀 짜게 나오는 편이다. 함께 주문한 핫 티를 녹차잎이 안 섞이게 죽에 약간 부어준다. 핫 티는 물론 무제한 리필의 공짜이다. 쇼핑몰에 있는 중국집이나 대형 중국 요리집에 가서 Congee를 주문하면 대체적으로 우리의 입 맛에 맞는 “죽”을 맛 볼 수 있다.

따갈록어로 Aroscaldo라고 불리우는 닭죽도 우리의 닭죽과 유사한 맛을 낸다. 어렸을 적 필자가 감기에 걸려 입 맛이 없어 밥을 잘 못 먹을때 혹은 배탈이 났을때 엄마는 꼭 흰 쌀죽을 쑤어 그 위에 고소한 들기름과 간장을 살짝 떨어뜨려 먹게 해주셨다. 느닷없이 엄마의 고소한 위로와 따뜻함이 미치도록 그리울 때 엄마의 가슴처럼 따뜻한 콩지를 맛있게 먹고 지금도 항상 나를 응원하며 기도하고 계실 엄마의 사랑을 느껴보자.

“어머니, 사랑합니다.” “장모님도 사랑합니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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