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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도리의 대중음악 후비기]마이클 잭슨 (1958 – 2009) 4

등록일 2009년08월21일 17시53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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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9-08-21
 

84년 아프리카 이티오피아의 난민의 실상이 세계에 공개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그동안 전면적으로는 외면했던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의 식량난과 기아, 내전으로 인한 난민들에 대한 구호활동을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USA for Africa’라는 이름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당대 최고 아티스트들이 ‘we are the world‘라는 구호 단체를 조직하고 동명의 타이틀을 노래로 만들어 발표하게 된다.

그 중심은 마이클 잭슨. ‘We are the world’ 의 곡은 라이오넬 리치와 마이클 잭슨이 공동으로 작곡하고 퀸시 존스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는데 총출연한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마이클 잭슨의 ‘영업력’을 과시하기에 충분하다.

스티비원더, 디온워윅, 제임스잉그램, 라이오넬 리치 등 흑인R&B 아티스트 부터 밥딜런, 윌리넬슨, 휴이 루이스 같은 백인 포크 및 컨트리 싱어, 그룹 ‘저니(Journey)’의 스티브 페리, 브루스 스프링스틴 같은 락 가수와 한창 뜨고 있던 신디 로퍼까지 당대 수퍼스타들이 총 출동해 10시간 만에 녹음을 마쳤다. 이 앨범은 ‘난민구호’라는 메시지를 통해 전세계에 전달되고 노래까지 좋아서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게 된다. 비틀즈의 폴 메카트니를 시작해서 당대의 최고 스타들과 유명인사들과 어울리게 된 마이클 잭슨은 결코 그의 그러한 사교능력을 과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폴 메카트니와의 관계의 경우, 몇번의 곡 작업으로 친해진 이후 폴메카트니가 조언한 지적재산권 관리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데 바로 마이클 잭슨은 비틀즈의 곡 250곡에 대한 판권을 거대한 액수를 들여 사들인 것이다. 사실 조언은 비틀즈의 멤버이자 당사자인 폴메카트니 자신이 했지만 마이클 잭슨이 자신들의 곡을 이렇게나 많이 사들일 줄을 몰랐다. 나중에 그들은 이 내용을 계기로 등을 돌리게 된다. 너무나도 많은 그들의 곡을 돈으로 ‘발라버린’ 마이클 잭슨의 행동에 대해 폴 메카트니가 실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잭슨가의 나머지 형제들은 마이클 잭슨의 성공뒤에 가려져 각각 솔로 앨범 발표 및 재기를 꾀하였으나 음악적으로 성숙되지도 못하고 동생 마이클 잭슨의 성공이 너무도 눈부신 행로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등장은 언론에서 항상 ‘아류’, ‘동생을 따라가지 못하는 뱁새’취급을 받곤 했다.

그러한 불과 가운데 이전 잭슨스 시절의 부의 배분 문제로 가족끼리 심한 불화가 있었는데 바로 잭슨스 멤버중 하나였던 티토 잭슨이 가족을 상대로 소송을 하고 이 일을 계기로 완전 멀어진 사건이 그 예다. 어린 시절부터 수퍼스타였던 마이클 잭슨은 비록 무대위의 그는 완벽에 가까운 엔터테이너였지만, 화목한 가정, 사랑하는 여인 등 개인생활에 대해 그는 아무것도 가져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7년 5년만에 발표한 bad 앨범은 역시 발매되자마자 눈부신 활약을 하게 된다.

현재도 활동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 감독 마틴 스콜세지를 기용하여 [드릴러] 시절처럼 아예 20분짜리 단편영화형식을 제작된 타이틀곡 ‘bad’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파마머리에 딱 붙는 가죽 바지에 격렬한 댄스로 비디오를 제작했고 역시 높은 완성도답게 대중의 반응도 최고였다. 그러나 이전보다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그의 피부가 몰라보게 하얘진 것이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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