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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스의 맛있는 이야기] 맛있는 외식(外食)

등록일 2009년08월21일 17시52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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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9-08-21
 

필자가 초, 중학교시절을 다녔던 한국의 1970년대는 새마을 운동의 기치하에 근대화 작업에 나섰지만 지금의 필리핀보다도 더 가난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여름이면 긴 무더위에 정신을 놓을 정도였고, 장마비라도 쏟아지면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몇 날 몇 일을 쉬지않고 내려 포장 도로든 비포장 도로든 가리지않고 유실시켜 수많은 수재민을 만들어 놓았다. 푸세식 화장실(이럴땐 변소칸이라고 불러야 더 적절할 것 같다)이 넘쳐 길거리는 혐오스러운 오물의 계곡으로 변해 버린다.(지금 생각하니 그렇단 말이다. 당시에는 그냥 일상이었다.) 또 그 당시의 겨울은 얼마나 매섭고 사나운 바람으로 추위에 떨게 만들었는지 안방에 있어도 입에선 하얀 입김이 나왔다. 추위에 손이 다 트고 이미 얼어 버린 콧물을 달고 다니는 아이들도 많았다.빨간 내복과 양말을 두 켤레씩 겹겹히 껴입어도 몸서리쳐질 정도로 추웠던 것은 아마도 가난의 한 정체였을 것이다.

 

그렇게 가난했던 시절, “외식”이라는 언어는 일반 서민들은 생각할 수도 감히 사용할 수도 없는 단어였다. 물론 서민들의 생활에 있어서 외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입학식이나 졸업식의 경우 중국집에서 자장면이나 짬뽕을 가족들끼리 나눌 수도 있었다.

탕수육을 시키면 군만두가 서비스로 나왔는데, 탕수육은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만 주문될 수 있었다. 당시 불고기집을 찾아 간다는 것은 상위 2%에 해당되었을 것이다.

 

필리핀에 살면서 가끔 외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한 번은 그린힐스의 아나폴리스에 위치한 “Choi Garden(草園, 초원)”을 손님을 모시고 간 적이 있다. 예전에 라플을 파는 식당이었는데 어느날 부터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하더니 엄청나게 고급한 인테리어의 중국 요리집으로 문을 열었다. 개장한 날 부터 연일 손님이 넘쳐나는 것을 보면서 오픈빨이 좀 오래 가는군 하고 생각했었는데 아마 2,3년은 훌쩍 넘긴 것 같은 지금에도 예약을 하지 않고는 자리를 차지하기가 힘들다. 물론 손님들의 상당수는 중국계이다. 가격도 결코 싼 가격이 아니다.(가능하면 코스 요리보다 단품요리를 잘 골라서 먹는 것이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는 한 방법이다. 다양한 레씨피의 북경 오리를 추천)

인근 유니마트앞에 있는 “Gloria Marinas”라는 중국 요리집은 “훠거”(광동식 샤부샤부)와 “딤섬” 두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양쪽 모두 연일 손님들로 가득차 있다. (필자가 경험한 최고의 딤섬은 “Shanghai Siao Long Pao” 인데 뜨거울때 한 입 물면 터져 나오는 만두즙은 엄지 손가락을 쳐들게 만든다.)

 

왜 이렇게도 대형의 고급 중국 요리집은 엄청나게 장사가 잘 되는걸까?

물론 그린힐스에 많은 부유한 중국계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것이 고급 소비자층을 만들 수 있는 한 요인이었을 것이고 또 다른 큰 이유는 중국인들의 외식 문화에 있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일보다 바깥에 가서 사먹는 외식 문화가 중국에선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심지어는 아침 식사도 콩지(Congee)라는 죽을 사 먹으면서 시작된다. 맛을 즐기는 중국인들은 아주 발달된 미각을 가지고 있다. 식사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맛을 즐기려는 자세와 여유가 한껏 베어 나온다. 끝으로 그들의 중국집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유 중 하나는 중국인들의 단합된 일치성에 있다. 가능하면 자기네 민족의 업소와 상품을 소비하려는 것이다. 이게 과연 필자가 갖고 있는 편견이나 기우에 불과하다면 얼마든지 철회할 용의가 있는데, 한국 교민들은 어떤 교민 업소가 너무 장사가 잘되면 배아파서 그 업소를 안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표면적인 이유의 “장사가 잘되는 바람에 주인이 초심을 잃었다”라는 말도 결코 간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떻든 교민들이 교민 업소들을 이용해 주는 것은 바람직하고 권면할 만한 일이며 그런 점에서 중국인들의 성공의 열쇄를 찾아낼 수가 있을 것 같다. 교민 업소 또한 좀 더 저렴한 로컬 식당으로 발을 옮기지 않고 교민 업소를 찾아 주는 교민들에게 좀 더 후한 서비스와 친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외식은 가족 공동체의 혀와 미각, 입의 나들이이다.(그런 점에서 회식과 외식은 다르다)

최근에 우연하게 읽게 된 박완서님의 “아주 오래된 농담”이라는 소설에 보면 “가족은 친구처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요즘같이 힘든 교민 사회속에서 우선 가족들의 충분한 위로와 격려를 나누고 나아가서 교민 공동체의 단합된 성숙한 자세로 위기를 현명하게 넘어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오늘 저녁 식구들과 함께 맛있는 외식을 하러 맛나들이에 나서면 어떨까?

 

유승준님의 “사랑을 먹고 싶다.” 라는 책에서 한 章을 발췌해 본다.

 

“가난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의 실직, 빈 쌀독. 설상가상 아이가 생겨 배는 만삭으로 불러 왔습니다. 당장 저녁 끼니도 문제였지만 새벽마다 인력 시장으로 나가는 남편에게 차려줄 아침 거리조차 없는게 서러워 아내는 그만 부엌 바닥에 주저앉아 울어 버렸습니다. 아내가 우는 이유를 모를리 없는 남편은 아내에게 다가가 그 서러운 어깨를 감싸 안았습니다. “울지마..당신 갈비 먹고 싶다고 했지? 우리 외식하러 갈까?” 외식할 돈이 있을리 없었지만 아내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남편의 밝은 목소리가 좋아서 그냥 피식 웃고 따라 나섰습니다. 남편이 갈비를 먹자고 데려간 곳은 백화점 식품 매장이었습니다. 식품 매장 시식 코너에서 인심 후하기로 소문난 아주머니가 부부를 발견했습니다. 빈 카트, 만삭의 배, 파리한 입술…아주머니는 한 눈에 부부의 처지를 눈치챘습니다. “새댁, 이리와서 이것 좀 먹어봐요. 임신하면 입 맛이 까다로와진다니까.” “여보 먹어봐..어때?” “음..잘 모르겠어.” 다른 시식 코너의 직원들도 임신한 아내의 입 맛을 돋궈줄 뭔가를 찾으러 나온 부부처럼 보였는지 자꾸만 맛 볼 것을 권했습니다. 부부는 이렇게 넓은 매장을 돌며 이것저것 시식용 음식들을 맛봤습니다. “오늘 외식 어땠어?” “좋았어.” 그리고 돌아가는 부부의 장바구니엔 달랑 다섯 개들이 라면 묶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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